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부산…“빨리 원전 더 짓자” Vs “핵 쓰레기 안 돼”
李대통령 “안전 담보되면 수명연장”이라지만 안전 놓고 민심 엇갈려
지원금·지역경제 Vs 아이들 피폭, 방산업체 이전까지 맞물려 갈등 커
“서울 전기 위해 또 참으라고?” 반발도, “한수원 아닌 국가가 나서야”
[부산=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부산 기장군.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자 ‘뜨거운 감자’ 고리2호기가 위치한 곳이다. 오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여부에 대해 재논의를 한다. 지난 40년간 가동된 ‘노후 원전’ 고리 2호기의 수명을 연장할지 여부가 이날 확정될 전망이다. 이에 앞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안위·한국수력원자력 국정감사(16일),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에너지 분야 업무보고(16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수원 국감(20일)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여부는 이재명 정부의 원전 정책 향배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전국 곳곳의 9개 노후 원전(전남 영광 한빛 1·2호기, 부산 고리 3·4호기, 경북 울진 한울 1·2호기, 경북 경주 월성 2·3·4호기)의 수명연장 여부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전성이 담보됐는지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판단할 지다. 환경단체는 이재명정부가 고리 2호기 수명연장을 하는 것은 380만명 부산·울산·경남 주민들의 목숨을 걸고 ‘원전 도박’을 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반면 원전 산업계는 “이념에 치우친 탈핵”이라며 조속한 수명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참조 이데일리 9월27일자 <“380만 목숨 걸고 원전 도박” Vs “과학 아닌 이념 앞선 탈핵”>).
그렇다면 수명연장 여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부산 시민들은 어떤 입장일까. 안전하다고 생각할까. 40년을 가동한 고리 2호기의 수명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일까. 안전성·경제성·주민수용성 측면에서 ‘합격점’을 주고 있을까. 지난 1일 부산 현지 취재, 이후 전화 인터뷰 등으로 부산 민심을 살펴봤다. 시험대에 오른 새정부의 원전 정책을 앞에 놓고 ‘안전과 생존’, ‘원전 확대와 탈핵’이라는 둘로 갈라진 민심이 드러났다.
고리 원전 앞마을 “빨리 수명연장, 신규 SMR도 환영”

주민들에 따르면 현재 한수원과 고리 원전 5km 반경 내에 거주하는 길천마을 등의 주민들은 고리 2호기 수명연장을 포함해 여러 고리 원전 현안을 놓고 협의 중이다. 주요 안건은 △고리 2~4호기 수명연장 △신고리 7~8호기 부지에 SMR 설치 △부지 내에 건식저장시설(임시) 신설 △신규 원전 건설 등을 놓고 논의 중이다. 이같은 현안에 주민 상당수가 찬성하는 입장인 가운데 한수원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지원금을 받느냐가 협의 쟁점이다.




“지난 50여년 간 눈뜨면 집 앞에 보이는 게 고리 원전이다. 여기서 아들, 딸 다 건강하게 키우고 방사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고리 원전 방사능 누출로 사망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기장은 청정지역이다. 오히려 가동하지 않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금 상황이 방치된 느낌이라 걱정이 된다. 비행기 충돌 얘기도 나오던데 전쟁이 나면 전국이 다 위험하지 원전만 위험한가. 50년간 큰 사고 없었던 고리 원전이 사고가 날 것처럼 얘기하는 게 도통 이해가 안 간다. 50년간 원전을 마주 보며 살았던 우리가 안전하다고 하는데, 왜 괜한 트집을 잡고 있나.”
‘5km’ 밖 주민들 불안 커…“아이들 방사능 피폭 우려”

현장을 다녀보면 원전 주변지역(반경 5km 이내)에서 벗어날수록 길천마을 등 인근 지역과 ‘온도차’가 느껴졌다. 기장군 관계자는 “기장군 안에서도 반경 5km 이내 주민들과 5km 밖의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며 “기장군은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여부에 대해 특정한 한쪽의 입장이 아니라 안전성, 지역민 수용성을 함께 보고 원안위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발주법)에 따라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 범위는 발전소 반경 5km 이내 행정구역이다. 이에 따라 5km 이내는 지원금을 받는 곳, 5km 밖은 지원금 지급이 없는 곳이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일본은 원전으로부터 30km까지를 대피 구역으로 설정했다. 반경 30km면 고리 원전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을 비롯해 부산 시청까지 웬만한 곳이 다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반경 5km 이내 주민들 대상으로만 공청회를 하고 있다. 그것도 직장인들이 참석하기 힘든 가장 바쁜 평일 시간대에 공청회가 열리더라. 그러다 보니 어용단체나 어촌계 등 일부만 공청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원전이 싸놓은 똥(방사성폐기물)을 치우지도 못해 핵 폐기물 쓰레기까지 임시저장시설을 만들어 부산에 계속 쌓겠다는 게 아니냐. 앞으론 반경 30km 이내 주민들도 불러내서 제대로 의견수렴을 해야 한다.”
인구밀집 18만 기장군…“원전 사고 파장 커져”

최경숙 탈핵시민행동 집행위원장은 “해운대에 있는 풍산금속이 기장군으로 이전하려고 하는데, 기장군민들은 가뜩이나 밀집된 곳에 교통 체증까지 심해질까 우려해 반대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빽빽하게 밀집된 상황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정부가 기장군민들 전반의 의견을 들었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기장역 앞에는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기장이 무사하겠습니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언제까지 서울 전기 위해 지방 희생해야 하나”


“‘반발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돈을 더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서울에 전기가 필요하면 서울에 발전소를 지어야 하지 않느냐. 서울에 계신 분들을 위해 언제까지 지역민들끼리 갈등하면서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나. 그런데 지금은 법적 문제, 주민수용성 등 여러 국가적인 원전 사안을 사업자(한수원)에게만 맡겨 놓고 있다. 이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산업통상부든 기후에너지환경부든 원전 담당 중앙 공무원들은 고리 현장에 오지 않는다. 장관이 현장에 오더라도 주민들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후속 대책이 뒤따라주지 않는다. 이제는 국가가 제대로 나서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일반 국민들, 기장 군민들과 라운드테이블을 크게 열고 국가적 차원에서 원전을 둘러싼 쟁점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와 미래=에너지 이슈 이면을 분석하고 국민을 위한 미래 에너지 정책을 모색해 봅니다. 매주 연재합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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