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고… 근로·자녀장려금의 모순 [추적+]

강서구 기자 2025. 10. 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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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저소득층 위한 근로·자녀장려금 제도
소득·재산 기준 맞춰야 받을 수 있어
재산 2억4000만원 이상은 못 받아
소득 적어도 재산 기준 넘으면 제외
부동산 치솟는데 재산 기준 그대로

# 근로·자녀장려금은 소득이 적은 저소득층 가구에 큰 힘이 됩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근로장려금은 최대 330만원, 자녀장려금은 아이 한명당 최대 1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올해(2024년 귀속) 490만 가구가 근로·자녀장려금(5조4197억원)을 수령했으니, 정책적 효과도 컸을 겁니다.

# 하지만 따져볼 점도 숱합니다. 무엇보다 장려금 지급 요건 중 하나인 재산 기준(2억4000만원 미만)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그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 가격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는데, 재산 기준은 그대로라는 게 논란의 골자입니다.

#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는 이 논란을 알고 있을까요? 더스쿠프가 근로·자녀장려금을 둘러싼 문제점을 살펴봤습니다.

근로·자녀장려금의 재산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사진|뉴시스] 

"이젠 1만원으로도 먹을 게 없구나." 외식물가가 펄펄 끓고 있습니다.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7%(전년 동월 대비)로 지난해 5월(1.4%) 이후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외식물가는 되레 3.1% 올랐습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웃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식물가는 더 뜨거워질지 모릅니다.

이럴 때 가장 힘겨운 건 당연히 저소득층입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나가야 할 돈은 늘어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1분위)가 식비로 쓴 금액은 월평균 43만4000원이었습니다. 식료품·비주류 음료에 27만4000원, 외식 등 식사비에 16만원을 지출했습니다.

5년 전인 2019년 소득 1분위의 식비가 31만3000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38.6%나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소득 2분위(25.3%), 3분위(22.1%), 4분위(24.7%), 5분위(27.1%)의 증가율보다 10%포인트 높은 수치입니다.

이런 저소득층을 돕기 위해 정부가 운영 중인 소득지원제도는 적지 않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건 근로·자녀장려금입니다. 우선 근로장려금부터 살펴볼까요? 근로장려금은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나 사업자(전문직 제외) 가구에 지급하는 돈입니다. 금액은 소득에 따라 산정하죠. 근로를 장려하고, 실질소득을 지원하겠다는 게 제도의 목적입니다.

지원금액은 총소득을 기준으로 나뉩니다. 총소득 2200만원 미만인 1인 가구(단독가구)는 165만원(이하 최대 지급액), 3200만원 미만 외벌이 가구(홀벌이 가구)는 285만원, 4400만원 미만인 맞벌이 가구는 330만원을 근로장려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소득의 7.5~8.9% 수준이니 저소득층 가구엔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참고: 근로장려금은 매년 5월 진행하는 정기 신청 기간에 신청하면 100%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기 신청(매년 3월과 9월)할 경우엔 근로장려금 산정액의 35%를 먼저 받고, 그 이후에 나머지 금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엔 자녀장려금을 볼까요? 자녀장려금은 자녀(18세 미만) 1인당 최대 100만원(최소 5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소득 요건은 근로장려금보다 더 낮습니다. 총소득이 7000만원(외벌이·맞벌이) 미만이면 신청할 수 있죠. 근로장려금과 중복 수령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같은 근로·자녀장려금이 대표적인 소득지원제도로 자리 잡으면서 소득 기준은 조금씩 상향되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 2500만원(맞벌이 가구)이었던 근로장려금의 요건은 올해 4400만원 미만(76% 상향)으로 조정됐습니다.

4000만원 미만이던 자녀장려금의 기준도 올해 7000만원 미만으로 75% 상향됐죠. 이 때문인지 2015년 171만4000가구였던 근로·자녀장려금 지급 가구는 올해(2024년 귀속) 490만 가구로 증가했고, 지급액도 1조7144억원에서 5조4197억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사진|뉴시스] 

■ 소득 적어도 재산 있으면… = 다만, 아쉬운 점은 여전합니다. 근로·자녀장려금을 받기 위해선 한가지 기준을 더 충족해야 합니다. 바로 재산 요건입니다. 근로·자녀장려금을 신청할 수 있는 재산 기준은 2억4000만원 미만입니다. 소득 기준을 충족하고 보유한 재산이 1700만원 미만이면 장려금의 100%, 1억7000만원에서 2억4000만원까진 장려금의 50%만 받습니다. 소득 기준과 재산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재산을 평가할 때는 부동산(전월세 보증금 포함), 예·적금, 주식, 승용차 등을 합산해서 평가합니다. 부채는 제외하지 않습니다. 부동산 등을 합산한 재산이 3억4000만원이고 부채가 1억5000만원이라고 해도 보유 재산은 1억9000만원이 아닌 합산한 재산(3억4000만원)으로 평가됩니다.

