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 사랑은 성취가 아니라는 '고백의 역사'

2025. 10. 1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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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신과 의사의 코멘터리]
<15> 영화 '고백의 역사'의 세리·윤석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영화 '고백의 역사'의 윤석과 세리.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자라온 윤석은 관계를 회피하고, 세리는 콤플렉스인 곱슬머리를 펴야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넷플릭스 제공

“항상 내가 변해야 누군가가 내를 좋아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

영화 ‘고백의 역사’의 주인공 박세리는 악성 곱슬머리가 콤플렉스인 고등학생이다.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학대받던 소년 윤석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지 못했던 세리. 영화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를 통해 잃었던 감정과 자신을 다시 찾아나간다. 이야기를 끝까지 보고 나면 제목 ‘고백의 역사’는 세리와 윤석이 함께한 시간의 기록이자 자기수용과 자기고백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자기 불신'에서 비롯된 변화 욕구

세리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과거 두 차례 고백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가며 같은 학교 동급생 김현에게 고백을 계획한다. 자신감 있고 유쾌하게 “내가 고백하면 되겠지”라며 웃지만 그 당당함 속에는 보이지 않는 불안이 깃들어 있다.

“이런 머리를 누가 좋아하겠노”라는 대사처럼 주체적으로 보이는 그녀에게도 ‘누가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시선이 늘 존재한다. 김현의 이상형이 긴 생머리의 이효리라는 소문을 전해 듣고 표정이 급격히 굳으며 시무룩해지고 같은 반 전교 1등 황상철에게 “너하고 김현은 급이 안 맞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을 땐 마치 그 말 한마디에 존재가 규정되는 듯 상처를 받는다. 윤석과의 대화 중 “내는 뭐가 될라고 이라는지 모르겠다. 잘 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라는 말에도 타인의 기준을 내면화한 자기비하가 숨어 있다.

영화 '고백의 역사'에서 악성 곱슬머리로 고민하는 주인공 세리가 '서울 매직 스트레이트' 포스터가 붙은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진료실에서도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저는 키가 작아서 안 돼요.” “피부가 깨끗하지 않은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이런 말에는 ‘무언가를 고쳐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이런 확신은 꼭 부모가 비교하거나 꾸짖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리의 아버지처럼 “행복하기만 해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말하는 허용적 환경에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 행복하기만 하라는 말은 마치 슬픔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숨기며 언제나 괜찮아야 하는 아이로 자라기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세리의 주변에는 그 조건을 완벽히 수행하는 모델이 있었다. 쌍둥이 동생 혜리. 생머리에 성적도 우수하고 자신이 짝사랑하던 옆집 오빠의 선택까지 받는다. 세리에게 혜리는 단순한 자매가 아니라 비교의 거울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비슷한 연령과 성별을 지닌 형제·자매 간 경쟁을 ‘동일시와 질투의 혼합감정’이라 설명한다. 사랑받는 상대를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는 현실에서 자신을 더 강하게 평가하고 비난하는 감정이 생긴다. 결국 세리는 ‘나는 변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어떻게든 곱슬머리를 펴기 위해 노력한다. 변화의 욕구는 자기 발전이 아니라 자기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회피·무기력에서 다시 관계 속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전학 온 윤석은 말수가 적고 타인에게 기대는 일을 어려워하는 조용한 학생이다. 넷플릭스 제공

윤석은 조용한 학생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자기소개하는 시간에 “한윤석입니다” 한마디로 끝을 낸다. 비 오는 날 목발을 짚고 가방을 드느라 옷이 젖어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세리와 친구들이 도와주지만 혼자 할 수 있다며 거절한다. 타인에게 기대는 일이 낯설고 어려운 사람 같다. 그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인지 친구들은 굳이 묻지 않는다. 윤석 역시 먼저 꺼내지 않는다. 서로에게 깊이 파고들지 않고 우스갯소리로만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 분위기가 윤석에게는 편안했을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 윤석의 첫 인상은 그런 유형의 인물이다.

