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현실이 된 SF…모든 독자에게 열려 있어”[인터뷰]

김현경 2025. 10. 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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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서 ‘한밤의 시간표’ 영역본 출간
“괴담, 어디에나 존재…차기작은 ‘처녀귀신’”
정보라 작가가 미국과 영국에서 ‘한밤의 시간표’ 영역본을 출간했다. [사진=정혜란]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공상과학 소설(SF)은 미래 세계와 상상의 기술 및 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문화, 역사, 사회적 배경과 관계 없이 모든 독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지금처럼 소통과 교류가 빠른 세상에서 이것은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정보라가 미국과 영국에서 ‘한밤의 시간표’ 영역본을 출간했다. 2023년 국내 출간된 ‘한밤의 시간표’는 2022년 ‘저주토끼’로 부커상 국제 부문 후보에 오른 후 펴낸 첫 신작 소설집으로,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프랑스, 폴란드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수출됐으며, 이번 영국·미국 출간을 기념해 국내에서도 오는 30일 갈매나무(퍼플레인)에서 리커버 양장본을 선보인다. 이번 영역본 출간을 기념해 미국에 이어 영국에서 17~25일 프로모션 일정을 갖는 정보라 작가와 서면으로 만났다.

‘한밤의 시간표’에 대해 정 작가는 “귀신 들린 물건들이 모여 있는 정체불명의 연구소에서 야간 경비를 하는 ‘나’와 동료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연구소에 모여 있는 물건들의 사연과 ‘나’를 비롯한 야간 경비 직원들의 사연이 번갈아 소개되는 연작 소설의 형식이다. 일곱 편의 이야기는 오싹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만든다. 정보라 특유의 저주와 복수 테마 속 엄정함뿐 아니라 약자와 인간이 아닌 존재에까지 미치는 작가의 온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다수의 작품이 해외에 소개되며 국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데 대해 정 작가는 “민담, 전설, 귀신 얘기는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한다”면서 “‘저주토끼’는 민담, 옛날얘기의 형식 안에 새로운 요소들을 집어넣어 독자들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도 별로 낯설지 않게 느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신간에 대해선 “‘한밤의 시간표’는 반대로 현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화, 산업화한 세계에서는 쓰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달라도 생활 방식은 대부분 다 비슷하기 때문”이라며 “도시 괴담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점도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영문본 번역은 ‘저주토끼’를 번역해 부커상 국제 부문 후보에 함께 올랐던 안톤 허 번역가와 다시 한번 함께했다. 정 작가는 지난 7월 출간된 안톤 허의 첫 소설 ‘영원을 향하여’의 한국어 번역을 맡기도 하며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그는 “안톤 허 작가의 문장은 매끄럽고 명료해서 번역할 때 문체의 전달이나 의미 전달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에 내 문장은 거칠고 말투가 딱딱한 편인데 안톤 선생님은 크게 개의치 않으시는 것 같다”며 “미국 브루클라인 북스미스 서점 온라인 북토크를 했는데, 안톤 선생님이 ‘이제는 네 번째 번역이라 정보라 문장이 영어로 어떻게 들리는지 알고 있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그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정보라 작가가 미국과 영국에서 ‘한밤의 시간표’ 영역본을 출간했다. [사진=퍼플레인]

정 작가는 2022년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 2023년 한국인 최초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인 최초로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아직 상복이 따라주지 않아 아쉬울 법하다. 하지만 정 작가는 “최종 후보 전문 작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시상 행사에서 다른 훌륭한 작가님들을 만나고 작품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궁리해 보는 과정 전체가 즐거웠다. 큰 영광이었고 많이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며 겸손을 표했다.

그는 근래 SF 문학이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에 대해선 “모바일 기술과 인터넷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현실에서 어느 정도는 SF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특히 팬데믹이라는, 진짜 디스토피아 SF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해졌다”며 “이제는 SF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현실을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봤다.

디스토피아 같은 현실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정 작가는 스스로를 ‘데모꾼’이라 칭할 정도로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요즘엔 세종호텔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분들이 복직 교섭을 하는 중인데 사측과 대화가 잘 안 되고 있다. 고진수 지부장이 내려오지 못해 애가 탄다”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도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이 600일간의 고공 농성을 마치고 8월 29일에 내려왔지만, 고용 승계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장기 투쟁을 이어가는 해고 노동자들이 많이 걱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차기작으로 ‘처녀 귀신’ 이야기를 다룰 계획이다. 정 작가는 “보통 한국 처녀 귀신은 원한을 풀지 못해서 저승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원한과 집착은 다른 것인지, 처녀 귀신 외에 다른 전통적인 귀신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공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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