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도 깊이도 빠진 여수 섬 음식 백서…"대학생 과제 수준" 부실 논란

김진영 2025. 10. 1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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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음식 문화 미래 가치"
편찬 목적 무색…속 빈 강정
섬 음식 가나다순 단순 나열
수박 겉핥기 수준 역사 분석
조리법·효능도 돌려막기식
여수시가 제작한 섬 음식백서 중 갑오징어 숙회 항목. 여수시 제공

전남 여수시가 내년 여수세계섬박람회 성공 개최를 위해 7,190만 원을 들여 만든 '여수시 섬 음식 백서'가 부실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다. 여수시는 "연안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섬 음식 문화를 미래 가치로 삼아 실현하겠다"고 호기롭게 백서 편찬의 목적을 밝혔지만 정작 그 결과물을 두고선 "대학생 과제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음식 화보냐"는 혹평이 나온다.

1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여수시는 지난해 8월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 용역을 맡겨 297쪽 분량의 여수시 섬 음식 백서 150부를 발간했다. 여수시는 이 백서를 관공서에 배포했고,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 공식 누리집에도 게시했다. 백서는 여수 섬 음식의 역사성, 여수 섬 음식 100가지와 조리법, 섬 음식 발전 전략 등을 담고 있다.

여수시는 백서에서 "백서 편찬은 섬사람들의 식(食) 문화 인식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미식가들에겐 지역의 맛을 홍보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여수 섬 음식 고유의 맛과 조리법을 자료화해 후손들에게 전해 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거창한 포부와 달리 여수시가 내놓은 백서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당장 백서는 각 섬의 고유 음식과 조리법의 특성에 대한 비교·분석도 없이 단순히 음식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여수 지역 한 요리 전문가는 "같은 미역국이라도 화정면, 돌산, 남면, 삼산면 등 지역별로 끓이는 방식이 다르다"며 "이 같은 차이점을 비교 분석해 특성을 도출하는 깊이 있는 접근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실제 백서에는 밤생이미역국(100쪽)과 장갱이미역국(104쪽)이 각각 실려 있지만 두 음식 간의 조리법 차이나 지역적 특성을 비교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여수시는 섬 음식을 가다나순, 주재료별, 종류별 등 단순 목록화했다.

음식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도 수박 겉핥기 수준이다. 여수시는 금풍생이구이(170쪽)에 대해 "남편에게는 주지 않고 샛서방에게 구워준다"는 민간 설화를 그대로 옮겨 적는 수준에 그쳤을 뿐, 왜 그런 이야기가 섬 지역 사회에서 생겨났는지에 대한 사회·문화적 맥락 분석은 부재했다. 특히 각 음식 소개 글 말미에 '참고 자료'를 각주 형태로 덧붙였지만 이 역시 어떤 문헌의 어떤 내용이 인용됐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연구 보고서로서 기본 요건 조차 충족하지 못한 셈이다.

백서는 전체 분량의 대부분을 섬 음식 조리법 소개로 채웠지만 이마저도 부실했다. 개조개찜(196쪽)은 조개 요리의 기본 과정인 해감(모래 빼기) 과정도 없이 "찜기에서 입이 벌어지도록 한 뒤 알맹이를 꺼내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는 게 조리법의 전부다. 담치찜(200쪽), 문어먹찜(204쪽), 쭈꾸미숙회(222쪽)역시 마찬가지다. 영양 및 효능은 더 가관이다. '오가쟁이된장국'의 효능은 "일반적으로 홍합과 비슷하다"는 한 문장으로 끝냈고, '고구마빼깽이죽', '톳나물', '문어먹창국' 등 여러 음식의 효능은 각각 "고구마밥 참고", "톳밥 참고", "피문어죽 참고" 등 다른 페이지를 찾아보라는 돌려막기 식으로 채워졌다.

이를 두고 여수시와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부실 백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여수시 관계자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용역을 맡아 추진했고, 수차례 회의 통해 만들어진 성과물"이라며 "향후 별도로 주요 음식 10가지를 선정해 유튜브 등을 통해 홍보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관계자는 "역사성 등을 담은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지만 여수시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내용이 엎어졌다"며 "관광객들을 대상을 음식을 홍보해야 한다는 여수시 요구에 따라 애초 기획했던 내용 상당수가 제외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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