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간 중국 청년운동 “미국은 더 이상 등대가 아니다”

박민희 기자 2025. 10. 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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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차이나 퍼즐] 21 _노동운동·페미니즘·‘탕핑’
베이징 중심가 왕푸징의 쇼핑몰에서 음식 배달 노동자들이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잠시 쉬고 있다. 베이징/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노란, 파란, 빨간 점퍼를 입은 청년들이 한손엔 휴대전화, 한손엔 배달 음식을 들고 숨 가쁘게 달려간다. 중국의 주요 도시 어디서나 마주치는 풍경이다. 노란 점퍼는 중국 최대 음식 배달 기업인 메이퇀의 배달 노동자이고, 파랑은 알리바바 산하의 얼러머, 빨강은 올해 새로 업계에 뛰어든 징둥의 노동자들이다.

‘와이마이’로 불리는 음식 배달 노동자와 ‘디디추싱’ 앱을 기반으로 한 차량 호출 서비스 운전기사는 중국 청년들의 현실을 상징한다. 내수 경제 침체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진 이들이 면허증만 있으면 가능한 음식 배달과 차량 호출 운전기사 일에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극한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약 8400만명이 플랫폼 호출에 따라 일하는 음식 배달, 택배, 차량 호출 노동자다. 제조업에서도 플랫폼의 지시에 따라 여러 공장을 며칠 몇달씩 일하는 임시 노동자들이 약 4천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을 포함해 중국 당국이 ‘유연 고용’으로 부르는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은 2억명 정도로 추산된다. 중국 노동인구 약 8억7500만명 가운데 4명 중 한명, 도시 노동자의 약 40%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 대부분은 20~30대 청년이다.

한해 1200만명이 대학을 졸업하는 지금 중국 청년 세대는 역사상 가장 높은 교육을 받고 개혁개방과 초고속 성장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은 갑작스럽게 막막해졌다. 정부가 발표하는 청년 실업률은 19%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화웨이 같은 첨단기업이 미국의 제재를 뚫고 중국 첨단기술 자립을 이루어 가고, 전기차나 딥시크 같은 인공지능(AI) 기업들의 대약진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의 첨단기술과 이공계 인재 양성에 대한 선망과 숭배 열풍마저 불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정책적 우대와 막대한 자원을 첨단기술에 집중하는 동안, 이 흐름에서 소외된 민생 분야의 침체는 계속 깊어지는 것도 또 다른 일면이다. 이 극과 극을 모두 살펴야 중국의 현실이 제대로 보인다. 한해 수백만명씩 사회로 나오는 이공계 대졸자 가운데 인공지능과 로봇 등 첨단기술 기업에 취업하는 이는 몇명 정도일까. 소득과 기회의 불평등은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중국 청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太卷了)이다.

아예 경쟁을 거부하고 집에 틀어박히는 청년들은 ‘탕핑’(드러눕기) 또는 ‘쥐 인간’ 등을 선언하기도 한다. 샤오홍수 같은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쥐인간 일기’(老鼠人日記)라는 제목으로 집에 틀어박혀 온종일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와 배달 음식에 의지해 ‘낮은 에너지’로 살아가는 모습을 공유하는 영상이 넘쳐난다.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불안감을 일종의 유희처럼 소비하는 모습이다.

중국 청년들의 고민은 한국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요한 차이는 막막함과 좌절을 호소하고 함께 연대해 해법을 찾을 통로까지 막혀버린 중국의 현실이다. 2015년 중국 당국은 300명 넘는 변호사와 인권운동가들을 한꺼번에 체포·구금한 ‘709 사건’을 신호탄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모든 활동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조직은 강제로 해산당했으며, 인터넷부터 공장과 대학까지 삼엄한 감시와 통제 아래 있다.

시진핑 시대 중국에선 노동운동도, 학생운동도 모두 죽어버린 듯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얼마 전 어렵게 중국의 청년 활동가 10여명을 만나, 바람이 불면 눕는 풀처럼 깊게 뿌리를 내리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버티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중국 현실에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

중국 내에서 조직적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은 매우 어려워졌지만, 소규모의 ‘지하운동’들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 청년은 노동자와 직업학교 학생들이 함께 모여 글을 쓰거나 동영상을 만드는 예술 활동 모임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사회운동은 죽지 않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하고 있다. 예술활동, 독서회, 토론회 등의 형식으로 모여서 현실에 대해 공부하고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감시와 통제는 점점 더 삼엄해지지만, 이런 활동까지 당국이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 언론인은 “배달노동자들의 공개적 노동운동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광둥, 홍콩 등에서 배달노동자들의 조직 운동, 또는 ‘함께 밥 먹는 모임’ 형식으로 느슨한 조직화와 노동운동의 시도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계기로 ‘자스커지 사건’, 미투 운동, 강압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과 그에 반대해서 벌어진 백지시위를 들었다.

