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아고라] 행정이 교육을 삼키다- 뒤바뀐 교사의 시간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前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2025. 10. 1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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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육 업무 강제되는 교사들
교원 직무 재정립·법제화 시급
업무량 축소·디지털 전환 필요
교육에 몰입할 시간 돌려줘야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前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최근 충남의 한 중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고인이 힘들어했던 일은 다름 아닌 과도한 행정업무였다. 노후화된 시청각 장비 점검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개 학급을 뛰어다녀야 했고, 교권 침해 학급의 임시 담임까지 맡는 등 교육 전문가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행정 잡무에 짓눌렸다. 교사는 교육의 전문가이지 행정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현실은 이 당연한 명제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중학교 교사에게 “하루 활동 중 교육활동과 행정업무의 비율이 어떻게 되나”라고 물었을 때, 8대2 정도를 예상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행정업무 8, 교육활동 2. 교육 활동을 위해 존재해야 할 교사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학교 규모가 작을수록 이러한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학급 수가 적은 학교는 적은 수의 교사가 대규모 학교와 동일한 수준의 행정 업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 10학급 규모의 학교는 19명의 교사가 연간 8천~1만건에 달하는 공문에 총력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평균 3개월에 2천여 건, 교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할 공문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공문을 줄이라는 공문이 내려올 정도의 비효율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공문들이 대부분 시한을 급박하게 명시한다는 점이다. ‘내일까지 제출하시오’라는 지시 앞에 교사는 수업 준비나 학생 지도를 뒤로하고 공문 처리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비효율의 결정판은 학교에서 수행해야만 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의무교육 시간이다. 생활 안전교육, 폭력 예방교육, 약물 및 사이버 중독 예방교육 등 교육과정 내에서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해야 하는 교육시간의 총량은 연간 192시간에 달한다. 과연 이 모든 교육이 내실 있게 진행되고 있을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그 결과를 보고한다. 공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들이 거짓 보고를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고 있다. 수많은 공문과 의무교육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비교육적인 업무의 늪에 빠뜨리고 학교의 행정을 형식과 거짓으로 채울 수 밖에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우리 교실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교사가 본연의 교육 전문가로 돌아가게 하려면 행정업무와의 전쟁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해법은 명확하다.

첫째, 교원 직무의 재정립 및 법제화가 시급하다. 해외 여러 나라처럼 교사의 직무 범위를 명확히 법률로 규정하고 그 외의 비교육적인 업무는 부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사는 수업 및 학생 지도에 전념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둘째, 업무 총량 축소 및 이관이 필요하다. 1만 건에 육박하는 공문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행정일몰제를 도입하여 시효가 지난 업무, 형식적인 업무를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또한 복잡한 계약 업무, 각종 위원회 운영 등 전문 행정 지식이 필요한 업무는 지역교육청이나 학교 행정실로 전면 이관해야 한다. 교무행정팀 지원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행정직 정원을 확대하여 이들의 업무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 디지털 전환을 통한 업무 자동화를 서둘러야 한다.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을 활용하여 학교생활기록부 검토, 보고서 작성 보조, 각종 신청서 수합 등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를 자동화하여 교사에게 교육에 몰입할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교사의 행복은 아이들의 학습권과 직결된다. 교사가 책상 앞에서 공문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교육과정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학교 시스템을 교육과 학습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야말로 무너진 공교육을 살리는 첫걸음이다. 더 이상 행정 업무가 교육을 압도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前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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