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토남’은 본능? 날뛰면 끝이다

폭주(暴走). 사전적 의미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난폭하게 달린다는 뜻입니다.
제어(制御). 상대편을 억눌러서 제 마음대로 다룬다는 뜻입니다.
두 단어는 물과 불처럼 상극이면서도 상호보완적입니다. 멈추지 않는 폭주는 파멸을 부르고, 달리지 않는 제어는 정체 상태에 머무니까요. 이곳저곳에서 거침없는 폭주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요즘 힘차게 달리되 절제의 미덕을 알아야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머스트에 진입한 수컷 코끼리를 제어하는 지혜와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수컷 코끼리의 질주 본능 ‘머스트’
머스트기 코끼리는 괴물과 흡사
그걸 제어한 건 ‘형님’의 지혜
머스트란 수컷 코끼리의 광포한 상태
수컷 코끼리의 광포한 상태를 머스트(musth)라고 합니다. ‘해야 한다’는 뜻의 머스트에 h 하나만 붙었어요. 취하다, 중독된다는 의미의 중동지역 언어에서 유래됐습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코끼리 세 종류(아프리카코끼리·아시아코끼리·둥근귀코끼리)에게서 발현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코끼리의 발정기만 이렇게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을까요? 그만큼 유별나고 그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100배까지 치솟는 ‘테토’
‘테토남’이라는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테스토스테론은 남성다움, 수컷다움의 상징입니다. 거침없는 욕망, 진취성, 저돌성을 상징하는 표현이죠. 인간은 여느 젖먹이 짐승들과 달리 1년 열두 달이 번식기입니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치명적 위협 요소는 아닙니다. 이성으로 통제하니까요. 반대로 본능이 이성을 누르고, 애욕이 생체 리듬에 좌우되는 짐승의 세계에서 테스토스테론은 때로는 공포감을 몰아오게 하는 치명적 물질입니다.
육상동물 중 가장 육중한 덩치와 파워를 자랑하는 코끼리는 짝짓기 철에 돌입하면 평소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많게는 평소의 100배까지 치솟습니다. 여느 수컷 호르몬과는 차원이 다른 까닭입니다. 코끼리 전문가 신시아 모스는 머스트 전후의 코끼리 변화를 ‘코끼리 버전의 지킬과 하이드’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초록으로 물드는 사타구니
진화한 동물일수록 암수의 신체적 차이가 뚜렷하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사람이, 유인원이, 사자가 그렇습니다. 코끼리의 경우 암수의 덩치 차이는 나지만, 암컷마저 기다란 엄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얼핏 성을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머스트’는 코끼리의 암수 식별을 아주 쉽게 만들어줍니다. 수컷을 ‘괴수’로 만들어 주거든요. 머스트에 ‘걸린’ 수컷 코끼리의 몸은 이렇게 바뀝니다. 눈 뒤 귀 쪽 방향으로 피부가 우툴두툴 부풀어 올라요. 찐득찐득한 점액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그 점액에서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동물원 사육사들도 이 ‘냄새’를 통해 머스트의 도래를 직감합니다. 사타구니도 달라집니다. 주기적으로만 쏴아아 소변이 떨어지던 곳에서 지속적으로 액체가 줄줄 흐릅니다. 그러다 보니 뒷다리까지 이끼가 낀 듯 녹조처럼 변질돼 있어요.
아무도 못 막는 ‘성난 오줌싸개’
머스트 도래 시기는 대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에요. 그러다 50~60세쯤까지 이어집니다. 생체 리듬이 묘하게 사람과도 겹칩니다. 철들 나이에 오줌 질질이라니 ‘오줌싸개’라고 부를 법도 합니다. 그런데 그냥 오줌싸개가 아닙니다. 잘못 건드렸다가 뼈도 남아나지 않는 울트라 초강력 파워 오줌싸개예요.
코끼리가 얼마나 강력한 짐승인지 말해주는 순위가 있습니다. 영국 BBC 사이언스가 2023년 12월 소개한 세계에서 가장 힘센 동물 순위를 보면 6000㎏의 물건을 들어 올리는 아프리카 코끼리 수컷이 부동의 1위였습니다. 심지어 ‘코끼리 아저씨’의 그 코만으로도 200㎏의 물건을 들 수 있어요. 이 코에만 사람 전체 근육 수의 70배에 육박하는 4만개의 근육이 있어요.
생식 본능이 수반하는 파괴 본능
머스트는 코끼리를 괴수로 만듭니다. 암컷을 향해 거칠게 어필하는 과정이지만 필연적으로 파괴와 난동이 수반됩니다. 수컷끼리 서열 정리를 위해 거칠게 싸웁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밟고 부수려는 폭력성이 극대화되다 보니 물소나 코뿔소 등 평소에는 잘만 지내던 초식동물들이 횡액을 당합니다. 나름 한 덩치 한 파워 하는 이 동물도 하이드·프랑켄슈타인급으로 돌변한 코끼리의 발길질을 막아낼 재간은 없을 겁니다.
청소년에게 ‘제어’ 가르치는 건 어른 몫
엄청난 육체적 파워와 지능·지혜를 겸비한 것으로 유명한 코끼리는 암수 구분이 확실한 동물입니다. 나이 들고 경험 많은 암컷이 이끄는 메인 무리는 ‘아기’가 ‘수컷’이 될 즈음이면 가차 없이 축출합니다. 소년은 어른 코끼리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집단생활을 하는데요. 이 무리에서 소년 코끼리의 폭발적인 호르몬은 자신보다 압도적 정치와 파워를 가진 ‘어른’과 함께했을 때 제어됩니다.
영국 BBC 어스에 이에 관한 얘기가 실렸어요.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레인스버그 국립공원에 한때 절멸됐던 코끼리를 복원하기 위해 크루거 등 다른 국립공원에서 코끼리를 들여왔어요. 물리적 어려움 때문에 덩치가 큰 중장년 수컷 코끼리들은 제외하고 암컷과 어린 코끼리들 위주로 데려왔죠. 어린 수컷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혈기 왕성한 20대에 접어들면서 그 주변에서는 애먼 코뿔소들이 우수수 죽어나가기 시작했어요. 코뿔소 사체의 온몸에는 코끼리에게 짓밟히고 엄니에 찔린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상처가 났죠.
이 살육은 결국 나이 들고 덩치 크고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경험 많은 수코끼리들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잦아들었습니다. 코끼리도 경험으로 알게 된 겁니다. 날뛰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욕망은 동력입니다. 방조하면 재앙이 되고 억압하면 거세됩니다. 코끼리들은 오랜 세월 대를 이어오며 제어하는 법을 터득해 왔어요. 코끼리도 배운 것이 증명되었어요. 제어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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