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19) ‘K-듀란트’ 연세대 이유진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죠”


#001_Scan. 019번 참가자: 이유진
그의 농구 인생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우연히 찾아온 제안으로 막을 올렸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코치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손을 내밀었고, 처음엔 ‘재미로 해보라’는 가벼운 권유에 불과했다. 하지만 손끝에 닿은 공의 감촉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그렇게 방학의 한 장난처럼 시작된 농구는 어느새 그의 하루를 채우는 중심이 됐고, 6학년이 되자 전국대회 2~3위를 오르내릴 만큼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중학교 진학과 함께 현실의 벽이 그를 막았다. 운동선수였던 부모는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며 냉정한 조언을 건넸다. 잠시 농구공을 놓았지만, 마음 한구석의 미련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어머니를 설득해 주성중학교로 전학하며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긴 공백 끝에 다시 잡은 공은 무거웠지만 그 무게만큼 간절했다.
“엄마한테 계속 ‘공부 못하겠다, 농구하고 싶다’고 계속 그랬죠(웃음). 그러던 중 가족이 외식하던 날, 우연히 주성중 코치님을 만난 거예요. 아는 얼굴이라 가서 인사드렸는데 그때 ‘다시 농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코치님이 좋다고 하셔서 그대로 어머니께 전했어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허락하신 거죠. 그런데 쉬었다가 하니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다시 시작한 걸 살짝 후회하기도 했어요. 친구들은 성장했는데 저는 뒤처져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한 번 다시 시작한 이상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주전 경험하지 못한 채 맞은 중학교 3학년, 코로나19가 대회를 멈춰 세우며 그는 더 깊은 무력감 속에 놓였다. 성장의 무대가 사라진 그해 9월, 그는 주성중에서 용산중으로 전학했다. 원래 신흥고 진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용산고와의 연습경기에서 보여준 눈에 띄는 활약이 그의 길을 바꿔놓았다.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고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더 강한 팀에서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용산고행을 택했다. 부모를 설득해 얻은 기회였기에 물러설 이유도, 물러설 마음도 없었다.
“용산고는 워낙 좋은 학교잖아요.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요. 부모님을 설득해서 가기로 한 만큼 ‘힘들다, 못 하겠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더라고요. 미안한 마음도 있어서요. 그래서 정말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하지만 새로운 무대는 냉혹했다. 전학 징계로 코트에 설 수 없었고, 수준 높은 팀 안에서의 격차는 생각보다 더 컸다. 벤치에 앉아 동료들의 땀방울을 바라보는 시간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좌절 대신 남산을 택했다. 모두가 휴식을 취할 때, 남산을 뛰어 올라가 체력과 하체를 길렀고, 계단을 오르며 점프력을 단련했다. 높이뛰기 선수였던 어머니가 알려준 트레이닝 루틴을 따랐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땀은 증거가 됐다. 동료의 부상으로 얻게 된 출전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벤치의 그림자였던 그는 어느새 코트의 중심이 됐다. 수비 하나만으로 버티던 선수에서, 팀의 흐름을 읽고 조율하는 리더로 변모했다. 성장 이상이었다. 남산에서 다져진 체력,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 그리고 매일의 훈련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변화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수비밖에 몰랐어요. 그런데 (이)관우가 혼자 리딩을 보면 힘드니까 같이 경기 조율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잘되더라고요. 그때 자신감이 생겼어요. 코치님이 세부적으로 잘 가르쳐 주시고, 개인 운동 때도 직접 나오셔서 지도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운동에 더 집중했고, 경험이 쌓이면서 고3 때 확 터졌어요.”
그렇게 그는 용산고의 5관왕 주역으로 우뚝 섰다. 한 해 동안 'MVP 세 번'을 품으며 이름 석 자를 농구계에 각인시켰다. 특히 2023 추계연맹전에서는 평균 23.3점 8.5리바운드 5.8어시스트로 남고부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이어 열린 2023 FIBA U19 농구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됐고, 매 경기 꾸준한 활약으로 대표팀의 중심을 지켰다. 첫 승리한 경기에서는 17점 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동안의 땀과 시간이 만들어낸 증거였다. 그는 자신의 가파른 성장 곡선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002_Life in University. (대학: 지명을 위한 1차 관문)
연세대에 입학한 첫해, 이유진은 낯선 환경 속에서 농구보다 과제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 마주한 리포트와 토론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게다가 잔부상이 이어져 경기를 온전히 소화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코트 위에 있었다. 꾸준한 보강 운동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다듬었고,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자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그 과정에서 농구에 대한 시선도 깊어지며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예전엔 발가락이나 햄스트링 쪽에 힘이 풀리거나 아파서 ‘이젠 못 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그때 경험을 겪고 나서 보강 운동과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다 보니 몸이 훨씬 좋아졌어요. 부상도 더 이상 없고요. 그 과정에서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제대로 배웠어요.”
2학년이 된 그는 2025 FIBA 3x3 아시아컵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좁은 코트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간을 읽는 법을 익혔고, 빠른 템포 속에서도 흐름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볼 없는 움직임, 즉각적인 판단, 코트를 넓게 활용하는 감각까지 모든 경험이 그의 농구를 한층 단단하게 만들었다.
“잔부상이 많아서 경기도 제대로 못 뛰고, 운동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어요. 정신없이 지나간 시기였죠. 2학년이 되면서는 3대3 대표팀에 다녀왔어요. 또 다른 종목이라 새로운 걸 많이 배웠죠. 볼 없는 움직임이나 코트 활용법 같은 부분이 특히 도움이 됐어요. 코트를 넓게 보는 시야가 생겼고, 그때 정말 재밌었어요.


