이소룡과 대통령과 전무후무한 이야기 [진옥섭 풍류로드]
2005년 봄부터 문장원, 강선영, 김덕명, 김수악, 이매방, 장금도 여섯분의 명무를 섭외하고 있었다. 공연의 품격을 드러내고, 훗날에는 공연을 기리는 기념물로 남을 제목이 필요했다. ‘옥 이름 후’(珝)자는 내 염원의 글자였다. 왕 앞에서 날개를 펴는 춤꾼의 형상이었다. 여섯분이 왕 앞에서 춤추는 국무가 되길 바라며 후를 넣었다. 그런데 정말로, 노무현 대통령이 공연을 보았다.

어릴 적 별명이 ‘영산강 말린보이’였다. 바싹 마른 몸으로 자맥질만 일삼아, 강물에 기름기마저 쪽 빠진 ‘말린 보이’. 동네 앞 영산강 물고기를 다 잡았으니,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와 견줄 만했다. 그뿐인가, 벽에 붙은 ‘반공 방첩’, ‘식량 증산’ 같은 포스터를 달달 외웠으니 문자 속 또한 기특했다. 할머니는 나를 어중간한 헛똑똑이라 불렀다. 학교 성적이 시원찮은 거였다. 그러나 그건 담임선생 말대로 대기만성형이기에,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나대는 나를 할머니는 “대님 하기에는 남고, 허리끈 하기에는 모자란 놈”이라 했다.
1974년 가을, 전남 담양군 봉산면 신학리 봉산초등학교 앞 점방 흙벽에, 영화 ‘당산대형’(唐山大兄) 포스터가 붙었다. 그렇게 운명이 제 갈 길을 속삭여 왔다. 할머니가 담배 사려고 장판 밑에 둔 동전을 훔쳐 들고 나섰다. 그날의 발걸음을 한겨레신문의 칼럼 ‘스크린 속 내 연인, 이소룡’에 썼다.
‘촌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들길 십리를 걸었다. 십원짜리 네개를 얼마나 꽉 쥐었던지 극장 앞에 당도하니 손바닥에 다보탑이 박혀 있었다. 이소룡의 ‘당산대형’, 추석 특선 프로였다. 직직 비 오는 화면에서 사내는 웃통을 벗었다. 배에는 부젓가락으로 누른 듯한 왕(王)자가 박혀 있었고, 포효하며 분노한 발차기를 쏟아 놓았다.’

나는 그날로 미쳐 버렸다. 볼펜으로 배에다 왕자를 그리고, 동네방네에 “아뵤!”하는 괴성을 지르고 다녔다. 점방에 붙은 ‘당산대형’ 포스터를 습자지로 베껴 달력 뒷장에 그렸다. 그리고 아침마다 달력을 열고 이소룡에게 절하고 등교했다. 칼럼 글을 쓰던 2005년 10월, 나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전무후무’(全舞珝舞)를 올리고 담양을 찾았다. 명화의 전당 명성극장은 황성 옛터처럼 무너져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내 연대기의 시작점에 서니, 31년 전 이소룡의 야수 같은 괴성이 이명처럼 울려 났다.
올 추석날, 이제 아파트가 올라간 명성극장 터에 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신학리 옛집까지, 들길 10리를 서서히 역주행했다. 누런 논길을 뛰는 어린 나를 만났다. 새로 산 고무신에 뒤축이 까져 쓰라릴 거였다. 그러나 10원짜리를 꼭 쥐느라 아픈 줄도 몰랐다. 한개라도 잃어버리면 누구 하나 꿔 줄 여유 없는 촌것들이었다. 커 가며 주머니에 10원짜리가 잡힐 때마다 이 길 위의 어린 내게 던져 주고 싶었다. 버짐 핀 얼굴에 눈만 반짝이는 내게 말했다. “할머니한테 부싯땅(부지깽이)으로 맞을 거야, 살살 때리니 걱정 마” 뒤처질세라 속도를 내 지나쳐 가는 내 뒷모습에 당부했다. “왕자는 꼭 배에다만 그려, 손바닥에 그리면 큰일 나.”
