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잘 입는 남자들의 십계명

아레나옴므플러스 2025. 10. 13. 09:14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옷 잘 입는 남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때로는 돈도, 시간도, 수치심도 감수해야 한다. 그곳에 지름길이 없다면 최소한의 안전 규칙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옷 잘 입는 남자가 되기 위해 새겨야 할 열 가지 규칙.

"제가 본 옷 잘 입는 남자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신체 어딘가에 결핍이 있다는 것. 저만 해도 그래요. 만약에 키 크고 팔다리 길고 얼굴까지 잘생겼다? 그럼 저는 이 일을 안 했을 거예요. 애초에 흥미를 못 느꼈겠죠." 이태형은 올해로 10년째 패션 브랜드 '이얼즈어고'를 운영 중이다. 이태형을 처음 안 건 그가 브랜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인스타그램으로 지켜본 그의 스타일링은 어딘가 특별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남다른 지점이 있었다. 그가 자주 입는 옷이라고는 두 사이즈 정도 크게 고른 옥스퍼드 셔츠, 정확하게 복숭아뼈 아래에서 잘라낸 퍼티그 팬츠, 끈을 꽉 졸라맨 더비 슈즈, 달걀 모양의 뿔테 안경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묘하게 시선을 잡아두는 스타일링은 많은 팔로워를 불러 모았고 덩달아 브랜드도 몸집을 키워나갔다. 그런 이태형이라면 예리한 답변을 들려줄 것 같았다. 

첫 번째 질문은 '아침에 옷 입을 때 무엇부터 고르나요?'. 이태형은 건축가가 할 법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저는 바지부터 고릅니다. 바지는 기둥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다리가 우리 몸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것처럼요. 바지통은 얼마나 넓은지, 색깔은 어떻고, 소재가 주는 무게감은 어떤지. 그렇게 바지를 정하고 나면 다른 건 쉬워지죠." 한겨울 코트 정도를 제외하면, 바지는 우리가 입는 옷 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다. 그만큼 디자인 변주도 다양해 가장 고르기 까다로운 아이템이다. 리바이스 청바지만 해도 501, 502, 511, 517, 537, 555, 568, 578 등 십수 종류가 넘는다. 내게 맞는 바지를 찾는 방법은 별다른 게 없다. 내 체형에 맞는 바지를 찾을 때까지 피팅룸과 수선집을 오가는 수밖에. 

옷 잘 입는 남자로 가는 첫 번째 단계는 옷 못 입는 남자가 되지 않는 것. 이번에는 옷을 입을 때 꼭 피하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 가지 브랜드나 카테고리로 통일하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렌시아가를 입는다. 혹은 전부 코듀로이로만 입는다. 그럼 멋스러운 느낌을 넘어서 고집스러운 인상이 들죠. 킥 아이템은 하나면 충분해요. 중국집에서도 자장면에 탕수육을 먹을 때 맛있지, 깐풍기에 탕수육 먹으면 부담스럽잖아요. 소화가 안 되죠. 옷도 똑같아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다. 아무리 깐풍기와 탕수육이 맛있어도, 자장면과 단무지가 없으면 젓가락이 가질 않는다. 한 브랜드를 좋아하는 것과 한 브랜드만으로 옷을 입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그는 중급자 이상을 위한 팁도 전수해주었다. "생각보다 옷은 말끔하게 입었는데 신발에서 망치는 경우가 많아요. 신발만큼은 처음부터 좋은 걸 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발은 옷보다 품질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요. 사이즈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발 사이즈에 딱 맞춰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지금은 늘 10~15mm 정도 크게 신습니다. 실루엣을 생각하면 신발이 커야 돼요. 발의 피로감도 덜하고요. 아, 안경은 얼굴 폭보다 늘 좁은 걸 고르는 편입니다. 그보다 커지면 안경을 쓴 게 아니라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느낌이 들거든요."

