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동원된 조선인들의 마을 우토로서 ‘아트 페스티벌’…“이주, 정착 희망 얘기”

“우토로마을은 디아스포라(고향 상실), 차별, 저항의 역사를 모두 가진 곳으로 한·일 뿐 아니라 지금 세계의 모순이 응축된 장소입니다.”
지난 10일 개막한 ‘우토로 아트 페스티벌 2025’(페스티벌)을 주도한 유재현 예술감독은 일본 교토 우토로마을의 현재적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2일 한겨레와 만나 “민중들의 강인한 의지로 역사적 아픔을 극복한 우토로는 미래의 공존을 모색한는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며 “이곳을 과거 일본 정부에 의한 차별과 배제의 상징으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았고,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이주, 그리고 정착’이란 삶의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며 설명했다.
이날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후소칸 건물 외벽에는 우토로마을 주민들의 삶을 기록한 대형 걸개그림 ‘피어라, 민들레’가 걸려 있었다. 이번 페스티벌 대표 전시물의 하나인 이 그림은 한국 작가집단 생명평화미술행동(박성우·박태규·전정호·전혜옥·홍성담·홍성민 작가)이 제작한 것으로 우토로마을 조선인들처럼 일제강점기 고통당했던 이들의 삶을 세 장면으로 나눠 담담하게 드러냈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총칼의 위협 아래 가혹한 전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우토로 사람들이 서로 밥을 나누고 의지하며 처절한 시대를 견뎌낸 모습도 표현됐다. 그림 한켠에 별을 헤아리는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곳곳에 민들레가 배치돼 삶을 향한 민중들의 강인한 태도도 드러냈다. 같은 걸개그림이 우토로마을의 ‘우토로평화기념관' 외벽에도 걸렸다.
우토로마을은 일본 교토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15㎞ 떨어진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41년 전시 군사비행장 건설을 위해 동원된 조선인들이 머물던 임시 건물인 ‘함바’가 뿌리가 됐다. 태평양 전쟁 패전 뒤 여러 사정으로 일본에 남게된 이들이 “마늘 냄새와 돼지우리 냄새가 난다”는 등 지독한 차별과 가난 속에서도 삶의 터전을 지켜온 곳이다. 1987년 토지 소유주인 기업이 퇴거 소송을 벌이자, 수십년 법정 투쟁 끝에 한국 정부 지원과 시민사회 모금 등으로 토지 일부를 매입한 뒤 현재는 임대아파트 정착촌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 80세대 380여명에 이르던 주민들은 정착민 1∼2세대들이 사망하거나, 후대들의 이주로 60세대 100여명까지 줄었지만, 마을 한켠에 세워진 우토로평화기념관에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한해 1만명 이상 관람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올해 첫 선을 보인 페스티벌(UAF2025)은 우토로마을이 아픈 역사를 딛고 일본 사회와 공생하는 과정을 통해 ‘이주, 정착,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 정책으로 아픔을 겪은 우토로마을의 경험을 지역에 국한시키지 않고, 소수 약자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확대하는 전세계적 조류에 메시지를 던지겠다는 뜻이다. 교토 안에서 우토로마을, 도시샤대학, 괴테 인스티투트 빌라 등 세 곳을 중심으로 세계 12개국 14개팀의 전시를 비롯해 공연과 연주 등이 한달간 이어진다. 김수환 우토로평화기념관 부관장은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우토로마을은 고향이자, ‘내가 나로서 살도록’ 하는 자존적 공간'”이라며 “우토로 역사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본인들이 찾아와 연대의 마음을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개막일엔 오사카 극단 ‘달오름’이 우토로마을의 역사와 주민 삶을 소재로 한국 전통 연희형식을 빌린 마당극 ‘우토로’, 이튿날엔 한·일 예술인과 조선학교 학생 등 100여명이 참여한 대공연 ‘결-이어지는 마음’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레베카 제니슨 교토세이카대 명예교수(인문학) 한겨레에 “일본에서 과거 우토로에서 일어난 차별과 억압이 현재도 일본 내 조선학교나 브라질학교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게 현실”이라며 “이번 페스티벌 공연에서 조선학교 학생 등이 참여해 공연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윤동주 시인의 모교이기도 한 도시샤 대학에서는 윤동주의 시를 일본에 알린 작가 이바라키 노리코 작가와 윤 시인의 만남을 상상해보는 ‘우리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기슬기 작가·한국) 전시가 열리고 있다. 윤 시인과 이바라키 작가가 마주하고 있는 듯 두 잔의 커피가 놓인 테이블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현주 수석 큐레이터는 “침략 전쟁으로 일상과 젊음을 빼앗긴 이들의 아픔을 한·일 두 작가의 가상 만남을 통해 섬세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풀이했다. 이밖에 오키나와 전통 염색으로 만든 기모노에 반전의 상징을 새겨넣은 재독 일본인 작가 데루야 유켄의 ‘주홍새, 붉은 하늘’, 전쟁과 분단의 아픈 역사를 춤으로 빚어낸 임지애, 조혜미의 렉처 퍼포먼스(강연 형식을 결합한 공연) 등도 주목받았다.
뜻있는 재외 기획자와 작가들의 힘으로 대형 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애초 예산 문제나 예민한 주제에 대한 조율 등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페스티벌 실행위원회는 이번 행사를 정례화한다는 계획이다. 유 예술감독은 “우 토로가 아픈 역사 속에서 고립된 장소가 아니라 미래 만남의 장,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장, 평화의 장소로 인식되길 희망한다”며 “후배 예술가들을 통해 이번 페스티벌의 의미가 지속되도록 할 것”라고 말했다.
교토/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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