2018년 광둥성 선전의 기계 제조 공장인 자스커지(JASIC)에서 노동자들이 독립 노조를 만들려다 회사의 탄압을 받자 중국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나섰다.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의 연대에서 위기감을 느낀 중국 정부는 노조 결성을 주도한 노동자들과 이들을 지원한 학생들을 대거 체포하고 처벌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주요 대학에서 좌파 학생운동 서클과 조직들을 일망타진하듯 탄압하고 해산시켰다. 자스커지 노동자 지원운동에 참여했다가 탄압을 받은 뒤 지금은 홍콩으로 이주해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한 활동가는 “자스커지 활동을 통해서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마주한 열악한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실업 문제, 배달 노동자들의 현실에도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탄압이 더 심해진 지금은 현실에서 모이기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모임이 주요 통로가 되었다고 했다. “감시를 피해 온라인에서 일정 시간 동안 모였다가 완전히 사라지고, 인터넷 은어로 소통한다.”

최근에는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이 비판적 사회 운동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면 인터넷에서 순식간에 지지하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지지 글들이 올라온다. 젊은이들이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을 통해 현실을 깨닫게 되는데, 이들이 결집하는 과정에서 과거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2023년 11월 제로 코로나 봉쇄에 저항하는 백지시위 당시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역할을 했다.

이들 청년 활동가들은 3~4년 전부터 ‘무정부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묻자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당국이 노동운동을 탄압하면 페미니즘으로, 그다음에는 무정부주의로, 정부가 한 구멍을 막으면 또 다른 구멍을 찾아가는 상황이다.” “자스커지 노동운동과 백지시위 이후 탄압, 조직 단체활동을 할 수 없게 돼 소규모 모임 위주로 활동하다 보니 새로운 것을 찾게 되면서 무정부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소규모 모임’ 밖의 현실과는 접점을 찾기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는 고민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지금 중국의 ‘무정부주의’는 무엇일까. 한 운동가는 “엄밀한 이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권력에 대한 태도”라면서 “탈중앙화, 권력 자체에 대한 의구심, 조직 내 의사 결정 구조의 민주화에 대한 관심 등을 무정부주의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는 중국에서 공산당의 탄압과 독재에 맞서는 것이 많은 중국 활동가들의 주요 관심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중국공산당과만 싸운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고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과거 세대는 중국 정부에 저항하기 위해 미국 민주주의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을 보면 그곳의 민주주의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렇게 ‘모범’이 사라진 현실에서 근본적 해법을 찾다 보니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세기 초부터 미국은 민주와 자유를 꿈꾸는 중국 청년들의 등대였다. 중국의 통치 체제와 억압에 불만을 느끼는 많은 중국인들이 미국 민주주의에서 희망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 중국 청년들은 더 이상 미국 민주주의에 기대할 수 없음을 절감한다.

지난 8월 초 쓰촨 장유시에서 학교 폭력 사건이 벌어진 뒤 가해 학생들의 부모가 특권층이라는 의혹이 나오면서 시민들이 거리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에 나섰다. 다큐멘터리 ‘장유사건’ 갈무리

올 들어 방글라데시와 네팔 등에서 부패와 불평등에 항의한 제트(Z)세대(1997∼2012년생)의 시위가 ‘혁명’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도 불만은 곳곳에 퍼져 있다가 항의 시위로 폭발하지만, 곧 잊히곤 한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 사회를 아래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조직적인 힘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지하의 활동가들은 사라지지 않는가. “노동운동도 공민운동도 정부의 탄압을 피해 점점 지하로 들어가고 소규모가 되었지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0.1, 0.1, 0,1씩 작게 흩어져 생존하고 있지만 풀씨처럼 곳곳에 뿌려져 살아남아 있다가 제로 코로나에 대한 항의처럼 계기가 있으면 서로 연결돼 조금씩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어두운 밤에 유난히 반짝이던 한 노동운동가의 진지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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