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대세 상승장 열렸다... 미 인플레이션이 최대 리스크” [이동현의 편애]
코스피 5000포인트 달성 어렵지 않아
지배구조 개선에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
편집자주
편애(偏愛)는 지독히 이기적이지만 그래서 지극히 이타적이다. 박애가 실종된 시대 편애를 추적한다.

지난 30년, 주식시장 한복판을 걸어온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996년 8월 ‘증권맨’으로 출근한 첫날 종합주가지수(KOSPI·코스피) 종가를 지금도 기억한다. 860포인트. 김영삼 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모토로 규제 완화 드라이브를 걸 때다. 경제기획원을 폐지하고, 민영화와 금융·자본시장 개방에 사활을 걸었다.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 진출, 한보철강의 민간 최초 일관제철소 건설 등 대규모 민간투자가 이어졌다. 금리 자유화·외환 자율화, 증권시장 개방 및 외국인 투자 제한 완화가 동시에 추진됐다.
정부는 세계화로 1980년 후반 ‘3저 호황’(저유가·저금리·저달러) 시대를 재현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불어넣었다. 주식시장에서는 역사적 대세 상승을 기록했던 그 시절 향수가 소환됐다. 매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토대로 코스피 지수는 1985년 4월 말 134포인트에서 1989년 3월 말 1,003포인트로 역사적 신고점을 경신했다. 4년 만에 시가총액이 7.5배 늘어나면서 증권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에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29번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입을 목전에 두고 기대가 부풀려졌다. 일부 전문가가 단기 외채 의존, 기업 부재 구조 취약성, 관치금융 관행 등을 들어 “시기상조론”을 제기했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주는 일”이라며 밀어붙였다. 주식시장은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경제는 7.9% 성장했지만, 코스피 지수는 882포인트에서 651포인트로 -26.2% 하락했다. OECD 가입으로 3저 호황 때처럼 해외자본 유입이 경제 성장, 자산시장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던 기대는 이듬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산산조각 났다. 증권가부터 구조조정 칼날이 드리워졌다. 신입사원이었던 김 센터장에게 “살벌했던” 당시 경험은 30년 ‘증권맨’ 인생의 반면교사가 됐다.
"코리아 피크, 동의 어려위... 자산·실물 디커플링이 뉴노멀
그래서일까 원칙을 중시하는 신중한 ‘보수적’ 애널리스트로 평가받는 김 센터장은 1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국정 전략과제로 공식화한 데 대해 “코스피 지수 자체는 정책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주권 강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단순히 증시 부양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그는 "자본시장 활성화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선순환을 만드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기 위해서라도 주가 상승을 한국 경제의 밝은 미래를 선행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코리아 피크’ 우려에도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코리아 피크’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을 제외하면 피크 아닌 나라가 어디인가. 교과서적으로 증시는 지금껏 경제의 거울, 그림자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실물 경제와 자산 시장이 다르게 움직이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미국 증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7년째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연평균 GDP 성장률은 2.2%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다. 독일은 2023, 2024년 연속으로 역성장했지만, 주가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2008년 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풀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판단이었는데, 실물 경제에는 효과가 안 나타나고 자산 시장에서만 풍선 효과가 빚어졌다. 우리나라도 어려웠지만 1997년 외환위기만큼 최악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돈이 덜 풀린 측면이 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이 동시에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안전자산인 금값이 오른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위험자산인 주식도 오르고 비트코인도 오른다. 주택 가격도 같이 뛰고 있다. 안전·위험 자산 간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정상적 시장 구조가 깨졌다. 인공지능(AI) 기술 혁신에 대한 기대가 일부 반영됐을 수도 있지만,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의 절대적 효과를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된다. 미국의 경우 시장에 풀린 돈의 양을 보여주는 GDP 대비 미 연준 자산 비율이 6% 수준에 머물다 2008년 25%로 4배 넘게 늘어난 이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36%로 더 늘었고 지금도 22%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41%, 일본은 115%로 더 많은 유동성을 풀었다. 전례가 없는 유동성 공급이 본질적 원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이 1년 내 ‘코스피 5000시대’ 전망을 제시했다.
“어렵지 않다고 본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1, 2차 상법 개정으로 실체가 있는 변화가 이뤄진 영향이 크다. 지배구조 문제는 우리 자산시장을 구조적으로 저평가시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요인이었다. 일본은 우리만큼 지배구조 문제가 심각했지만, 2012년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후 10년간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주주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냈다. 대만은 일찌감치 배당소득 분리과세, 집중투표제 등 제도 개선을 이뤘다. 우리는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셈이어서 더 긍정적이다. 글로벌 시장 측면에서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로 유동성이 더 늘 전망인 점도 우호적 환경이다. 한국 경제 펀더멘털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도 펀더멘털이 좋아서 주가가 오르는 게 아니다.”