다음날, 저녁에 초대받았다. 무등산을 앞에 두고 좌우로 활개를 벌린 집이었다. 집터를 잡아 준 용흥사 덕유스님이 주선한 자리였다. 주인인 조성태, 최정숙 내외는 교사로 정년퇴직한 분들이었다. 부인은 예비교사 월급 8만8천원으로 스테레오 녹음기를 샀다. 그래서 귀가 뚫려 진공관 앰프를 장만한 풍류인이었다. “정말로 잊을 수 없는 공연”이 서울까지 가서 본 ‘전무후무’라 했다. ‘이게 웬일인가’, 서로 말문이 터져 자정이 다 되어 자리를 마쳤다. 숙소에 돌아오니 10월8일, 정확히 공연 20주기였다. 잊고 넘어갈까 봐 옛 분들이 기별한 모양이었다.
요즘은 공연이 좋으면, 요샛말로 ‘역대급 표현’을 한다. “개재미있다!”, “쩔어 진짜!”, “핵대박이야!”처럼 말이다. 유행 따라 말하는 것도 제멋이지만, 멋스러운 말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다. 예전에는 소리가 좋으면 “옥당!”(玉堂)이라 하며 무릎을 쳤다. 구슬의 둥근 모습으로 예술의 완전함을 표현한 것이다. 또 춤이 좋으면 “앵두를 똑똑 따는구나”라고 말했다. 앵두는 눈물이란 뜻이니,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좋았단 거다. 아울러 눈물이 앵두 열매처럼 동글동글해 역시 옥의 둥긂처럼 예술의 완전함을 표현했다.
2005년 봄부터 문장원, 강선영, 김덕명, 김수악, 이매방, 장금도 여섯분의 명무를 섭외하고 있었다. 공연의 품격을 드러내고, 훗날에는 공연을 기리는 기념물로 남을 제목이 필요했다. 옛 법도대로 둥긂으로 예술의 완전함을 표현할 글자를 찾아야 했다. 각고 끝에 ‘완전할 전’(全)자와 ‘옥 이름 후’(珝)자를 골라, 완전하고 둥근 춤이란 의미로 전무후무(全舞珝舞)라 지었다. 또 평균나이 80살이 넘으니, 전무후무(前無後無)한 판도 되었다. 그래서 당당히 ‘지금껏 인류는 이런 판을 만들지 못했고 이후에도 다시 꿈꿀 수 없는 판이다. 하여 전무후무(全舞珝舞) 넉자를 지어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분들께 올린다’라고 팸플릿에 썼다.
‘옥 이름 후’(珝)자는 내 염원의 글자였다. ‘임금 왕’(王)자와 ‘깃 우’(羽)자, 왕 앞에서 날개를 펴는 춤꾼의 형상이었다. 왕 앞에서 소리하는 광대를 국창(國唱)이라 하였다. 여섯분이 왕 앞에서 춤추는 국무(國舞)가 되길 바라며 후를 넣었다. 그러나 옛말로, “양반 집안에 정승 나기보다 광대 집안에 국창 나기가 더 어렵다”라고 했다. 그러니 국무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정말로, 노무현 대통령이 공연을 보았다. 앵두를 똑똑 따는 춤에 감격한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듯 간담회를 열었다. 그리고 “어르신들, 제가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날이 20년 전 오늘이었다.

2005년 10월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춤추는 여섯분의 춘추를 합하면 한 왕조의 역사가 되었다. 이날을 위해 일평생을 춤춰오신 분들이었다. 온몸을 통틀어 허공에 그리는 춤, 이내 자취 없이 과거가 될 하룻밤의 꿈을 꾸몄다. 저 티베트 고원의 승려들이 정하게 닦은 땅에 엎드려 쌀이나 돌가루로 그리는 그림. 이내 다시 쓸어버릴 단 한번을 위한 치장 ‘만다라’와 같았다. ‘만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원이란 뜻이다. 원은 속을 비워야 원이 되는 법, 그렇지 못하면 단지 점일 뿐이다. 스스로 가운데를 비우며 원을 그려내는 것, 춤이라는 종교에 올라선 전무후무한 분들의 일생이었다. 승려들이 숨을 뱉으며 더 멀리 문양을 새기듯, 공복으로 세월에 더 깊이 엎디어 시간을 그렸다.
