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책으로 교양 쌓기, 지금도 늦지 않았다
얼마 전 20대 초반 후배들과 자리가 있었다. 화제가 몇 차례 옮겨가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무역 전쟁 얘기까지 흘렀는데, 후배 한 명이 대뜸 ‘트리핀의 딜레마’ 얘기를 꺼냈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쓰이려면 그만큼 세계 각국에 풀려야 하는데,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는 거다. 경제학과 거리가 먼 전형적 ‘공대남’인 후배가 관련 내용을 어떻게 안 걸까. 적당한 교양서를 떠올렸지만, 답은 의외였다. “수능 국어 지문에서 봤어요.”
국어 지문 중 문학이 아닌 지문을 흔히 비(非)문학이라 부른다. 인문·사회 영역의 지식은 물론 과학·기술이나 예술 분야의 지식을 담은 글도 많다. 최근엔 수능 한 번에 관련 지문 3개 정도가 출제되니, 출제자들이 몇 주간 호텔에 갇혀 공들여 만든 고밀도의 글 세 편을 읽는다는 뜻이다. 통상 수험생들이 10개년 정도의 기출 문제는 공부하는 걸 고려하면, 공들여 쓴 90여 개의 토막 교양 글을 읽는 셈이다. 국어 교과서와 EBS 수능 교재까지 범위를 넓히면, 수백 개의 비문학 지문을 읽고 졸업하는 셈이다.
되레 문제가 되는 건 성인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성인 독서율은 꾸준히 하락해서 인구의 절반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성인의 비문학이라 할 수 있는 신문 열독률도 마찬가지다. 2015년까지만 하더라도 25% 수준을 유지하던 종이 신문 열독률은 최근 조사에서 9.7% 수준까지 떨어졌다. 입시에 치이는 수험생은 비문학이라는 교양의 하한(下限)이라도 있지만, 정작 성인들이 글 읽기에 훨씬 인색한 꼴이다.
이번 명절에도 어색한 대화만 오가다가 부담스러운 질문 세례로 넘어간 집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친척들이 무례하기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대화 소재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이 간극을 채우는 가장 좋은 수단이 교양이다. 개인사는 금방 바닥나지만, 교양으로 쌓은 지식은 우리 세계와 끝없이 연결되고 확장 가능하다. 책을 읽기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올해 추석은 지났지만 책을 통해 내년엔 더 교양 있는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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