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용 ‘축소판’은 그만…"여성 러닝화 맞춤설계 필요"

“만약 신발이 여성의 발로 설계됐다면 지금처럼 부상에 시달리진 않았을까?”
캐나다 여성 러너들의 이런 물음이 실제 연구 주제가 됐다. 크리스토퍼 네이피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팀은 대부분의 러닝화가 남성의 발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하며 여성의 생리적·해부학적 차이를 반영한 설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BMJ 오픈 스포츠 & 운동의학(BMJ Open Sports & Exercise Medicine)’에 14일(현지시간) 게재됐다.
연구팀은 캐나다 밴쿠버 지역 여성 러너 21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참가자는 20세부터 70세까지로 달리기 경험과 주행 거리, 연령이 다양했다. 11명은 주 30km를 달리는 취미 러너, 10명은 주 45km 이상을 달리는 경쟁 러너였다. 9명은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도 달리기를 이어간 경험이 있었다.
연구팀은 참여자들에게 “어떤 신발을 고르는가”, “생애 주기에 따라 선호가 달라지는가”, “러닝화가 부상 예방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참가자들의 답변은 ‘귀납적 반성적 주제 분석 기법(inductive reflective thematic analysis)’으로 해석됐다. 이는 연구자가 인터뷰 내용을 반복적으로 읽고 공통된 의미와 패턴을 찾아 주제를 도출하는 질적 연구 방법이다.
분석 결과 여성 러너들의 신발에 대한 요구는 여섯 가지 주제로 정리됐다. 먼저 ‘편안함과 착용감’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참가자들은 신발이 발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맞는지 오래 달렸을 때 통증이 없는지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특히 앞부분은 더 넓고, 뒤꿈치는 더 좁으며, 밑창에는 충분한 쿠션이 있길 원했다.
러닝화가 부상 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참가자들은 신발이 무릎이나 발목 통증을 줄여준다고 믿었고 부상을 막으려면 ‘자신의 몸에 맞는 신발’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단순히 브랜드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전문 매장이나 피팅 전문가의 조언을 중시했다.
훈련·대회·스피드 주행·부상 회복 등 달리기 맥락에 따라 신발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참가자들은 한 켤레로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다며 목적과 환경에 따라 쿠션감, 무게, 밑창 구조가 다른 신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신발의 ‘스타일’보다 ‘편안함’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젊을 때는 색상이나 디자인을 더 고려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발의 피로감과 안정성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또 임신과 출산 시기에는 발의 크기와 너비가 변하면서 신발 선택 기준도 달라졌다. 참가자 중 일부는 임신 중 발이 커져 기존 신발이 맞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출산 후에도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아 보다 넉넉한 앞부분과 부드러운 쿠션, 강한 지지력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발의 안정성과 충격 흡수력을 강화한 신발을 선호했다. 오랜 러닝 경력으로 인해 피로 누적이나 관절 통증이 생기면서 ‘가벼운 신발’보다는 ‘지지력이 있는 신발’을 찾는 경향이 뚜렷했다.
네이피어 교수는 “50년 넘게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은 러닝화 기술이 정작 여성의 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중 러닝화의 대부분이 남성의 발 모양을 본뜬 ‘라스트(last)’ 금형으로 제작되며 여성용은 크기를 줄이고 색상만 바꾸는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참가자 대부분은 시행착오를 거쳐 신발을 찾아야 했고 명확한 정보나 지침 없이 운에 맡긴 선택을 했다.
연구팀은 여성의 발을 단순히 남성의 축소판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남녀는 해부학적 구조와 보행 방식이 다르고 임신·출산·노화에 따른 신체 변화도 뚜렷하다. 이들은 이런 차이를 반영한 러닝화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여성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체역학, 생애 주기별 변화를 반영한 성별 맞춤형 디자인이 필요하다”며 “이런 접근이야말로 편안함과 부상 예방, 성능 향상을 모두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 doi.org/10.1136/bmjsem-2025-002597
[조가현 기자 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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