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창조적 파괴를 하고 있는가? 노벨경제학상의 그림자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필리프 아기옹, 피터 하윗
슘페터 ‘창조적 파괴’ 수학적 증명
하윗 “한국, 반독점 정책 필요”
제조 대기업 위주 재벌들
사실상 독과점으로 경쟁 저해
신생 서비스 기업들은 해외로
이창용 “1.8% 성장이 우리 실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성장률 1.8%가 우리 실력"이라며 올해 1월 신년사와 2월 기자회견에서 여러 번 언급한 이론이 '창조적 파괴'다. 그리고 지난 13일(현지시간)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필리프 아기옹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와 피터 하윗 미국 브라운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창용의 위기감을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짚어봤다.
![한스 엘레그렌 스웨덴 왕립과학원 사무총장(가운데)은 13일(현지시간) 조엘 모키어, 필리프 아기옹(화면 가운데), 피터 하윗(화면 왼쪽)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4/thescoop1/20251014180009221rdis.jpg)
"매출 상위 15대 기업을 10년 전과 비교하면, 미국은 7개 기업이 신규로 진입했지만, 우리는 2개 기업만이 바뀌었다. 신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1개에 불과하다. 슘페터가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으로 강조한 '창조적 파괴'는 창조만큼이나 파괴에 방점이 찍혀 있다 … 우리도 미국처럼 혁신적인 새로운 기업들이 경쟁과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주식시장을 이끌어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월 2일 신년사에서 총 4회에 걸쳐 '창조적 파괴'를 언급했다. 우리가 '창조적 파괴'를 꾀해야 저성장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이창용의 위기감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창조적 파괴'조차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먼저 창조적 파괴를 자세히 살펴보자.
■ 슘페터와의 차별점=조지프 슘페터는 1942년 발표한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창조적 파괴는 산업적인 변이 과정"이라며 "끊임없이 내부로부터 경제 구조를 혁신하고, 기존의 구조를 파괴해 새로운 구조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지만,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진 못했다.
필리프 아기옹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피터 하윗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비전에 불과했던 이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1992년 수학적으로 증명한 공로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들은 슘페터의 핵심 아이디어를 증명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슘페터와 달리 독과점법을 통한 경쟁 확보를 강조하고, 국제 무역, 불평등 해결, 과세를 통한 재분배의 필요성을 강조해 자신들만의 창조적 파괴 이론을 완성했다.
■ 슘페터의 논쟁적 비전="사회주의와 차별화되는 자본주의의 본질이 창조적 파괴이고, 이를 통해 경제는 불황과 호황이라는 순환기를 갖지만, 결국은 성장한다"는 슘페터의 주장은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창조적 파괴에는 반드시 희생자가 발생하기 때문이고, 경제는 1800년 이전에도 경기순환 없이 성장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기순환이라는 표현 자체가 침체와 불황에도 순응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한계도 있다. 슘페터는 독점을 "파괴적 혁신과 비례"한다며 일종의 훈장처럼 옹호했고,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위한 작은 희생" 정도로 무시하면서 불황기에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슘페터는 자본주의 체제가 멸망할 운명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절박함에서 책을 썼기 때문에 나온 개념들이다.
■ 창조적 파괴의 희생자들=아기옹과 하윗 교수는 이런 지점에서 슘페터와 거리를 뒀다. 아기옹은 2022년 1월 캐나다 보수매체 더허브 팟캐스트에 출연해 "슘페터는 어제의 혁신가들이 후속 혁신을 막아설 수 있다는 근본적인 두려움을 가졌지만, 우리는 그의 운명론을 거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창조적 파괴는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포용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는 독점, 노동법 위반, 자연 파괴를 규제하고, 시민사회는 금권金權과 국가 권력이 결탁하는 일을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료 | 니혼게이자이신문. 참고 | 71개 품목 조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4/thescoop1/20251014180010507nauc.jpg)
아기옹과 하윗이 요즘 자주 언급하는 인공지능(AI)에 뺏긴 일자리의 행방도 마찬가지다. 경제 전체로 보면 없어지는 일자리 수와 새로 생기는 파괴적 기업들의 일자리 수가 같을 수 있지만, 일자리의 주인은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주된 일자리에서 쫓겨나 직업교육을 받고 들어간 직장에서 예전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수상자들이 덴마크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극찬하는 이유기도 하다.
아기옹은 "덴마크는 실직해도 2년 동안 급여의 9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기 때문에 미국에서처럼 실업자의 사망률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와 시민사회가 아무리 노력해도 창조적 파괴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자 혹은 패배자를 모두 아우를 수는 없다.
■ 경쟁 실종된 한국=아기옹 교수는 2021년 한국은행과 공동 보고서에서 재벌 대기업에 자본이 집중되면서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한국의 산업 역동성이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하윗 교수는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은 확고한 반독점 정책을 가지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한국은행도 여러 차례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로는 우리 경제의 저성장을 해결하지 못하므로 새로운 혁신적인 신생기업들에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왔다(더스쿠프 8월 5일자 '재벌은 성장 주체일까 걸림돌일까: 한은 총요소생산성 보고서의 함의' 참조).
왜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 경제에 경쟁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을까. 우리는 사실상 신규 경쟁자의 시장 진입이 불가능한 나라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476개 산업에서 독과점 업종은 52개에 달하고, 이 중 39개 산업이 2011년 이후 한 번도 순위가 바뀌지 않았다(공정거래위원회 시장 구조조사).
한국은 '창조적 파괴'의 부작용들에조차 아직 근접하지 못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1940년대 제조업이란 '사물의 경제'에 적용되던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서비스라는 '사고의 경제' 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숙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부품 제조 재벌 대기업들로 자본이 집중되면서 이들이 포진한 산업들이 사실상 독과점으로 운영되고, 서비스 기업들은 국적을 바꿔 자본을 조달하고 있다. 2011년 넥슨, 2016년 네이버 라인, 2024년 네이버웹툰. 모두 국내에서 자본을 조달하지 못해 해외로 본사를 옮겨 직상장한 서비스 기업들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주제인 '창조적 파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4/thescoop1/20251014180011790lhnm.jpg)
■ 이창용의 위기감=이창용 총재는 지난 2월 25일 기자회견에서 "경제성장률 1.8%가 우리 실력"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지난 10년간 새 산업을 도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사회적 갈등을 감내하기 어려워서 피하다 보니까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
창조적 파괴를 지원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구세력과 결탁해 이들의 생명력을 연장시켜왔던 지난 10년을 반성하라는 얘기다. 이를 증명하는 데는 5년으로도 충분하다. 한국의 세계 1위 산업·서비스 숫자는 2020년 7개에서 2022년 6개로, 2024년에는 4개로 줄었다(니혼게이자이).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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