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면세점·고궁은 졸업… 드라마·영화 속 ‘K일상’ 속으로
언제부턴가 서울 곳곳에서 낯선 언어들이 들려온다. 경복궁과 명동을 넘어 한강변 벤치, 낙산공원 성곽길, 심지어 잠수교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도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에 섞여 있다. 삭막하던 이태원 육교는 서울타워 야경 명소로 유명해졌다. 흉물처럼 여겨지던 코엑스 앞 거대한 손 동상 아래서는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추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넘친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장면을 찾아 서울로 왔고 그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여기는 모르겠지 싶은 곳에도 외국어 리뷰가 쌓여가는 것을 보면, 서울은 이제 세계인이 매력을 느끼는 도시임이 분명하다. 평범했던 우리의 일상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의 장이 된 것이다. 대체 무엇이 달라졌을까.
◇8월까지 1237만명 찾아와
2019년 1750만명을 기록한 외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로 주춤했다가 2023년 1103만명, 2024년 1636만명으로 빠르게 회복됐다. 올해는 8월까지 1237만명에 달했고, ’2000만명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관광객이 훨씬 많아졌다고 체감하는 것은 단순히 숫자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그들의 ‘관광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이드와 버스를 중심으로 숙박·식음·쇼핑 위주로 진행되던 단체 관광은 줄고, 가족이나 친구끼리 하는 개별 여행이 급증했다. 이들에게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던 ‘일상의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 한국 여행의 목표가 됐다.

해외 관광객 가운데 가장 비율이 높은 국가는 여전히 중국이다. 그 뒤를 일본, 대만, 미국, 홍콩이 따른다. 특히 대만 관광객은 서울만큼 부산을 좋아하고, 일본 관광객은 2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짧게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이 특징이다. 씀씀이는 미국이 1인당 3311달러로 단연 최고다. 중국 관광객도 1859달러를 지출하지만 2015년(2319달러)에 비하면 다소 줄었다. 이는 쇼핑에 집중하는 단체 관광객 대신 알뜰한 개별 관광객이 늘어난 결과다. 일본 관광객 지출은 984달러로 적은 편이다. 가장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원하는 것을 알뜰하게 찾아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면세점 대신 올리브영·다이소
과거 우리는 외국인 눈높이에 맞춰 볼거리·먹을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한강변 편의점에서 즉석으로 끓여 먹는 ‘한강 라면’은 이제 낭만의 상징이다. 맵고 끈적해서 서양인들이 싫어한다고 생각한 떡볶이는 모두가 사랑하는 음식이 됐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더 이상 면세점을 찾지 않는다. 가성비 좋은 화장품을 비롯한 다양한 소품을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올리브영·다이소 등이 쇼핑 명소가 됐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MZ세대의 취향은 세계적으로 비슷해졌다. 이제 여의도는 전 세계 MZ세대가 찾는 관광 명소다. 여의도 현대백화점은 외국인 매출 비율이 2023년 3%에서 2024년 15%로 급등했다. ‘글로벌 MZ의 힘’이다. 청계천 옆 광장시장에서 이불을 몇 채씩 사 가는 대만 관광객들처럼, 외국인들은 이제 원하는 것을 구석구석에서 알아서 척척 찾아낸다. 기성세대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다.
◇ K컬처도 좋지만 외국인 배려해야
‘K팝 데몬 헌터스’ 등 대중문화 콘텐츠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이제 ‘멋있고 가보고 싶은 곳’이 됐다. 물론 과제도 많다.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만 몰린다는 점이 첫째다.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켜 줄 고급 관광 콘텐츠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거의 모든 곳에 한국어 안내가 있는 일본처럼, 우리도 일상에서 외국인을 배려하는 데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통용되는 앱과 시스템이 우리나라에서도 원활히 작동하도록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배려는 드러내지 않아도 고마움과 호감을 갖게 만든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멋있고 매력적인 나라가 됐다. 우리의 문화·언어·생활양식·공간에 호감을 갖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 친구도 늘어난다. 더 이상 강박적으로 ‘무엇을 보여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관광객들은 이미 우리의 진짜 모습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일궈나갈 ‘오늘의 삶’이 곧 ‘내일의 한국’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이 IT 강국이라고?
외국인 관광객은 불편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생각한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인터넷과 디지털 콘텐츠로 한국을 알게 되곤 한다. 하지만 정작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의 IT 시스템이 낙후했다고 여긴다.
