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 톺아보기]추억 속 교련복…1971년 교련파동
남자고등학교의 교련시간에는 목가리개, 허리띠, 각반에 교련복을 입고 전쟁 지식, 제식훈련, 군대 예절, 총검술, 독도법(지도 읽는 법), 화생방 훈련, 화기학, 전술학 등을 배웠으며, 여자고등학교에서는 응급처치·붕대법·간호법, 국방과 우리의 책임, 독도법 등을 배웠다. 남자 대학생들은 1학년 때 병영 집체 훈련을 받았다. 유격, 각개전투, 구보, 화생방 등을 훈련하고 실탄 사격까지 했다.

◇학원 병영화 교련교육 반대
1971년 1월 정부가 교련 교육을 대폭 늘리는 등 강화 방안을 발표하자 대학가에서는 교련 반대 데모로 시끌시끌했다.
경남일보보 4월 21일 2면 '대학·학생·교련, 이른바 교련파동에 붙여'라는 사설을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학원의 주인은 학생이다. 따라서 자치와 자유정신의 훈련도장인 대학의 주체는 역시 학생이다.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 교련문제로 하여 대학이 휴교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학생의 처지에서는 3·1운동, 항일운동, 탁치반대, 6·25학도병, 3·15, 4·19, 한일협정 반대 등 이유가 있어 일어날 때는 반항하여 일어나는 것이 학생운동사의 생명이요, 지주다'며 '교련사태는 교련을 둘러싼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 대한 경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교부당국은 '4·19와 양대 선거(총선과 대선)가 겹치는 이 시기에 교련파동을 일으켰는가 묻고 대학교수들이 학생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지 않고 휴업해야 하는지 질타하면서 학생들도 강의실로 돌아가라'고 호소하고 있다.
교련파동은 1971년 신학기부터 10월 15일까지 학생들이 박정희 정권의 교련 강화 방침에 반대하며 전개한 운동을 일컫는 것으로, 학생들은 학생군사훈련 강화 조치가 학원병영화를 통해 학생들의 비판의식을 억압하고 장기 집권의 초석을 놓기 위한 음모라고 비판하며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교련반대운동은 약 1년간 학원 자유와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갈망 위에서 선거 감시, 선거부정 반대, 부정부패 퇴출, 사토 수상 방한 반대, 학원 탄압 반대 등 다양한 의제와 결합되며 전개됐다.

◇위수령 발동 군인 대학 투입
이해 4월 27일 대선에서는 박정희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90여만표 차로 3선으로 당선됐으며, 5·25총선에서는 야당이 약진해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113명, 신민당이 89명이 당선됐다. 문교부에서 교련문제 개선을 검토하기도 했다.
10월 16일 본보 1면 기사에는 '불법 데모·성토 일체 불용/질서파괴교(校) 자치불인정' 제하의 기사에서 학원질서 확립 특별명령(위수령)을 발표했다. 17일자에는 '서울에 위수령·10개교 휴업령'을 내리고 서울·연대 등 군병력이 출동해 학생 1889명을 연행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교련학생 거부자가 많이 생겨나고 데모가 확산되자 내려진 위수령은 계엄령과 유사한 치안법규로 1950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돼 2018년까지 존재한 제도다. 위수령은 비상사태나 자연재해 등이 발생했을 때, 군사시설 보호와 치안 유지를 위해 육군부대가 주둔하는 것을 뜻한다. 위수령과 계엄령은 차이가 있다. 위수령이 대통령의 명령으로 시행되며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고 제한적인 범위에서 군이 치안 유지 작업을 지원한다.
◇교련의 역사
교련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됐다.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학원통제와 학생 동원을 위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으나 1960년 4·19 혁명으로 폐지됐다. 그러다가 1968년 이른바 김신조 사건으로 불리는 1·21 사태가 발생하자 학생들에게도 군사교육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발생하면서 1969년부터 고교 필수과목으로 교련이 부활했다.
민주화 되면서 결국 교련은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학 교련은 1988년 11월 25일 폐지가 결정됐다. 고등학교 교련은 단계적으로 사라졌다. 이런 이유로 50대 초반의 사람들은 교련에 대한 추억을 아직도 갖고 있다. 남학생의 경우 1977년생까지 교련복을 입어야 했다.
◇유럽에서 부활하는 교련
폴란드와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의 러시아 밀착, 유럽의 안보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로 교련시간을 부활시켜 고등학교 학생에게까지 사격훈련을 시키고 있다. 프랑스는 15~17세 남녀청소년을 대상으로 군복을 입혀 장애물 넘기와 물속 생존법 등 기초 군사훈련을 12일 동안 시범 실시했으며, 2026년 의무화를 추진 중에 있다. 폴란드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의무적으로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이 유럽 방위에서 손을 땔수록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8세 어린이까지 수류탄 투척 훈련 등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다.
지난 4월, 한국전쟁에 참전해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신원이 75년 만에 확인됐는데 17세 나이였다고 한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평균 나이는 22세였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군인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있어 90%가 한국전쟁 참전을 기피하거나 숨어 대신 고등학생을 징집해 참전시켰다 한다.
대학교 1학년 때 받은 병영집체훈련과 관련 경상국립대학교 84학번 김태주씨는 "훈련을 받기 위해 부대 입구에 내려서부터 좌우구르기, 포복 등으로 잔뜩 겁을 먹었던 기억과 최전방에서 현역들과 야밤에 경계보초를 서는데 철책 안에서 고라니들이 눈빛들과 캑캑거리는 울음소리가 생각난다"고 회고하면서 "화생방실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최루가스를 맡고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절규했던 상황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박도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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