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없는 박물관, 10년의 길 위에서] 6. 경기도의 키워드, 공존을 품다

박지혜 기자 2025. 10. 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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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사는 법…공간 넘어 공존으로

>>> 황금산아트플랫폼
파주 광탄면 산업단지·전원마을 공존
지역 다양성 담아내는 시도 등 이어가
예술로 경계 허물고 공동체 온기 더해
이야기 지도 만들기·음악회 내실 다져

>>> 더필름(주)
시화공단 사람들 소소한 이야기 기록
촬영·편집·사운드 지역민 함께 제작
공단 이야기 있는 그대로 스크린 담아
누구나 쉽게 접근 아카이브 구축 예정

경기도는 산업단지와 농촌, 도시가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첨단 산업이 밀집한 공단부터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까지, 다양한 삶의 형태가 뒤섞여 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생활방식이 스며든 지역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의 '에코 뮤지엄'은 그 해법 중 하나다. 산업단지 인근이나 외국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사람과 공간, 문화를 잇는 프로젝트를 펼치며, 지역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공장 굴뚝과 사람들의 일상이 얽힌 이 공간들이 이제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공존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이 되고 있다.

▲황금산아트플랫폼
▲ 황금산아트플랫폼 '문화역사탐방-혜음원지' 현장. /사진제공=황금산아트플랫폼

파주시 광탄면은 혜음령을 넘어가면 만날 수 있는, 산업단지와 전원마을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오래된 농가 옆에는 작은 철제 공장이 들어섰고, 그 안에선 네팔·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에서 온 노동자들이 일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지만, 서로의 일상은 아직 낯설다. 마을엔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됐고, 원주민과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겨났다.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황금산아트플랫폼'은 예술을 매개로 지역의 새로운 공존 방식을 모색해 왔다. 경기창작센터 입주 작가 출신들이 만든 협동조합에서 출발한 황금산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가 끝나도 지역과 연결되는 예술을 해보자'는 취지로 모여 15년여 전부터 광탄면에 작업실을 두고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을 기록해 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경기문화재단의 지붕없는박물관 사업을 통해 본격적인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들은 '예술을 통해 지역 구성원들이 공존하는 방법'에 주목하는 중이다.
▲ 황금산아트플랫폼 워크숍 '들풀의 정기' 현장. /사진제공=황금산아트플랫폼.
▲ 황금산아트플랫폼 광탄 피규어 만들기 현장. /사진제공=황금산아트플랫폼

작년에 원주민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의 옛 이름과 장소를 담은 '이야기 지도'를 만든 게 대표적이었다. 주민들이 직접 자신의 집과 기억의 장소를 그리고, 그 위에 작가들이 마을의 큰길을 덧입혀 완성한 지도로, 올해는 참여 대상을 인근의 공장 근로자와 외국인 노동자들로 넓혀 지역 내 다양성을 담아내는 시도를 이어갔다.

'드로잉 워크숍'을 비롯해 '비누 만들기', '티셔츠와 에코백 만들기' 등 작업실을 중심으로 진행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요모조모 광탄 워크숍' 시리즈는 단순한 체험에서만 그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주민들이 직접 느티나무 아래서 마을을 그리거나 잡초로 비누를 만들며, 자신이 사는 땅의 자연과 이야기를 되새겼고, 이렇게 발굴한 지역의 이야기들은 또 다른 콘텐츠의 밑거름이 돼 '나의 삶이 지역의 문화'임을 체감하게 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연 '매미야 놀자 음악회'는 서로에게 쌓여 있는 마음의 담을 무너뜨리고 어우러지는 시발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 황금산아트플랫폼 '매미야 놀자 마을 음악회' 현장. /사진제공=황금산아트플랫폼

이 모든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서로를 이해하고 잇는' 것이다. 특히 광탄면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원주민들의 공존을 꾀하는 중이다. 공장 대표들에게 노동자 복지 개선을 제안하고, 예술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조금씩 허무는 실천을 이어간다.

