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에도 칠순에도…‘성장’할 수 있다는 안도감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김은형 | 문화데스크
“제 삶의 슬로건은 자람을 멈추지 말자예요. 늘 성장하자, 단 1㎜라도 배우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작품을 만납니다.”
얼마 전 만난 영화 ‘홍이’의 주연배우 변중희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나이 올해 75살. 기사에도 썼듯 그는 39년 교사생활을 정년퇴직하고 65살에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칠순이 넘어서도 성장을 계속해야 하는 건가, 아 피곤해. 평소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변중희 배우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내가 착각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나는 성장을 성취, 또는 성공과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 성장은 이 두 단어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아닌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성취, 성공은 타인의 인정과 직결되지만 성장은 그렇지 않다.
성공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39년 중학교 과학 교사의 이력을 활용한 책 쓰기나 교육용 유튜브를 선택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는 오십 다 돼 취미로 시작한 연극 동호회에서 학생 영화 보조출연을 제안받고 스크린 연기를 시작했다. 말이 스크린 연기지 학생 단편영화는 흔히 떠올리는 영화 현장과는 한참 다르다. 고생스럽고 빛도 나지 않는다. 자식뻘 되는 감독, 스태프들과도 편할 리 없다. 그런데 그는 ‘시간이 맞으면 한다’는 생각만으로 숱한 감독 ‘지망생’ 영화에 출연했다. 직접 찾아와 어렵게 출연을 부탁하는 중학생이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중학생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오민애 배우에게도 들은 적이 있다.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든, 독립영화든, 학생영화든 “시간이 되면 한다”고, 그리고 주변에 고민하는 동료·후배들에게도 “무엇이든 들어오면 가리지 말고 해라, 어디서든 배울 건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올해로 우리 나이 예순이 된 오민애 배우도 사십대부터 숱한 ‘지망생’ 영화와 독립영화에 출연하면서 성장했고 쉰을 훌쩍 넘어서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며 낯익은 얼굴이 됐다.
‘오늘도 성장하고 있습니다’의 저자 이병남은 중년 이후의 성장을 자기 돌봄의 관점에서 설득한다. 대기업 인사담당 최고 책임자로 환갑에 직장생활을 은퇴했던 그는 칠순 다된 시점에 이런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회원님, 오늘도 성장하셨습니다.” 몸이 녹슬며 좋아하던 등산도, 골프도, 의사가 권한 수영까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그는 하는 수 없이 질색하던 피트니스센터에 뭐 끌려가듯 억지로 등록을 했다고 한다. 인사담당자로, 가장으로 남과 가족만 돌보던 그에게 자기 돌봄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첫해에는 기구를 쓸 수도 없을 지경이었던 몸이 6년 동안 일주일에 두번씩 근육 운동을 하면서 바뀌기 시작했고 그가 받았던 칭찬은 데드리프트를 한시간 동안 누적 1톤으로 들어 올렸을 때 트레이너가 건넨 말이었다.
저자가 그때 느꼈던 희열을 읽다 보니 지난달 나갔던 달리기 대회가 떠올랐다. 이 칼럼에서도 요란하게 떠들었던 바 작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실 봄 가을 각각 두세달씩 뛴 게 다였다. 다른 운동에 견줘 돈이 안 든다는 게 매력이었지만 자본주의의 노예인 나는 비싼 돈과 ‘피켓팅’으로 대회 등록을 해야만 가까스로 연습할 수 있었기에 봄 가을에 각각 세번 정도 대회 등록을 하고 동네를 뛰었다. 그런데 지난달 대회는 등록했는데 연이은 출장으로 도무지 연습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멀리 지역 대회에 등록한 터라 혼자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이번 대회의 목표는 심정지를 피하는 것이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엄청 긴장한 상태에서 여차하면 중도 포기하겠다는 마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달린 최고의 페이스에 가깝게 완주했다. 10㎞를 완주한 직후에도 3~4㎞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이 바뀐 것이다. 앞의 어르신들 말로 하면 나는 성장한 것이다. 뿌듯했다. 내년에는 하프에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최근 한 영화제의 예선 심사를 하다가 오민애 배우도, 변중희 배우도 화면 속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 앞에 쌓인 작품 이력을 보면 이제는 티브이 방영이나 개봉이 약속된 드라마나 영화만 출연해도 될 거 같은데 이들은 성장하기 위해 여전히 청년들의 작은 작품에서도 계속 연기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두 배우의 성장을 지켜볼 걸 생각하니 설렜다. 이들 덕에 나도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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