지배구조 개선으로 잃어버린 30년 극복한 일본, 벤치마킹 대상
일본은 지배구조 개선, 자본시장 선진화 등을 통한 구조 개혁에 성공한 사례다. 아베 전 총리는 기업의 내부 유보금 과다, 낮은 자기자본비율(ROE), 비효율적 이사회 구조 등이 일본 경제 활력 저하의 원인으로 꼽고, 거버넌스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기관투자가 의결권을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2014년), 기업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3분의 1 이상 두도록 하는 ‘거버넌스 코드’ 도입(2015년)이 차례로 이뤄졌다. 행동주의 펀드를 구조 개혁의 파트너로 간주하고, 연기금 출자를 통해 활성화시켰다.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적극적 주주환원 정책으로 보조를 맞췄다. 2013년 1만4,914포인트였던 닛케이 지수는 지금 4만7,672포인트로 치솟았다. 김 센터장은 상법 개정 이후 코스피 지수가 최근 2021년 6월 이후 4년 3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한국 증시도 “4년 이상 오르는 ‘추세적 강세장’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정부·여당이 상법을 2차례 개정했고, 3차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상법 개정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바로 세울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됐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주주 충실 의무 등과 관련해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에 대한 법원의 최초 판례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하다. 기관투자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주주권 행사는 사실 개인 차원에서 이뤄진다기보다는 전문적 투자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자산 시장은 의결권을 행사할 주식을 보유한 ‘액티브 펀드’ 비율이 전체 펀드의 3%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과거 출시된 액티브 펀드가 낮은 수익률을 기록해 투자자 불신을 자초했다. 우리 증시가 장기간 박스권에 갇혀 있으면서 투자자들이 ETF 등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장기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부여 등을 통해 액티브 펀드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장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운동장은 마련돼 가는데 뛸 선수가 없다.”
-주가가 올라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한 것 아닌가.
“기업의 자본을 시장으로 순환시키는 선순환을 만든다면 경제 활력을 높이는 데 긍정적일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을 한방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내수를 살려야 하는데 최근 3년간 소비판매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29개월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위축됐다. 1995년 통계 작성 이래 최장기간 감소세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골은 깊었지만, 13개월에 그쳤다. 가계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으니 쓸 돈이 없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들의 배당금 총액은 43조 원이다. 대만이나 일본, 중국보다 낮은 배당성향을 높인다면 주식을 보유한 국민 1,400만여 명의 소득이 늘어난다. 효과를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늘어난 부가 실물 경제로 유입되면 ‘소비쿠폰’ 정책만큼의 긍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주주 환원 부담보다 주주자본주의 결핍 폐해가 더 커"
김 센터장은 주주 환원 정책 등 주주자본주의 강화가 실물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일부 지적과 관련해 “지금은 주주자본주의 결핍으로 인한 폐해가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7년 이후 18년 동안 우리나라와 경제 구조가 비슷한 제조업 중심 국가 대만 일본 중국 등과 비교해 배당성향이 높았던 적이 없는데 그렇다고 우리 경제가 그 나라들보다 나은 상황이냐고 반문한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 든 현실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우리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며 “자기 비하”라고 일축했다.
-최근 환율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따른 3,500억 달러 대미 직접 투자 문제의 불확실성이 투영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다만 일본 엔화도 약세고, 대만 달러는 더 약세다. 영국 파운드화, 유로화 등도 약세를 보이는 등 원화 약세 국면이라기보다는 달러 강세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안정적 흑자를 내고 있는 걸 감안하면, 자본시장 측면에서 해외 자산 투자 비중을 높이려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해외 자산 투자를 늘리는 건 나쁘지 않다. 2024년 말 기준 한국 가계가 보유 중인 해외 금융자산은 178조 원으로 상당한 규모지만, 아직은 전체 가계 금융자산 5,472조 원의 3.2%에 불과하다.”
-일반 투자자들이 향후 가장 관심 깊게 지켜봐야 할 리스크가 뭔가.
“관세 전쟁 여파에 따른 미국 인플레이션 문제다. 미국 연준의 금리인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핵심 트리거다. 미국은 이미 자산 버블 징조가 보이지만, 언제 터질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에브리싱 랠리’ 상황에서 버블이 터지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전 세계 어느 국가도 숨을 데가 없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덮칠 수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게 ‘10년 만기 미국 장기국채’ 금리다. 금리 수준이 4.5%를 넘어선다면 힘들어질 수 있다."
이동현 논설위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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