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중세풍경·현대적 세련미·맥주축제 열정…모두 다 독일이네

조봉권 선임기자 2025. 10. 15. 19:1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獨 뮌헨 포츠담 베를린…색다른 유럽을 즐기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닫힘 버튼이 없었다. 있어도, 대부분 닫힘 기능이 작동하지 않게 해두었다. 절로 닫힐 때까지 잠깐 기다려야 했는데, 닫힘 버튼을 즉각 누르는 데 익숙한 한국인에게 그 잠깐이 길게 느껴졌다. 유럽에 출장이나 여행 왔을 때마다 겪은 일이지만, 여전히 적응은 쉽지 않았다.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 이곳 뜰 한쪽에 프리드리히 2세 무덤이 소박하게 조성돼 있다.


대중교통인 전철·버스·트램에서는 안내방송을 딱 한 번만 했다. 다음 역이 ‘마리엔플라츠’라면, 전철 버스 트램의 안내방송은 “마리엔플라츠!”, 이게 전부다. ‘이번 내리실 역은 어디고, 다음 역은 어디이며 내리실 때는 잊으신 소지품 없도록 주의하시라’는 식의 안내는 전혀 없다. “마리엔플라츠!” 이 한 번으로 끝이다.

트램과 버스를 타고 내릴 때는 승객이 직접 스위치를 눌러야 문이 열렸다. 이걸 알면서도 자꾸 까먹어 ‘이 문이 왜 안 열리지?’ 하며 잠시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 그러면 다른 승객이 스위치를 눌렀고, 문은 열렸다. 공중화장실은 거의 유료였다. 야박하다는 인상과 그래도 관리는 제대로 되겠네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대체로 빠름에 대한 강박이 좀 덜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공공기관도 할 일은 할 테니 개인도 책임질 건 책임지라는 개인주의가 이해할 만한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곳은 유럽, 그중에서도 중심지인 독일이다. 지난달 말 독일의 베를린 포츠담 뮌헨에서 일주일가량 취재하며 여러 곳을 탐방할 기회를 가졌다. 유럽 여행의 또 다른 속살, 색다른 묘미가 거기 있었다.

# 상수시 궁전과 ‘감자대왕’ 묘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25㎞쯤 가니 포츠담이 나왔다. 이 유서 깊은 도시에서 만난 상수시(SANS, SOUCI) 궁전은 엄청났다. 압도되고 말았다. 베이징의 자금성만 크고 유명한 줄 알았지, ‘큰 도시’라는 인식이 별로 없던, 심지어 어디쯤 있는지도 잘 몰랐던 포츠담에서 이토록 크고 아름답고 사연 많은 옛 궁전을 만나리라고 예상 자체를 못 했다.

학창 시절 ‘다음 중 식민지 조선이 독립하는 데 직접 영향을 끼친 국제 회담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1. 카이로 회담 2. 얄타 회담 3. 포츠담 회담 4. …’ 같은 시험문제(답은 4번이다)로만 만나던 포츠담에 직접 와 본 일만 해도 감회가 깊은데, 상수시 궁전이라는 멋진 역사 유산을 접하고 보니 횡재한 기분이다. 프랑스 말인 ‘상수시’에는 ‘근심 없는 궁전’이라는 뜻이 담겼다.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the Great·재위 1740~1786))는 현재 독일의 모태인 프로이센 왕국의 강력한 군주였다.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이 세종·영조·정조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독일인은 프리드리히 2세의 존재감을 크게 느끼는 듯했다. 독일 국력을 크게 키운 프리드리히 2세가 지은 여름 궁전이 상수시 궁전이다. 동서 거리가 2㎞ 넘는 상수시 공원 곳곳에 다양한 건물이 자리했다.

회화관·오랑게리 궁전·신궁전·중국의 집·전망대 등 볼 곳이 많은데, 상수시 궁전 뜰에 봉분 없이 조성한 프리드리히 2세 무덤이 특히 인상 깊었다. 무덤에는 먹음직스러운 감자가 여럿 언제나 놓여 있다. 백성을 먹여 살리고 국력을 키우려고 기발한 방법을 써가며 감자를 보급한 프리드리히 2세의 업적을 기리는 풍속이다. 그 곁에는 대왕이 키운 개들도 함께 묻었다.

# 베를린에서 만난 스파이박물관

독일 스파이 박물관의 글리니케 브리지 모형. 일명 ‘스파이 다리’이다. 냉전 시절 서독·동독은 여기서 스파이를 교환했다.


