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버지니아가 한국에 주는 교훈 [아침을 열며]

2025. 10. 14. 00: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 민주당 만년 텃밭의 변심
'뉴딜' 성공의 3대 핵심 요인
'AI 대전환' 속 불안해진 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 방위군을 배치하고 범죄 예방을 지원하기 위해 연방 법 집행 기관의 주둔을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 몇 주 후인 2025년 8월 31일, 웨스트버지니아 주 방위군 대원들이 해군 기지에서 순찰하는 동안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애팔래치아 산맥 품에 안긴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는 한때 미국 산업의 심장부였다. 지하 깊숙이 뻗은 탄광과 오하이오강을 따라 늘어선 제철소가 20세기 미국의 번영을 상징했다. 1932년 루즈벨트부터 1996년 클린턴까지, 이 주는 단 세 번을 제외하고 언제나 민주당을 선택했다. 뉴딜의 심장이라 불릴 만큼 민주당 선거연합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웨스트버지니아는 트럼프에게 68% 이상의 몰표를 던졌다. 탄광 고용은 20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고, 약물 과다복용 사망률은 미국 최고 수준(인구 10만 명당 77.2명)으로 치솟았다. 뉴딜의 최대 수혜지가 쇠락의 상징이 된 것이다.


뉴딜이 풀었던 세 가지 퍼즐

1차대전 이후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미국 농민들은 도시로 대거 이주했고, 도시에서는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내몰렸다. 이 때 루즈벨트의 뉴딜은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산업구조 전환 충격을 완화하는 중요한 완충장치였다. 피터 구르비치가 『난세의 정치』(Politics in Hard Times)에서 추적했듯, 뉴딜 같은 해법을 찾은 나라들은 민주주의를 지켰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군국주의로 빠져들었다.

뉴딜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했다. 첫째, 도시와 농촌의 초지역적 연대였는데, 이는 대도시 노동조합부터 남부 농민, 진보적 공화당원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동맹이었다. 농업보조금과 테네시강 유역개발은 도시와 농촌을 함께 번영시켰다. 둘째, 노동·자본·농민의 계급연합으로, 와그너법을 통한 단체교섭권 보장으로 노사 타협이 제도화되었고 노조 조직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셋째, 정부가 직접 돕는다는 정치적 효능감이었다. 브라이언 해멀의 연구에 따르면, 정부가 직접 고용한 공공사업진흥국(WPA)과 같이 수혜자가 혜택의 출처를 명확히 인식할 때, 정책의 혜택은 정치적 지지로 이어진다. 피츠버그의 경우, WPA가 일자리를 제공하자 민주당 지역조직이 공고해졌고, 1936년 루즈벨트는 이 지역에서 69%의 표를 얻었다.

오늘날 웨스트버지니아에서는 뉴딜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 탄광과 제철소는 거의 문을 닫았고, 매일 약물 과다복용 사고가 발생하며, 무료 급식소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진통제에 중독된 이들은 더 강한 약물로 내몰렸고, 국가를 위해 싸운 참전 용사들조차 노숙자가 되어 거리를 헤맨다. 석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웨스트버지니아의 문제는 현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때 번영의 상징이었던 전세계 산업지역들 모두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오늘날 전세계는 인공지능(AI) 중심의 산업구조전환에 직면해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AI 대전환을 국가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사회적 충격이 지역, 계층, 집단에 어떻게 다르게 분배될지, 그에 대해 어떤 완충장치를 준비해야 하는지 누구도 명확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 AI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환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뿐, 개인도 국가도 각자도생으로 내몰리고 있다.

1930년대 뉴딜은 구조적 고통을 개인 실패로 보지 않고 “정치가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역 간 연대 △계급 간 타협, 그리고 △국가가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명확한 신호. 이 세 가지 퍼즐을 푼 사회는 민주주의를 지켰고, 그렇지 못한 사회는 극단으로 치달았고 결국 그 극단의 정치는 제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줄곧 민주당을 선택하다 연달아 세 번이나 트럼프를 뽑은 웨스트버지니아는 자신들을 외면한 워싱턴 주류 정치에 시원한 한 방을 날렸다. 그러나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급식소 앞 줄은 더 길어지고, 약물 중독자는 더 늘었으며, 식료품 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정치가 구조적 고통을 개인 실패로 돌리는 한, 절망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웨스트버지니아는 경고가 아니라 예고편이다. 우리 사회의 웨스트버지니아—쇠락하는 산업도시, 해체되는 지역공동체, 고용 악화에 내몰린 청장년층—의 삶에 대해 “정치가 응답”하지 못하면,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정치에 응답할 것이다. 뉴딜의 퍼즐이 AI 대전환의 가장 난제인 이유이다.

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