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또 꽁무니 빼나… "시진핑, 실수였지?" APEC 회담 유화 메시지
파국 땐 투자자·물가 동요… 손해 막심
美도 ‘수출 무기화’ 카드… 타결 가능성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에 100% 관세로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금세 태도를 바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 회담 성사 가능성이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잃을 것 많은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 글을 통해 “존경받는 시 주석이 잠시 안 좋은 순간을 겪었을 뿐”이라며 “그는 자국이 불황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나도 그렇다”라고 밝혔다. 이날 이스라엘행(行) 전용기 내에서는 ‘11월 1일부터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이 여전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지금은 그렇다”면서도 “내게 11월 1일은 먼 미래”라고 대답했다. 시 주석이 실수를 바로잡기만 하면 철회 협상을 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유화 발언으로 해석된다.
‘실수’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다. 이틀 전만 해도 시 주석을 만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보였으나 한발 물러선 것이다. 물론 실수를 놔둘 경우 중국 경제에 타격을 주는 상응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경고도 깔려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이날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공격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보장하건대 미국 대통령은 중국보다 훨씬 더 많은 카드를 갖고 있다”며 “나는 중국이 이성적인 길을 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학습 효과로 이미 알고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월 대(對)중국 관세율을 145%까지 끌어올렸다가 중국이 125% 관세와 희토류 7종 수출 통제 카드로 맞불을 놓자 먼저 중국에 협상을 요청한 이가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초강수를 뒀다 물리기를 반복하는 그의 행태를 두고 ‘타코(TACO·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라는 조어까지 만들어진 터다.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온다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점이다. 추수감사절(11월 27일)과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물가가 뛰면 지지율이 빠질 수 있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사업 매각 협상이 결렬돼 퇴출돼도 낭패다. 중국 싱크탱크 중국금융40인논단(CF40)은 “트럼프 행정부는 청년 유권자 대상 호소를 틱톡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중국 분석가 출신인 컨설팅 회사 중국전략그룹 대표 크리스토퍼 존슨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시진핑 입장에서는 잃을 게 적은 전략적 도박”이라고 말했다.
수입 중독과 중국 의존

미국이 열세와 반격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스마트폰, 전기차, 전투기 같은 첨단 제품들의 핵심 소재인 희토류가 중국에 ‘전가의 보도’가 된 것은 자석 제조의 90% 이상이 중국에 장악될 때까지 미국 등이 장기간 방치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산 희토류가 미량이라도 포함됐다면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중국 정부로부터 수출 허가를 받도록 한 중국의 신규 규제는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제품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우회로까지 꽁꽁 틀어막은 미국의 수출 통제 정책을 모델로 삼았다. 상대국 선박 대상 입항료 인상 조치도 미국이 먼저 공언했다.
하지만 극한 대립을 원치 않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올 초 중국 석유화학 산업에 필수적인 에탄의 수출을 동결했을 때, 미국에도 수출을 무기화할 수 있는 카드가 있다는 것을 중국 정부가 깨달았다”고 전했다. 마크 부시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폴리티코에 “중국이 바라는 것은 장기적인 공급망 안정”이라고 말했다. 12일 중국 상무부 대변인이 희토류 수출 통제가 적법한 조치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싸움을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한 것 역시 경고이자 대화의 문을 열어 놓은 포석으로 보인다.
이르면 13~18일 미국 워싱턴 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 기간을 계기로 양국 간 협상이 개시될 가능성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퓨처럼그룹 애널리스트 레이 왕은 블룸버그통신에 “경제적, 안보적, 공급망적 측면에서 현 대치 상황을 무기한 지속하는 것은 양측 모두에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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