스마트폰을 통한 길 찾기와 대중교통 이용부터 쉽지 않다. 중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구글 맵이 길 찾기, 대중교통 이용, 가게 정보 제공을 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국내에 서버를 둬야 한다는 우리 정부와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구하는 구글이 15년 동안 팽팽히 맞선 결과다.
많은 나라에서 우버·그랩 등 차량 호출 앱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우리는 택시 외의 차량 서비스는 매우 제한적이다. 일본은 물론 대만·태국, 심지어 중국 베이징에서도 신용카드만 있으면 바로 지하철을 탈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따로 승차권을 사야 한다. 우리는 2007년 페이온이라는 자체 시스템 기반의 별도 교통카드 규격을 만들었다. 하지만 세계 주요 도시들이 일반 신용카드로 요금을 지불하는 오픈 루프 시스템을 채택해 한국 시스템은 남들과 호환되지 않는 고립 상태가 됐다. 일본은 최근 올림픽·엑스포를 계기로 관광객을 위한 디지털 전환에서 우리보다 빠른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사업자들의 다국어 지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들에게는 불편하다. 오픈 루프 시스템을 채택하려면 기존 교통카드 사업자, 카드사, 금융 당국,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찾기를 바란다면 정부·지자체 등이 더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지방 공항 입국은 15%뿐
외국인 지방 관광 ‘숙제’

수도권 집중은 내국인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관광객의 목적지를 서울 이외의 곳으로 적절하게 분산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관광 산업을 위한 필수 과제다.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에 집중되는 현상은 그들의 73%가 인천·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방 공항 입국 비율은 15.1%에 불과하다.
◇대만 관광객 김해공항 이용 26%
이런 상황에서 김해공항을 거쳐 부산을 찾는 대만 관광객의 급증이 눈에 띈다. 2024년 부산을 찾은 대만 관광객이 2023년보다 2배 증가한 50만명을 기록해 부산 해외 관광객 중 1위를 차지했다. 대만 관광객의 김해공항 이용 비율은 26%에 이른다. 어느 나라 국민이나 자국 항공사 이용을 선호하는데, 대만은 중화항공·타이거에어 등의 김해 직항 운영이 대만 관광객 부산 방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외항사 취항 유치 배워라
이에 비해 한국~일본 노선은 2024년 기준으로 26도시 48노선이 운영 중이지만 일본 항공사들은 인천·김포에만 취항한다. 2024년 일본 방문 한국인이 882만명에 달했지만 한국을 찾은 일본인이 322만명에 그친 데는 일본 항공사 취항지 제약이 어느 정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외국인 관광객 지방 유치를 위해서는 외항사들의 지방 공항 취항을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은 ‘지방 관광 인식 제고’라는 목표 아래, 국토교통성과 일본 관광청을 중심으로 외항사의 지방 공항 취항 유치를 위한 보조금 지급, 여행 상품 개발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 소도시까지 우리나라 항공사가 취항하고, 젊은 여성 여행객들이 일본 시골을 찾는 데는 이런 노력이 배경에 있다. 큰 터미널과 긴 활주로만으로 관광객을 불러올 순 없다. 더 많은 외항사를 유치하려는 재정적 지원과 매력적 관광 콘텐츠 발굴을 병행할 때 외국인 관광객의 서울 편중을 완화할 수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헬로비너스 출신 이화겸, 3월 결혼…“든든한 사람과 새 출발”
- 윤영호 “김성태 전 국힘 의원 만나러 갈 때 2000만원 준비...전달하진 않아”
- 경북관광공사 ‘APEC 시진핑 발자취’ 상품 개발한다
- 인신매매범에 납치된 동생…AI 덕에 30년만에 상봉한 中남매
- 프로배구 대한항공·도로공사, 정규 리그 1위 확정... 챔피언 결정전 직행
- [만물상] 호르무즈
- 희생과 헌신을 기록하다··· 제2회 경상남도 한마음 인류애상 시상식
- 조희대 ‘법왜곡죄’ 사건, 서울경찰청에 넘겼다
- 니콜 키드먼, 결혼 19년만 이혼 심경 “껍데기 속에 갇혀 조용히 지냈다”
- 쿠팡 ‘개인정보 유출’ 첫 재판... 이용자들 “1인당 30만원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