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무름병’에 한해 농사 엎었는데…브로콜리 너마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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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농사지었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여. 무름병에, 노균병에, 이름도 모를 세균 병까지 서너 가지가 한꺼번에 오니 약을 해도 소용없어. 한마디로 올해 배추 농사는 망친겨."
16일 오전 충북 청주시 청원구 미원면 기암리 배추밭에서 만난 양성근(63)씨가 배추밭을 바라보며 넋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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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애써도 역부족…자연재해 인정하고 대책을”

“50년 농사지었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여. 무름병에, 노균병에, 이름도 모를 세균 병까지 서너 가지가 한꺼번에 오니 약을 해도 소용없어. 한마디로 올해 배추 농사는 망친겨.”
16일 오전 충북 청주시 청원구 미원면 기암리 배추밭에서 만난 양성근(63)씨가 배추밭을 바라보며 넋두리했다. 양씨 말대로 밑동이 누렇게 짓무른 채 성장을 멈춘 배추가 수두룩하다. 지금쯤 한 아름 정도로 자랐어야 하는데 주변엔 상추만 한 배추가 널려있다. 주저앉거나 쓰러진 배추도 많다.
양씨가 배추를 들어 잎을 떼니 배춧잎이 녹듯이 부서진다. 조금 상태가 나아 보이는 배추엔 누런 점들이 빼곡하게 박혀있다. “누렇게 무른 것은 무름병이고, 누런 점들이 박혀있는 듯한 것은 노균병인데, 올핸 무름병과 노균병에다가 세균병까지 함께 왔어요. 상품가치가 없어 하나도 팔 수 없어요.”



배추가 서 있는 곳은 밭이지만 골마다 물이 고여 논처럼 변했다. 장화를 신은 외국인 노동자 예닐곱이 밭에 들어가 첨벙대며 비닐을 벗기기 시작했다. 양씨는 “8월 중하순께 배추 심은 뒤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고, 비가 잠깐 그치면 이상 고온이 이어졌다. 멀쩡한 사람도 햇빛 못 보면 생기를 잃는다. 하물며 이런 식물은 볕과 바람 없으면 못 자란다. 땅에 세균 더 박히기 전에 배추 갈아엎는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닐을 벗기자 대형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논인듯한 밭으로 들어갔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엔 희고, 푸른 배추 잔해가 널브러졌다. 양씨는 이날 자신의 배추밭 4620㎡(1400평)를 갈아엎었다. “이 밭도 문제지만 올해 다른 밭 등 8천평(2만6400㎡)에 배추 심었는데 작황이 너무 안 좋죠. 완전 낭패 봤어요.”


양씨 밭에서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브로콜리밭도 비슷하다. 잎은 무성한데 주로 먹는 부분인 꽃과 줄기 부분은 불에 덴 것처럼 검붉게 녹아 있다. 최영회(67)씨의 브로콜리밭이다. 최씨는 “이렇게 자주 비가 내리는 것 처음이다. 비가 내리니 약을 쳐도 씻겨 내려가 소용이 없고, 무름병·노균병 등 각종 세균병이 함께 왔다. 농사라는 게 농부가 50% 정도 일하면, 하늘이 50% 정도 도와줘야 하는데 이런 이상기후가 이어지면 농사 못 짓는다”고 했다. 최씨도 이날 자신의 브로콜리밭 1980㎡(600평)를 갈아엎었다. “여름 내내 땀 흘리며 키운 자식 같은 녀석들을 선 채로 보내니 가슴이 찢어지네요.”
미원면뿐 아니라 청주, 괴산 등 충북 지역 배추 산지를 중심으로 배추 무름병이 확산한다. 16일 충북도의 잠정 집계를 보면, 청주지역 배추 농가 330곳, 107㏊에서 배추 무름병이 생겼다. 청주 전체 배추 재배면적(382㏊)의 28%다. 이웃 괴산에서도 배추 재배지 66㏊에서 무름병이 생겼다.
박재일 충북도 스마트농산과 주무관은 “최근 청주, 괴산 등 배추 산지를 중심으로 무름병 피해 호소가 잇따른다. 공식적으로 조사하면 피해 면적은 더 늘어 날 것 같다. 배추 무름병의 경우 올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작물재해보험 통해 괴산, 전남 해남, 경북 영양 등 시범지역을 대상으로 보상하는 것을 시행하지만 공식 자연재해에 포함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농민들은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김희상(52) 전국농민회총연맹 청주시농민회 사무국장은 “이곳 청주 미원면은 가을 배추산지인데 올해 배추 농가 180여곳 가운데 절반 이상이 무름병·노균병 등으로 피해를 봤다. 밤낮으로 애썼지만 사상 최악 이상기후엔 역부족이었다. 무름병 등을 자연재해로 인정하고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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