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50> 바다의 소리, 나각(螺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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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박물관의 수장고에는 다양한 소장품이 잠들어 있지만, 그중 악기로 분류되는 것은 많지 않다.
나각(螺角)은 그중에서도 패각(貝殼)으로 만든 전통 관악기로, 특히 나팔고둥의 패각을 사용하였다.
이처럼 나각은 조선시대에도 국가의 공식 의례나 군사 작전 등에서 전천후로 사용된 중요한 악기였다.
하지만 나팔고둥으로 만들어진 나각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그 당시를 상상하게 하는 바다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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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박물관의 수장고에는 다양한 소장품이 잠들어 있지만, 그중 악기로 분류되는 것은 많지 않다. 나각(螺角)은 그중에서도 패각(貝殼)으로 만든 전통 관악기로, 특히 나팔고둥의 패각을 사용하였다. 나각은 나(螺), 대라(大螺), 바라(哱囉), 취바라(吹哱囉), ㅂ、라, ㅂ、ㄹ래, 보로 등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팔고둥은 복족강에 해당하는 고둥으로, 학명은 ‘Charonia lampas’이다. 최대 30㎝까지 자라고, 복족류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한다. 현재는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에 지정되어 있다. 나팔고둥의 두껍고 단단한 껍데기의 끝을 정교하게 다듬어 자르고, 입김이 모이는 구멍을 낸다. 그 입구를 황동관으로 보강한 뒤, 길게 불면 저음이 울릴 수 있도록 조정하면 비로소 악기 나각이 된다.
‘나각’이라는 표현은 사실 정확히 따지자면 ‘나(螺)’와 ‘각(角)’으로 구분되며, 이는 각각 별개의 악기를 가리킨다. ‘나’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고둥으로 만든 나팔을 뜻하지만, ‘각’은 짐승 뿔이나 나무로 제작된 관악기를 말한다. 그러나 ‘나’와 ‘각’은 함께 실제 번갈아 가면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 문헌에서는 이를 혼용해 표기했다.
나각은 ‘고려도경(高麗圖經)’과 ‘고려사(高麗史)’ 등의 기록을 통해 고려시대부터 불교의례와 왕실의례, 군사 작전 등에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 의식에서는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와 함께 사방에 부는 나각 소리가 법음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전쟁터에서는 진군이나 후퇴의 신호로, 혹은 왕의 행차를 알리는 의기(儀器)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기록에서부터 이토록 정형화된 사용례를 확인할 수 있는 점으로 보아, 이보다 이전 시기에도 나각을 일상생활이나 왕실에서 활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시대 성종 24년(1493)에 나라에서 편찬한 국악이론서 ‘악학궤범(樂學軌範)’에도 나각이 등장한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중 역대 임금의 무공을 칭송하는 무관의 춤인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에서 중앙에 배치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나각을 묘사한 그림도 남아 있다. 동시에 나각은 군의 주요 신호악기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수군의 훈련서인 ‘수조홀기’와 ‘병학지남연의’ 등에서는 ‘바라’를 출동 명령, 사조절차(四朝節次)와 호궤절차(呼饋節次) 등에 사용하는 신호용 악기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일본으로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의 행렬도에서도 나각을 부는 ‘나각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숙종 37년(1711) 조선통신사 행렬도 중 ‘등성행렬도(登城行列圖)’에는 2명의 나각수가 그려져 있다. 이처럼 나각은 조선시대에도 국가의 공식 의례나 군사 작전 등에서 전천후로 사용된 중요한 악기였다.
오늘날 우리는 나각을 의례의 현장보다는 박물관 진열장 속에서 더 자주 만난다. 더 이상 우리에게 신호를 주거나, 의례의 시작을 알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팔고둥으로 만들어진 나각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그 당시를 상상하게 하는 바다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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