윤호진 감독은 1번 포지션까지 역할을 맡게 했다. 더 넓은 시야와 판단을 키우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감독의 신뢰와 조언이 그의 방향을 잡아줬다. 그 과정에서 이유진은 포지션의 경계를 허무는 법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 1번을 조금씩 보긴 했지만, 완전히 1번으로 들어간 건 대학에 와서가 처음이었어요. 처음 맡았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눈앞이 캄캄했어요. 빨리 공을 줘야 할 것 같고, 가드는 무조건 패스를 해야 하는 자리라는 압박감도 느꼈어요. 그때 감독님이 ‘뻣뻣하다, 긴장하지 말고 네가 하던 대로 하면 된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조금씩 편해졌고,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계속 하다 보니 긴장도 풀리고 시야도 점점 넓어졌어요. 윤호진 감독님께 정말 감사해요. 지금은 농구가 너무 재밌어요. 이제는 코트가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감이 오거든요. 다른 포지션의 움직임까지 다 이해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그게 제게 큰 강점이 된 것 같아요.”
이유진은 200cm의 장신이지만, 플레이스타일은 스윙맨에 가깝다. 드리블을 기반으로 한 중거리 슛과 3점슛 생산 능력이 모두 안정적이며 뛰어난 스피드로 속공 전개에도 능하다.
1학년 시절 15경기 평균 8.5점 2.7어시스트 4.2리바운드 1.3블록을 기록했고, 2학년이 된 후에는 13경기 평균 10.54점 2.9어시스트 5.7리바운드 1.38스틸로 전 영역에서 성장세를 보였다. 모든 지표에서 팀 상위권을 차지하며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흐름을 바꾸는 다재다능함을 증명했다.

#003_Application. (드래프트 참여를 원하십니까?)
2학년인 이유진은 얼리 엔트리라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더 빨리 프로에 가서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강한 선수들과 부딪혀보고 싶다는 마음도 커요.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도, 연세대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더 잘하는 선수들에게 배우고 싶어서 그 길을 선택한 것 같아요.”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내는 선수입니다.”

#004_My Future (‘프로’농구 선수 이유진의 삶은?)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남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팬과 팀, 모두가 저를 꼭 필요한 존재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팀에서 제가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로, 중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는 게 제 목표예요. 목표는 늘 같습니다.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 정규리그 1위와 통합우승, 국가대표 선발, 그 무대에 설 수 있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이유진의 인생은 ‘멈춤이 곧 준비였던 복귀의 연속’이다. 멈춰도 돌아왔고 벤치에 앉아도 다시 뛰었다. 격차를 느끼면 그만큼을 채워왔다. 그는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묵직하게 쌓아온 선수다. 버티고 배우고 바꾸는 힘, 그게 그를 프로로 이끌 진짜 자산이다.
#사진_이유진, FIBA 제공,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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