오늘은 며칠이 지나야 역사가 될 수 있을까? 일년일까, 십년일까, 아니면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 때’쯤일까. 역사가 되려면 우선 쓰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 문집에 실리면 야사가 될 수 있다. 정사가 되려면 ‘조선왕조실록’ 같은 데 실려야 한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전무후무’를 검색하니 ‘노무현사료관’ 누리집에서 떴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서울 양재동 예술의전당을 방문, 제8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05)를 관람하며 오붓한 한때를 보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본부장 이종호) 주최로 예술의전당 내 토월극장에서 막이 오른 전통무용 ‘전무후무’(前舞珝舞)를 관람했으며,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도 부부동반으로 동석했다.’ 총 170자의 기사와 26컷의 사진이 나왔다.
‘전무후무’가 대한민국의 정사에 수록되었다. 탄핵을 이긴 대통령이기에, ‘노무현 일기’가 아닌 ‘노무현 실록’이다. 뭉클한 감정을 가다듬고 한자 한자 들여다봤다. ‘전무후무’의 첫 자 ‘완전할 전’(全)자가 ‘앞 전’(前)자로 나와 오타다.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문장원, 강선영, 김덕명, 김수악, 이매방, 장금도 여섯분의 성함이 누락되었다. 등록된 사진을 살피니 김경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이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며 노무현 대통령 뒤에서 관람했다. 그날의 혁혁한 무공(舞功)을 봤으니, 이 일을 그분에게 알려야겠다.
그날 대통령과 단체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였다. 영부인의 곧은 다리를 본 문장원 명무가 “여사님 ‘다리미’가 춤추면 딱이라!” 했다. ‘다리미’는 각선미의 1930년대식 표현이다. 그 무렵을 누비던 모던보이가 최고령이 되어 나갔다. 그 몇발짝도 춤이 꽉 차 장단이 밟혔다. 행여 이 말을 의심커든, 유튜브에 ‘전무후무 문장원’을 검색하시라. 89살 문장원 명무의 ‘무중력 보행’, 인류의 역사에 유례없는 족적을 만나시리라.
국무회의 상황은 다음에 잇는다.

진옥섭 |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소룡의 ‘당산대형’을 보고 ‘무(武)’를 알았고, 탈춤과 명무전을 통해 ‘무(舞)’에 빠졌고, 서울의 굿을 발굴하면서 ‘무(巫)’를 만났다. 기생, 무당, 광대, 한량을 찾아 ‘남무(男舞)’, ‘여무(女舞)’, ‘전무후무(全舞珝舞)’를 올렸다. 마침내 ‘무(無)’를 깨닫고, 사무친 이야기를 담은 ‘노름마치’를 출간했다. 전 국가유산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 담양군문화재단 대표이사이다. ‘사서삼담’, 4일은 서울 3일은 담양에 있으며, 무대와 마당 사이의 문화판에 산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캄보디아, 온라인 범죄 연루 한국인 59명 17일 추방
- 꽉 막힌 관세협상 ‘돌파구’ 찾나…미국 “원화로 투자해라”
- 윤석열 한남동 관저에 히노키탕·다다미방…민주 “감사원이 고의 누락”
- 하루에만 세 번 멈춘 법사위 국감…‘대법원 3차 국감’ 대격돌 예고
- ‘전한길 얘기, 우린 들었어요’ 5명 손들자…거짓말쟁이 된 권익위원장
- ‘김현지 국감’으로 변질되는 국정감사…관계없는 상임위까지 공방 얼룩
- “텔레그램 지인이 캄보디아 항공권 주길래…” 30대 출국 막은 경찰
- 성동구청, ‘여사님 업체’ 21그램에 1350만원 과태료 처분
- “국민 땀으로 불린 노태우 300억”…세기의 이혼이 재소환한 비자금 환수
- “도공 사장 나가라는 거냐”...국힘, 이 대통령 ‘고속도로 청소’ 발언 공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