<아레나>의 패션 디렉터 김장군은 내가 만나본 한국 남자 에디터 중에 가장 옷을 잘 입는다. 생 로랑 스키니 진에 생 로랑 부츠를 신은 남자를 실물로 본 건 김장군 디렉터가 처음이었다. 물론 그가 입은 생 로랑 때문에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는 생 로랑보다 리바이스를 더 좋아하는 내게도 '저건 어디 브랜드지?' 싶은 아이템을 매일 하나씩은 착용한다. 그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건넸다. 아침에 뭐부터 입으세요? "보통 신발부터 정하지. 그리고 위로 올라가. 발끝에서 머리끝 순서대로." 김장군 디렉터가 신발을 가장 먼저 고르는 이유는 이태형이 바지를 먼저 고르는 이유와 다르지 않았지만, 한 가지 더 고려하는 요소가 있었다. 영어로는 'TPO'. 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아이템이 신발이기 때문이다. "패션에는 공식도 정답도 없지만, 예의가 없어 보여도 된다는 뜻은 아니잖아. 내가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인터뷰 자리에 플립플롭을 신고 나간다? 그건 멋도 고집도 아니지." 이날 김장군 디렉터는 갈색 스웨이드 생 로랑 부츠를 신고 있었고, 오후에는 브랜드 담당자와 중요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패션 에디터들은 매년 봄과 가을이면 유럽으로 향한다. 패션위크가 열리기 때문이다. 패션위크 기간에는 에디터뿐만 아니라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그런 환경에 익숙한 패션 에디터가 꼽은 '옷 제일 잘 입는 남자'는 누구일지 궁금했다. 김장군 디렉터의 입에선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샤이아 라보프. 그 사람은 보통 내공이 아니야. 덥수룩한 수염, 짧은 헤어스타일이 그 낡은 옷들이랑 어우러졌을 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정확하게 알고 있거든. 그건 공부하거나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고 있는 거지." 지금 인터넷에 샤이아 라보프를 검색하면 우리가 알던 '할리우드 배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떠오른다. 무릎 튀어나온 스키니 진에 목둘레가 늘어난 티셔츠. 좋게 말하면 빈티지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냥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나온 느낌이다. 여기서 핵심은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입은 듯한 느낌'이다. 샤이아 라보프는 패션계가 인정하는 실력자다. 옷 잘 입기로 소문난 카니예 웨스트조차 그의 옷들을 탐냈다. 실제로 카니예는 샤이아 라보프의 집을 찾아가 옷장의 70%를 털어갔다고 한다. 한때 샤이아 라보프는 미 육군 PT 재킷과 미 해병대 보급용 스웨트 셔츠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샤이아 라보프를 보고 남대문시장 군복 골목을 서성이던 날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말이 쉽지 모든 사람이 샤이아 라보프처럼 될 수는 없다. 단숨에 옷 잘 입는 남자가 될 수 없다면, 옷 잘 입는 남자처럼 보이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김장군 디렉터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시계가 있지. 자기만족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지만 결국 시계는 과시용이잖아. 시간은 스마트폰이 가장 정확하니까. 만약에 청바지에 흰 티셔츠 하나만 덜렁 입은 남자가 있어. 그런데 손목에 정말 예상 못한 시계가 있는 거야. 그럼 그 청바지랑 티셔츠에 나름 깊은 뜻이 있어 보여. 시계 하나로 취향이 드러나니까. 비싼 시계를 찬다고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아니거든. 그런 점에서 일종의 치트키 같은 거지."

박정희는 맨즈웨어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 역시 에디터 출신으로, 10년 전에는 '밀라노 박'으로 불렸다. 박정희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클래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다. 박정희에게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객관적으로 자신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이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가 답했다. "옷 잘 입는 남자들은 주변에서 먼저 반응해. 반대로 옷을 못 입는 사람한테 '너 옷 못 입는다' 말하기는 어렵지. 그건 인신공격이니까. 물론 주변 반응에 상관없이 내가 만족한다면 문제될 건 없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옷 잘 입는 남자'가 되는 게 목표라면 스스로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주변에 내 옷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 박정희는 요즘 옷을 가장 잘 입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애런 리바인을 꼽았다. 애런 리바인은 현재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에서 남성복과 관련해 가장 자주 거론되는 사람이다. 그는 클럽 모나코와 애버크롬비 & 피치에서 디자인 부문 부사장으로 경력을 쌓은 패션인이다. 올해 자라에서는 애런 리바인이 큐레이팅한 옷들을 따로 모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아저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가 잘 입는 스타일로만 계속 입거든. 옷들도 하나하나 따로 보면 특별할 게 없어. 그런데도 설명할 수 없는 멋이 있잖아. 단순히 수염을 길렀거나, 잘생겨서 가능한 건 아니야. 자기 울타리를 명확하게 정해놓고, 그 안에서 자신이 잘하는 걸 더 잘하려는 사람인 거지."

요즘 부쩍 자주 보이는 '영포티 패션'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영포티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는 40대'를 뜻한다. 박정희는 돈(만) 많은 사람이 옷 잘 입기는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싸니까 사는 옷들이 있거든. 비싼 브랜드 옷들은 대부분 유명하잖아. 그러니까 일단 사보는 거지.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아까 한 말 때문에 역설처럼 들릴 수 있는데 바로 이 점이 함정이야. 누군가 알아봐줄 때의 도파민에 중독되면 그때부터는 브랜드의 노예가 되는 거지.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해."  

박정희는 어울리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은 RPG 게임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옷장을 채울 때는 인벤토리를 채운다고 생각하면 좋아. <디아블로>를 해보면 여러 직업이 있고, 직업에 따라서 모으는 아이템도 다르잖아. 일단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정하는 거지. '야만용사'가 될지, '성전사'가 될지, '강령술사'가 될지. 그걸 정하고 나면 내게 필요한 무기를 하나둘 모으는 거야. 그렇게 차곡차곡 모으다 보면 어느 순간 버려야 될 것들도 보이겠지. 그때부터는 꼭 필요한 무기들만 남기고 더 날카롭게 만드는 거고." 옷 잘 입는 남자가 되는 길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남들에게 가장 보이기 싫은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 후에도 시련은 계속된다. 시행착오를 견디며 끝없이 자가 수련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즐기기 시작했다면, 비로소 대악마를 무찌르는 패션 전사로 거듭날 수 있다.  

옷 잘 입는 남자들의 십계명

1. 너 자신을 알라. 단점은 더더욱.
2. 패션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다.
3. 신발은 크게, 안경은 작게.
4. 구두에는 처음부터 돈을 아끼지 마라.
5. 잘 고른 시계 하나가 애매한 신발 열 켤레보다 낫다.
6. 마네킹처럼 한 브랜드로 입지 마라.
7. 바지만 잘 골라도 절반은 성공이다.
8. 잘 입는 걸 더 잘 입으려고 노력해라.
9. 비싸고 유명한 옷에는 함정이 있다.
10. 입고 싶은 옷과 어울리는 옷을 구분해라.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Imgaes 미드저니

Copyright © 아레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