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원전 수출에 자국 모델 압박하는 미국…“정부 나서지 말고 민간에 맡겨야”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 입찰을 진행하는 가운데, 미국 측이 자국 기업 웨스팅하우스의 노형 모델을 채택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수적이라 한국 정부가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체코 원전 수주로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고,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회와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8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에너지 장관 회담 참석을 위해 방한한 제임스 댄리 미 에너지부 차관은 한국 정부와 한전 고위급 관계자를 만나 사우디 원전 입찰 때 ‘한국형 모델’ APR1400이 아닌 웨스팅하우스 모델인 AP1000을 채택해 웨스팅하우스와 공동 수주하도록 요구했다.
미국 측의 압박 수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하는 등 매우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3일 열린 산업통상부 국정감사에서 “제보에 따르면 당시 추진 중이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는 등 미국 측의 압박이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앞서 한전을 필두로 하는 ‘팀 코리아’는 2018년 6월 APR1400 노형으로 사우디원자력공사가 발주한 원전 건설 예비사업자에 선정된 바 있다. 당시 한국 측에서는 APR1400은 국산 기술로 만들어져 웨스팅하우스 측에 기술 사용료 등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나와 웨스팅하우스는 반발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천 기술이라 사용료 등을 지급해야 한다며 한국 측과 지식재산권 분쟁을 벌였다.
그러다 지난 1월 한전·한국수력원자력은 웨스팅하우스와 협정을 맺으며 지식재산권 분쟁을 마무리했다. 협정에는 원전 수출 1기당 약 1조원에 해당하는 물품·용역 구매 계약과 기술 사용료를 향후 50년간, 양측의 합의가 없으면 5년씩 연장되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굴욕 계약’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명목상 한전이 팀 코리아의 대표로 입찰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실상 원전 수출은 정부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미 에너지부의 수출통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청은 미국인(또는 법인)이 할 수 있지만, 이 가운데 원자력협정 등의 당사자인 한국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APR1400이 아닌 AP1000으로 사업을 수주하면 국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에서는 원전 수출에 집중했던 윤석열 정부와 달리 이재명 정부의 경우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으며 원전 수출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코 원전 수주의 경우 정부가 무리하게 실적에 집착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수주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웨스팅하우스와 공동으로 수주하라는 미국 측 제안은 적자 부담 등 리스크는 한국 측에 전가하고 단물만 먹겠다는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실용을 내세우는 만큼 정부는 빠지고, 민간에 모두 맡겨 시장 논리로 수주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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