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포기 청년 “쌀먹”…월 100만원 게임 머니로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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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휴학생인 정아무개(28)씨는 요즘 본명보다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닉네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정씨는 세 학기째 취업에 실패한 뒤 구직 활동을 멈추고 게임으로 돈을 버는, 소위 '쌀먹'을 한다.
온라인 게임 '로스트아크'에서 쌀먹을 하는 이아무개(26)씨는 "길드 활동에서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거나 잡담을 하다 보면 소속감이 든다"며 "이 감각에 익숙해져 현실 감각은 안이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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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주는법사’ 들어옴? 어제 수확은 총(얼마)?”
대학교 4학년 휴학생인 정아무개(28)씨는 요즘 본명보다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닉네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정씨는 세 학기째 취업에 실패한 뒤 구직 활동을 멈추고 게임으로 돈을 버는, 소위 ‘쌀먹’을 한다. 정씨 일과는 나름 알차다. 우선 대부분 비슷한 처지인 또래 길드원(함께 게임하는 집단)들과 메신저앱 디스코드에서 ‘사냥용 명당자리’ 등 정보를 공유한다. 명당에 자리 잡고 구한 아이템을 팔거나 다른 이용자들을 ‘쩔’(레벨이 낮은 게이머 사냥을 돕는 것) 해주면 1시간에 대략 게임 머니 2억 메소, 실제 돈으로 약 4천원 정도를 번다. 이렇게 하루 10시간 이상 게임 하면 한달에 100만∼120만원을 수중에 쥔다고 한다. 정씨는 12일 한겨레에 “50곳 넘는 기업에 탈락할 때마다 위로를 핑계로 게임을 찾았다”며 “‘쌀먹’ 하다 보면 그래도 팍팍한 현실을 잊게 된다”고 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20대 청년층 ‘쉬었음’ 규모가 올해 들어 매달 40만명을 웃돌아 코로나19 이후 최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그 시간을 게임으로 메우는 청년들 사정이 전해진다. 특히 게임 하며 구한 아이템 등을 팔아 돈을 버는 ‘쌀먹’에 대한 자조와 처연함을 담은 글들이 눈길을 끈다. ‘청년 쉬었음 인구는 쌀먹 인구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다’거나 ‘쌀먹도 경제활동인구에 잡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괜찮은 일자리 부족에서 시작된 취업난이 청년 스스로 구직 포기 상태에 안주하는 방편을 찾아 나서는 데까지 이른 씁쓸한 풍속도다.
‘게임해서 쌀 사 먹는다(생계유지한다)’는 표현에서 유래한 ‘쌀먹’은 주로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 등에서 이뤄진다. 게임 내에서 화폐를 획득해 이를 시세에 따라 실제 돈으로 교환한다. 소소한 용돈 벌이를 하는 이들부터 고사양 컴퓨터를 동원하는 ‘전업 쌀먹러’까지 그 범위도 다양하다. 유튜브나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는 ‘쌀먹을 위한 컴퓨터 최소 스펙’, ‘쌀먹용 캐릭터 육성을 위한 단계’ 등 정보 공유도 활발하다.
청년 쌀먹러들은 게임에서 얻는 성취감과 소속감이 팍팍한 현실을 잊게 해준다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 게임 ‘로스트아크’에서 쌀먹을 하는 이아무개(26)씨는 “길드 활동에서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거나 잡담을 하다 보면 소속감이 든다”며 “이 감각에 익숙해져 현실 감각은 안이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메이플스토리를 즐긴다는 서아무개(31)씨도 “무한 반복 행위에 최저 시급도 나오지 않는 셈이라 아무리 좋아하는 게임이라도 권태기가 오기는 한다”면서도 “소수점 확률로 나오는 희귀 아이템을 1천시간 넘게 플레이한 끝에 얻을 때는 도파민이 확 터진다”고 했다.
게임에 쏟은 돈과 시간을 어느 정도 현금으로 회수할 수 있는 점은 쉬었음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 중 하나다. 정씨는 “부모님과 관계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경제적 지원’인데 (게임으로 버는)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며 “메소가 쌓일수록 ‘완전히 시간 낭비는 아니다’라고 스스로 합리화한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극한의 경쟁 사회 속에서 자기 효능감을 잃은 ‘쉬었음 청년’에게 게임의 원초적 쾌락과 약간의 성취감, 생계비를 주는 ‘쌀먹’ 행위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는 있다”면서도 “이는 쾌락을 활용한 일시적인 해소일 뿐,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발생하는 손실은 해결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청년세대 취업난이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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