정기현 황금산아트플랫폼 대표는 "이주 노동자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 문화적 여유를 갖기 어렵지만, 잠깐의 시간이라도 함께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며, "작은 예술이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필름㈜

시흥의 시화공단은 다양한 지역 구성원들의 땀과 노력이 한 데 모여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산업의 현장이다. 수많은 사업장과 노동자들이 얽힌 이곳엔 다양한 삶의 리듬이 공존하지만, 정작 '공단의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더필름 스튜디오는 바로 그 빈자리를 메우며 공단의 일상 속에서 공존과 기록의 예술을 실천하는 중이다. 더필름은 영상과 영화를 기반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시흥의 창작 집단으로, 올해부터 시화공단을 무대로 한 '지붕 없는 박물관' 사업을 진행 중이다.
▲ 시화공구상가사업협동조합 협약식. /사진제공=더필름(주)

워낙 방대한 공단 전체의 이야기를 한눈에 담기는 어렵지만, 이들은 '좁게, 깊게' 접근하기로 했다. 그 첫걸음은 공단 중심에 있는 '시화공구상가사업협동조합'과의 협력이었다. 협동조합과 협약을 맺은 더필름은 공단 내 자리한 '창공' 공간을 거점 삼아 근로자와 지역 주민, 청년 창작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록을 통한 공존'이다. 더필름은 기존의 일방향적인 강의 방식을 벗어나, 참여자들이 직접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시화공단 영화 제작 워크숍'을 진행했다.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 조명, 사운드까지 전문가와 지역민이 함께 배우고 만드는 과정으로, 공단 대표, 근로자, 청년, 주부 등 다양한 이들이 모여 시화의 삶을 스크린에 담았다.
▲ 더필름 단편영화 '잔업일지' 제작현장. /사진제공=더필름(주)
▲ 더필름 단편영화 '잔업일지' 제작현장. /사진제공=더필름(주)

이들의 첫 작품 제목은 '잔업일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장과 노동자, 일터의 오해와 이해를 그린 영화로, 공단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상영회는 오는 11월 7일에 열린다.

같은 날 공개되는 전시 '이음: 공단의 시간들'은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시화공단의 얼굴을 기록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직접 찍은 즉석 사진, 작가들의 시선으로 담은 풍경, 각 사업장 대표들의 초상과 증언이 한자리에 모인다.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분명 내 청춘이었다"는 참여자의 말처럼, 전시는 노동의 순간을 '기억할 가치가 있는 삶의 풍경'으로 바꾼다.
▲ 공단기록 연구회. /사진제공=더필름(주)

더필름은 또한 '공단기록 연구회'를 만들어 지역 예술가와 창작자, 문화기획자들이 함께 시화공단의 역사와 에코뮤지엄의 개념을 공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연극, 시, 다큐멘터리, 사진 등 각자의 언어로 공단의 시간을 기록하는 공동체 실험이다. "우리가 만든 기록은 완성된 자료가 아니라, 사람들의 손에서 계속 자라나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최근에는 '공단기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상 아카이빙을 이어가고, 과거 사진 복원과 옛 자료 수집도 병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경호 더필름 예술감독은 "시화공단에서 진행하는 여러 사업은 단순한 데이터의 축적이 아닌, '기록자와 참여자를 늘려가는 과정'으로 본다"며, "전문가만이 아닌, 공단의 근로자와 주민 모두가 기록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 빛을 비추며, 공단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노동의 시간이 기록으로 남고 시흥의 '지붕 없는 박물관'이 공존의 예술을 실천할 수 있게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뮤지엄은 나에게 000이다.

황금산아트플랫폼

"황금산아트플랫폼에게 에코뮤지엄은 '들풀'이다. 올해 했던 활동 중 가장 재밌던 워크숍이 '들풀의 정기'인데, 들풀은 아스팔트 길바닥 한 가운데에서도 생명력 있게 솟아나며 나름의 정기를 가지고 있다. 그 좋은 정기들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잡초가 될 수도, 한낱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치를 부여할수록 살아나는 정기는 에코뮤지엄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더필름㈜

"더필름㈜에게 에코뮤지엄은 '낙서장'이다. 세계문화유산인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내가 왔다 간 흔적들, 내가 살아갔던 흔적들이 남겨져있듯, 시화공단 에코뮤지엄은 시화공단이라는 장소에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남기는 낙서장과 같다. 거창하고 퀄리티 높은 무언가가 아닌 낙서처럼 자연스럽게 남긴 흔적들이 남는, 그런 활동 같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 이 기사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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