서울에서 병원 교수로 일하는 그의 아버지는 완벽과 성취를 당연한 기준으로 삼던 인물이다. 윤석은 늘 잘해야 하는 아이였고 통제와 기대를 벗어나는 순간 비난이 돌아왔다. 전학한 뒤 단번에 전교 1등을 할 정도의 실력을 가졌지만 그는 수능시험을 포기한다. 그것은 단순한 무기력이라기보다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한 회피이자 조용한 반항처럼 보인다. 시험 거부라는 방식으로만 자기 의지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세리와 윤석의 만남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세리는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몸을 맡기며 수영한다. 세리에게 바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반면 윤석은 같은 바다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라본다. 숨이 막히고 마음이 막연히 답답한 상태에서 그는 ‘그냥 휩쓸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다. 세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갔다면 윤석은 살아 있음의 감각을 잃은 채 그 끝을 상상한다.

영화 '고백의 역사'에서 세리가 바다에 빠진 윤석을 구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세리의 셔츠가 바람에 날려 바다로 들어가고 그것을 붙잡으려다 물에 빠진 윤석을 세리가 구한다. 윤석은 이날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게 되고 세리는 우연히 윤석의 어머니가 미용실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매직스트레이트 파마를 하고 싶어 윤석의 어머니에게 바다에서 구조한 사실을 알리고 깁스를 푸는 날까지 윤석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세리는 자연스럽게 윤석의 곁에 머문다.

처음엔 그 호의가 어색했지만 윤석은 점차 세리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즐기기 시작한다. 감정적으로 위축된 사람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경험은 세상과의 접점을 다시 여는 일이 될 수 있다. 윤석은 여전히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미묘하지만 대답 속에 온기가 섞이고 웃음을 보이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감정을 억눌러 온 사람이 천천히 관계를 회복해 가는 과정이다.

진료실에서 윤석과 같은 사람들 역시 자주 만나게 된다. 감정을 표현해도 무시나 비난만 돌아오고 달라지는 게 없었던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은 감정뿐 아니라 행동할 동기도 잃게 된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고받다 보면 회피 대신 접근을 배우고 무기력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영화 후반부, 윤석은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압박을 받게 된다. “부산 가더니 무례해지고 멍청해졌다”는 비난이 이어지지만 그는 결국 다시 부산을 선택한다. 통제와 평가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이 느끼고 선택하는 세계로 돌아가는 결정이다. 윤석은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철수한 사람에서 관계 속으로 돌아온 사람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그의 고백의 역사다.


고백의 역사는 마음을 다시 쓰는 과정

영화 '고백의 역사'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시간이 지나 부산의 바닷가에서 재회한 세리와 윤석이 마지막 고백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윤석은 반복해서 같은 꿈을 꾼다. 바다에 빠지고 그 속에서 빛을 보고 세리가 자신을 구하는 장면이다. 숨을 몰아쉬며 깨어나는 그 순간 그의 무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예전엔 감정을 견디지 못해 물에 휩쓸리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빛을 본다. 감정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되살리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는 셈이다.

세리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수학여행 중, 세리는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김현에게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막상 입을 열자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항상 내가 변해야 누군가가 내를 좋아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 막 뭘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더 예뻐져야 할 것 같고. 근데 내(나) 가(걔) 앞에서는 그런 생각이 하나도 안 든다.” 세리는 지금까지 타인의 기준에 맞춰 ‘괜찮은 나’를 만들어오려 했지만 윤석 앞에서는 처음으로 그 노력을 멈춘다. 그녀가 변해야 한다고 믿었던 세상에서 윤석은 ‘그냥 있어도 괜찮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영화 '고백의 역사'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직접적으로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는 것은 세리가 아니라 윤석이다. 세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믿는 법을 배웠고 윤석은 감정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일 것이다. 세리는 윤석이 남긴 노트를 읽는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좋아, 세리야. 네가 언제인가 했던 말처럼 우리가 함께한 시간 속에 내 마음을 차곡차곡 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이건 단순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다. ‘너라서 좋다’는 마음,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받아들이는 고백이다.

그리고 영화는 고백의 의미가 결과가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보낸 경험 자체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 시간 동안 사람은 조금씩 달라진다. 세리는 더 이상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윤석은 미래를 상상하고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한다. '고백의 역사'에서 ‘역사’란 사랑의 성취가 아니라 사람이 다시 마음을 쓰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말이다. 나는 누구 앞에서 ‘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일까. 또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을까.

허규형 연세가산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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