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이 책 못구했다면…‘7시간18분짜리’ 영화로 먼저 만나볼까
거장 터르 벨러 감독이 만든 5편에 관심
438분짜리 사탄탱고 ‘지독하게 느린 걸작’

다만 그가 각본을 쓴 영화는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통해 바로 접근이 가능하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평생의 예술적 동지’인 터르 벨러 감독과 함께 총 5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는데 그중 1985년작 ‘사탄탱고’, 1989년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는 그의 소설을 원작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영화 ‘사탄탱고’는 7시간18분(438분)에 달하는 광기 서린 영화다.
현재 유튜브에도 공개돼 있는 ‘사탄탱고’는 폐허가 된 마을 농장을 방목된 소떼를 롱테이크로 10분간 보여주며 시작되는 등 극단적으로 느린 전개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은 영화이지만, 마을엔 없는 종소리를 듣는 한 남성의 불륜 장면을 지나, 두 남자가 마을로 걸어들어오는 상영 후 40분 시점부터 몰입감이 강해진다. 이미 죽었다고 알려졌던 이리미아시가 하수인 페트리너의 안내로 마을에 재진입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희망 없이 살던 마을 주민들은 ‘선구자’ 이리미아시를 따르며 오랜만에 활기를 띠지만 이리미아시는 마을을 착취할 음모에 몰두하는 위선적 인간임이 폭로되는 작품이다.
수십 명이 등장하는 ‘사탄탱고’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소녀 에슈티케로, 그가 죽음을 맞는 3시간30분 장면은 ‘사탄탱고’에서 반드시 봐야 할 최고의 명장면이다.
마을 소녀들의 주 수입원인 매춘에 나설 수도 없을 만큼 어린, 가장 가난하고 가장 방치된 최약체 에슈티케는 고양이를 학대하다 죽게 만들고, 결국 자신도 품 안의 고양이가 삼킨 비상을 입에 털어넣는데, 이는 사랑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약자의 타의적 죽음이기에 눈물겹다. 영화는 마을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을 노트에 기록하는 일에 집착하는 한 무명의 의사가 눈을 감는 모습으로 7시간18분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의사는 사건을 관찰하기만 할 뿐 사건에 개입할 의지까지 상실한 무력한 신(神)을 은유한다.

영화 제목이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인 이유는 이 영화가 바로크 시대 음악가 안드레아스 베크마이스터(1645~1706)를 호출하기 때문이다. 베크마이스터는 당시만 해도 순정률이었던 음계를 평균율로 바꿔낸 인물이다.
17세기 초까지 유럽 음악은 순정률에 따라 조율됐다. 순정률은 자연에서 얻은 완벽한 진동 비율에 기반하기 때문에 특정한 키에서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완벽함은 오직 ‘한 키’ 안에서만 유효했다. 다른 조로 옮기는 순간, 음의 비율이 무너져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베크마이스터는 모든 음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나누는 평균율을 도입해 완벽한 화음이 아니더라도 ‘어느 키로 옮겨도 사용할 수 있는’ 조화를 택했다. 그게 현재 88개의 피아노 건반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세상의 모든 음악은 ‘불협화음(혼돈)을 억누른 뒤에 비로소 완성된, 타협되고 위조된 안정성’임을 베크마이스터의 평균율 사례를 통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생의 준거점이라고 바라봤던 도덕이나 윤리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합의된 환상에 불과함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거대한 고래는 평균율로 질서화된 세상을 깨는 거대한 음으로 기능한다.
영화 상영 30분이 지났을 무렵 한 남성이 “걸작의 기초는 잘못된 음역에 기초했다. 그건 명백한 기만이다. 신의 하모니 전부를 소유하기를 원했던 베크마이스터의 ‘위조’에 기인한 음이었다”며 읊조리는 장면이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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