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힐링 속으로-경북을 걷다] 86. 울릉도 성인봉
가을빛이 깊어지는 10월, 울릉도는 바다만큼이나 산이 아름답다. 섬의 중심부에 우뚝 솟은 해발 984m 성인봉은 울릉도의 '지붕'이자, 섬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이번 '걸어서 힐링 속으로–경북을 걷다'에서는 나리분지에서 출발해 신령수를 지나 성인봉 정상에 오르는 최단 코스를 직접 걸으며 가을 울릉도의 속살을 담아본다.
성인봉 정상까지는 왕복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소요되며, 초입은 완만하지만 중반 이후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 만큼 등산화와 스틱, 충분한 수분을 챙기는 것이 좋다.

△나리분지에서 시작하는 여정.
울릉도의 오랜 화산활동이 빚어낸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보기 드문 넓은 평지다. 화전민 가옥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어, 산행 전후 둘러보기에 좋다. 가을이면 분지 들판은 황금빛 억새와 붉게 물든 단풍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분지를 지나 숲길에 들어서면, 울창한 삼나무와 굴참나무가 하늘을 뒤덮으며 등산객을 맞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숲의 싱그러움 속에서 발걸음은 자연스레 차분해진다.

△신령수에서 숨 고르기.
산행 초입에서 40분가량 오르면 전설 같은 약수터, 신령수가 나타난다. "한 모금만 마셔도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울릉도 사람들에게는 신령스러운 물로 통한다. 등산객들은 너나없이 병에 물을 채워 넣으며 정상으로 향할 힘을 보충한다.
신령수는 단순한 약수터를 넘어, 울릉도의 깊은 숲과 어우러진 쉼터이자 산행의 전환점이다. 이곳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89호, 울릉도 성인봉 원시림.
신령수를 지나며 숲은 더욱 깊어진다. 이 구간은 천연기념물 제189호 '울릉도 성인봉 원시림'으로 지정된 곳이다. 해발 400m 이상에 펼쳐진 이 숲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원시림으로, 사철나무와 굴참나무, 섬단풍나무 등이 어우러져 빽빽한 숲을 이룬다.
가을빛이 물든 지금은 그 아름다움이 절정이다. 붉은 단풍과 노란 잎이 서로 물결치듯 흔들리고,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숲속은 은은한 황금빛으로 빛난다. 숲길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원시림 특유의 고요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울릉도의 생태적 보고, 희귀식물의 천국.
성인봉 원시림은 단순한 숲이 아니라 울릉도의 독특한 생태계를 고스란히 품은 보고(寶庫)다. 울릉도는 섬 특유의 고립된 환경 덕분에 희귀 식물과 특산종이 다양하게 자생한다.
대표적으로 섬말나리, 섬오갈피, 섬노루귀, 울릉국화 등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성인봉 자락 곳곳에서 피어난다. 특히 섬말나리와 울릉국화는 학계에서도 귀중한 연구 자료로 꼽히며, 울릉도의 생태적 가치를 높여주는 상징적 존재다.
가을철 숲길에서는 섬단풍나무가 울긋불긋 단풍을 물들이며 등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숲 바닥에는 희귀 난초류와 고사리가 자리를 지킨다. 성인봉 원시림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식물 도감'이라 불릴 만하다.

△정상에서 만나는 울릉도의 파노라마.
마지막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면 드디어 성인봉 정상이다. 이곳에서는 울릉도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사동항과 태하의 푸른 바다가, 북쪽으로는 저동항과 도동항이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맑으면 수평선 너머 독도의 실루엣이 뚜렷이 눈에 들어와, 등산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정상에서 맞는 10월의 바람은 유난히 청명하다. 파도소리와 숲의 숨결이 뒤섞여 들려오고, 바다와 단풍이 어우러진 절경은 "울릉도의 가을은 바다보다 산이 빛난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산행 후 즐길거리.
하산길에 다시 만나는 신령수 한 모금은 갈증을 달래는 최고의 보상이다. 나리분지에 내려오면 화전민 가옥을 둘러보며 옛 울릉도인의 삶을 엿볼 수 있고, 산행으로 지친 몸은 울릉도 특산음식으로 달래면 좋다. 삼나물 무침, 더덕구이 엉겅퀴국은 산행의 피로를 잊게 만든다.
울릉도의 성인봉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다. 나리분지의 풍경, 신령수의 전설, 천연기념물 원시림의 숲, 희귀식물의 향연, 그리고 정상에서의 장대한 전망까지, 길 위의 모든 순간이 살아 있는 역사와 자연의 교향곡이다.
가을의 성인봉은 특히 빛난다. 원시림의 단풍은 울릉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정상에 서면 섬과 바다가 한 화면에 담긴다. 이번 가을 울릉도 성인봉에서 걷는 길은 그 자체로 '힐링'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