[※참고: 전세금이나 월세 보증금은 기준시가로 계산합니다. 일례로 기준시가가 3억5000만원인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간주 전세금은 1억9250만원(3억5000만원×55%)이 됩니다. '임대차 계약서를 모두 확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실제 전세보증금이 1억9250만원보다 적으면 더 낮은 금액을 재산으로 간주합니다.]

이처럼 소득 기준을 제외하면 사실상 부동산 가치에 따라 근로·자녀장려금의 수령 여부가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70%가량이 부동산이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자산 5억4022만원 중 75.2%인 4억644만원이 부동산 자산(전·월세 보증금 포함)이었습니다.

■집 한채 있는 저소득층 = 문제는 '부동산' 때문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재산은 있지만 소득이 적은 저소득층이 장려금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상현(가명·33)씨의 월급은 298만원입니다. 지난 6월 통계청이 '2023 임금근로자일자리 소득 결과'에서 발표한 중소기업 평균 소득과 같습니다. 상현씨는 출산 후 쉬고 있는 아내와 지난해 태어난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재산은 중고차로 구입한 11년 된 자동차(가액 560만원)와 연립주택(2억4000만원· 2025년 공시가격 기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연립주택은 지금 벌이론 서울에서 아파트를 장만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 2022년 결혼할 때 8000만원을 빌려 장만했습니다.

상현씨는 근로·자녀장려금을 신청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소득 기준은 통과하지만 보유 주택의 공시가격이 재산 기준인 2억4000만원을 넘어섰기 때문이죠. 그래도 장려금을 받고 싶다면 보유하고 있는 연립주택을 팔고, 아파트 전세로 옮겨가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9월 서울시 아파트 중위전세 가격은 5억6833만원이었습니다. 연립주택의 중위 전세 가격은 2억원에 달합니다. 근로·자녀장려금을 포기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최지훈(가명·36)씨의 월급은 593만원입니다. 이 역시 통계청이 '2023 임금근로자일자리 소득 결과'에서 발표한 대기업 평균 소득과 같습니다. 지훈씨는 아내와 세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는데, 돈은 혼자 법니다(외벌이 가구).

자동차는 없습니다. 대신 장기렌트(월 50만원)로 마련한 SUV를 타고 다닙니다. 집은 없습니다. 공시가격이 4억원인 아파트에 월세로 거주 중입니다. 보증금은 2억원, 월세는 100만원입니다. 다른 재산으로는 은행 예금 1500만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훈씨는 근로·자녀 장려금을 신청할 수 있을까요? 근로장려금은 소득 때문에 받지 못하지만, 자녀장려금은 가능합니다. 월세 보증금 2억2000만원(4억원×55%)에 예금 1500만원이 재산으로 간주되고, 장기렌트로 빌린 자동차는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보증금 2억원에 체결한 임대차 계약서를 내면 부동산 재산은 2억원으로 더 떨어집니다. 이렇게 하면 지훈씨의 재산은 2억1500만원이 되죠. 자동차 렌트비(50만원)와 월세를 제외하더라도 상현(298만원)씨보다 소득이 더 많은 지훈씨가 장려금 혜택을 누리는 셈입니다.

류호진 노무법인 정율 노무사는 "정부 입장에서는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들이 지원 혜택에서 제외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확인하기 어려운 재산보단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 신고 등으로 파악하기 쉬운 소득을 기준으로 지급 대상을 결정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동산 펄펄 끓는데… = 한계는 또 있습니다. 근로·자녀장려금의 재산 기준이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3년 9월 11억8519만원이었던 서울시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24년 9월 12억4378만원으로 상승했고, 올해 9월엔 14억3621만원으로 더 치솟았습니다. 2년 사이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20% 넘게 올랐다는 겁니다.

그 결과, 공시가격도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4월에 발표한 '2025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결정·공시'에 따르면 다세대·아파트·연립주택 등의 전국 평균 공시가격은 지난해 대비 3.65% 올랐습니다. 특히 서울은 7.86%나 상승했습니다. 이는 근로·자녀장려금의 재산 기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재산가치가 늘면 근로·자녀장려금 지급 대상에서 빠지는 가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507만 가구에 5조5356억원을 지급했던 근로·자녀장려금이 올해 490만 가구, 5조4197억원으로 줄어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주택가격 상승으로 공시가격이 오른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근로·자녀장려금의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면 이젠 사각지대를 줄여야 할 때라고 조언합니다. 조상미 이화여자대학교(복지학) 교수는 "단순히 재산이나 소득 기준으로 지급 대상을 구분하면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말을 이었습니다. "복지 정책은 정말 필요한 곳에 제대로 지원하는 게 맞다. 그래야 정책 효과도 높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냐는 논란이 발생한다. 필요한 곳에 장려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좀 더 세밀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올해 근로·자녀 장려금은 490만 가구에 지급됐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2218만 가구의 22.1%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우리나라 가구 5가구 중 1가구는 장려·자녀장려금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 살펴야 할 것은 전체 가구의 22%가 아닙니다. 불합리한 이유로 혜택을 누리지 못 하는 저소득층에게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정책 자금을 무조건 확대하는 건 문제가 있지만 사각지대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는 과연 시선을 어디에 둘까요?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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