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가기 두려운 여성 청소년 여러분, 여기로 오세요 [사람IN]

이은기 기자 2025. 10. 16. 07:2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9월22일 이가희 여성청소년건강지원단 ‘나는봄’ 활동가가 <시사IN>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이제 간판 주문하려고 해요.” 이가희 여성청소년건강지원단 ‘나는봄’ 활동가(41)가 멋쩍게 웃었다. 9월18일 무료 진료소 나는봄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도보 5분 거리에 문을 열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갈 수 없는” 여성 청소년이 진료 대상이다. 아직 진료소 간판은 물론 공식 연락처도 없다. 당분간 문의는 사회복지사인 이가희 활동가 개인 전화번호로 받는다. 진료 준비 외 모든 게 완전히 갖춰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진료를 시작했다.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나는봄은 원래 서울시가 2013년 성매매·성폭력·임신·탈가정 등으로 위기에 처한 10대 여성 청소년의 건강을 지원하기 위해 세운 십대여성건강센터였다. 여성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치과, 한의학과 치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친구들은 밥을 먹으러, 힘든 일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러 나는봄을 찾기도 했다. “센터 안에 조용한 공간이 있음에도, 꼭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누워 잠드는 친구가 있었다. ‘시끄러운 상태에서 잠드는 게 좋아서’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오는 공간이었다.”

그런 나는봄이 7월4일 갑작스레 문을 닫았다. 서울시가 기능 중복 등을 이유로 폐쇄를 통보한 지 두 달 만이었다. 서울시는 2026년 1월 새로운 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장 6개월의 공백기가 생겼다. 그 시간은 “아이들의 모습을 바꿔놨다”. 자궁경부암 고위험군으로, 정기적으로 나는봄에서 검사를 받던 한 친구가 치료를 중단했다. 성 착취 피해 경험 같은 자기 이야기를 다른 병원에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6월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전해 들었다. “약을 받으러라도 나왔던 친구들”이 괜찮은지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9월18일 개소한 ‘나는봄’ 상담실 모습. 나는봄은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료·익명 진료를 제공한다. ⓒ시사IN 신선영

이가희 활동가는 ‘진료소를 다시 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문을 연다고 공백이 완전히 채워질 수는 없겠지만,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찾아올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센터보다 더 문턱을 낮춘 진료소를 목표로 삼았다. “폭력 피해를 겪었지만, 피해자의 얼굴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훨씬 많다. 또 피해 상황에서만 임신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임신한 청소년이 병원을 가지 못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위기다. 아이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진료소를 열고 싶었다.”

기쁨나눔재단에서 공간을 내어준 덕에 2호선 신촌역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시민 126명과 녹색병원 후원으로 진료대, 초음파 기계, 소독기 등 진료에 필요한 물품을 하나둘 구비했다. “처음에는 6개월 공백기 동안만 운영해보겠다는 생각에 사비로 진료소 가계약을 걸기도 했다. 지금은 안정적인 공간이 생겼다. 서울시가 (2026년 1월부터) 센터를 계속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굳이 우리가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진료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결론 내렸다(웃음).”

이가희 활동가가 ‘#십대성병 #십대임신 #무료진료 #생리통’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개설한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현재 “병원에 가기 두려운 친구들”이 100명 가까이 모여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가정폭력을 겪었거나 부모가 방치해서, 가출 중이라서, 부모가 여성의학과 진료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등등. 이전 센터에는 거주지 인근 병원을 가지 못해, 전북 군산이나 경남 진주에서 찾아와 치료를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봄’ 진료실 모습. 진료 시간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6시30분까지, 한 사람당 30분이다. ⓒ시사IN 신선영

나는봄에서는 병원에 갈 수 없는 여성 청소년 누구든,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고도 익명으로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진료 시간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6시30분까지, 한 사람당 30분이다. “진료에 교육이 포함된 시간”이라는 게 이가희 활동가의 설명이다. 이영희 여성의학과 전문의가 진료와 함께, 왜 증상이 발생했고 어떤 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추석 이후부터는 매주 월요일에도 추가로 진료 시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나는봄 개소와 동시에 무료 진료가 시작됐다. 검사비와 치료비는 어떻게 충당할까? 이가희 활동가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나는봄 후원 계좌(우리은행 1006-101-423278, 예금주 ㈔희망씨)가 열려 있다. 후원금은 나는봄을 찾은 여성 청소년의 성매개 감염(STI), HPV(자궁경부암) 검사와 치료비로 쓰인다. 후원금으로 불안·우울·트라우마를 돌볼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나는봄 소식은 인스타그램 ‘여성청소년건강지원단 나는봄’ 계정(@nanun_b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