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인니 빈부격차 한계…"지금은 버티는 시기" 국내은행들의 현실
자카르타, 빈부격차 확대에 대규모 시위
경제 성장세지만 중산층 확대 필요
국내 은행들도 사업 확대 쉽지 않아
안일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출장을 앞두고 "인도네시아에서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다는데요?", "시위가 심한데, 정말 오시나요?" 사나흘 전부터 이런 소식을 들었지만 "별 일 아니겠지"라는 생각부터 했다. 걱정도 됐지만 애써 외면하며 계획대로 잘 될 거란 희망에 기대를 걸었다.
자카르타에 도착, 공항(수카르노 하타)은 깔끔했고 입국 절차도 복잡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이동하는 자카르타 도심 도로는 깨끗했다. 이튿날 취재 인터뷰를 위해 미팅 장소까지 이동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오전 9시였지만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체증은 없었다. 시위 소식에 겁먹기도 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국내 금융사들이 얼마나 성장하고 있을지, 기대감도 커졌다.
만 하루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를 겉보기 만으로 판단해선 안 됐다. 현지 국내 금융사 주재원들은 이번 사태가 예사롭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시위 소식을 들었던 8월 마지막 주만 해도 시위가 거세 도로 곳곳이 불타고 주요 도심은 통제됐다.

특히 현지 경찰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면서 한 명이 사망했고, 이로 인해 시위가 더 과격해졌다고 한다. 기사나 영상으로 접했던 것보다 현실은 더 심각했던 셈이다.
취재 첫 날 교통체증이 없었던 것도 시위 여파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주재원은 "통제로 인해 차량이 평소의 8분의 1수준으로 교통체증이 심할 때는 차로 한시간이 넘는데 오늘은 15분 만에 왔다"며 "정부 담화로 시위기 일단 잠잠해졌는데, 아직 곳곳이 통제돼 사람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상황을 듣고난 후로는 자카르타 도심에서 이동할 때마다 긴장이 됐다. 혹여나 시위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였던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겪었는데, 당시에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특히 빈부격차가 극심했는데, 부자였던 중국 화교들이 상당수 사망한 경험이 있다. 이에 화교 출신 부자들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보트를 타고 인근 국가로 피신하기 위해 자카르타 북쪽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고 한다.
이번 인도네시아 시위 원인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후 30여년이 흘렀지만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빈부격차가 심하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9월부터 하원 의원(580명)들이 인 당 월 5000만루피아(약 430만원)의 주택 수당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는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의 10배에 달하는 돈이다. 특히 올 상반기 기준 인도네시아에서 해고된 노동자 수가 4만2000명을 넘어서며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2030세대가 많다고는 하지만 일자리 찾기가 어렵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다.
또 다른 주재원은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 젊은 층 월급은 40만~50만원 수준인데 이정도면 일반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많은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길거리에 누워 있거나 복잡한 도로에서 교통 통제를 해주며 팁을 받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목말라하는 생산인구가 넘쳐나지만 정작 이들은 생산할 수 있는 터전이 없는 게 현실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2억8000만명에 달하는 인구 대국으로 경제 성장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평가받지만 부의 편중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들이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번 시위 사태 등 정치적 불확실성은 정책 영역에 포함된 금융업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관련기사: [K금융 in 인니]"법인장 시험에 인프라 제약도"…마더마켓 삼은 이유는(9월17일), [K금융 in 인니]'문턱 높은 현지고객'…K-컬처 타고 리테일 공략(9월19일), [K금융 in 인니]MZ세대가 신용카드 대신 쓴다는 '이 것'(10월10일)
또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해야 은행 계좌도 열고 대출도 받고 보험도 가입하는 등 금융 수요가 발생한다. 하지만 소수의 재벌 기업을 중심으로 부를 독점하면서 국내 금융사들의 영업 활동 영역이 크게 넓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지 국내은행 한 관계자는 "중산층이 두터워야 금융 수요가 늘고 자산도 성장하면서 은행을 찾는 고객들이 늘 수 있다"며 "인도네시아는 빈부격차가 워낙 심하고 급여 등 신용정보 체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카르타 출장을 마무리하며 문득 13년전 취업준비생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입사지원 과정에서 이력서와 함께 '파이를 키울 것인가 나눌 것인가'를 주제로 논술을 작성하기도 했다.
"파이를 나누면 여러 사람이 파이를 갖고 이를 기반으로 시장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로 논술을 작성했다. 2차 면접에선 작성한 논술을 기반으로 8명씩 조를 짜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조에선 '파이를 나누자'는 쪽은 나 혼자였다. 토론 때 '1대6'(1명은 사회자 역할)로 공격받았던 기억이 있다.
성장과 분배와 관련한 경제 정책 방향은 언제나 논란이 발생한다. 명확한 정답이 없기 때문일 듯 하다. 다만 인도네시아를 보며 아무리 성장 잠재력이 높아도 빈부격차가 극심하면 기대 만큼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자카르타 출장 전 여러 보고서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청사진을 봤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지 진출한 금융사들도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고 지금은 버티는 시기"라며 예상과 다른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청년 인구가 풍부해 인구 대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가 빈부격차를 줄이면서 경제 대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들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있지 않을까. 그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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