강대국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개방성과 다양성이 넘치는 문화 예술 도시이기도 하다. 베를린에는 박물관이 170~200개 있다고 했다. 박물관만 다녀도 기분 좋게 지칠 것 같았다. 번화가인 포츠다머 플라츠 근처에 자리한 독일 스파이 박물관이 ‘분단된 나라’ 한국에서 온 나그네의 발길을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입장료 12유로를 내고 박물관에 들어섰다.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다시 말해 동·서 진영이 사납게 맞붙었던 냉전 시기 베를린은 ‘스파이의 수도’였다. 2015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냉전 시대 어두운 유산을 콘텐츠로 삼는 기획력을 발휘했다. 총면적 3000㎡ 전시장에는 관객의 상상을 넘어서는, 실재했던 스파이의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다. 첨단 전시물도 많았다.

‘손자병법’을 쓴 손자는 “전쟁에서 간첩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하면 안 된다”고 했다. 동·서 진영이 얼마나 많은 자원을 쏟아부어 가며 첩보전을 펼쳤는지 이 박물관에서 소름끼치게 느꼈다. 입구에는 나폴레옹 어록을 써두었다. ‘있어야 할 곳에서 제대로 활동하는 간첩 1명은 전장의 군사 2만 명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지금, 그토록 치열하고 잔인하고 값비쌌던 스파이 전쟁이 허무하기도 했다.

# 뮌헨 카를광장·마리엔광장을 걷다

뮌헨 신시청사 첨탑에서 본 마리엔 광장. 오전 11시 이 건물 종루에서 인형극이 시작되자 관람객이 광장을 메웠다.


로마를 여행했을 때, 좁고 긴 골목을 걷다가 갑자기 사방이 툭 터지는 광장으로 불쑥 나서게 되는 유럽 여행의 쾌감을 맛보았다. 뮌헨 도심 느낌은 비슷한 듯 좀 달랐다. 현대의 세련미 속에서 불쑥불쑥 자태를 드러내는 중세 풍경에서 정겨운 화려함을 체감했다. 그 중심지는 도심에 자리한 카를 광장과 마리엔 광장이었다. 전철 마리엔플라츠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서서 고개를 돌린 순간 만난 신(新)시청사 위용이 그 출발점이었다.

서기 1000년대부터 뮌헨의 중심이었다는 마리엔 광장은 아름다웠다. 신시청사는 1867년 짓기 시작해 약 40년 만에 완공한 육중하고 멋진 신고딕 건물이다. 그 자태가 참으로 빼어나서 넋을 잃고 보다가, 관광안내소에서 티켓을 사면 이 건물의 탑에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뮌헨 프라우엔 교회. 신시청사 첨탑에서 찍었다.


“오전 11시에 리프트를 타면 된다”는 안내를 받고 올라갔더니 시가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그런데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리면서 저 아래 마리엔 광장에 사람들이 새카맣게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알고 보니 오전 11시에는 신시청사의 중앙 종루에서 유명한 인형극 공연이 시작됐다. 탑 위에 올라와 있으니, 탑 아래에서 하는 인형극을 볼 수 없었지만 인파로 가득찬 광장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마리엔 플라츠는 뮌헨 도심 탐방의 출발지인 카를 광장과 이어지며 주위에 생기 넘치는 빅투알리엔 시장 등 명소가 많다.

# 뮌헨 옥토버페스트 현장의 추억

뮌헨 옥토버페스트 현장. 규모와 흥, 떼창과 맥주잔 모두 엄청났다.


아! 뮌헨 옥토버페스트에 진짜로 와보게 되다니! 이번 뮌헨 취재 시기는 저 유명한 옥토버페스트와 겹쳤다. 뮌헨 테레지엔비제의 너른 터에서 9월 중순에 시작해 10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 안 가볼 수는 없었다. 숙소에서 현장까지 택시비가 5만 원 넘게 나왔지만, 그게 장벽이 될 수는 없었다.

19세기에 시작한 옥토버페스트에는 뮌헨을 대표하는 뢰벤브로이·아우구스티너·파울라너·호프브로이 등 맥주 양조장이 일제히 참여한다. 광장처럼 큰 맥주 홀 수십 개가 서고, 도무지 필설로 형용하기 힘들 만큼 엄청나게 큰 인파가 몰려든다. ‘한국인을 흥과 떼창의 민족이라고들 하는데, 독일 사람들한테는 못 이길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 흥겹고 큰 축제였다.

거기서는 누구나 재빨리 친구가 됐다. 조지아 출신으로 뮌헨에서 의사로 일한다는 여성이 말을 걸어오기에 “옥토버페스트에선 누구나 바로 친구가 되냐?”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그럼요!”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