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성재 지시 뒤 ‘계엄 체포 3600명 수용 가능’…삭제 문건 복구

김남일 기자 2025. 10. 1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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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내란 중요임무종사 구속 기로
‘포고령 몰랐다’ 주장…‘야당 척결 담화문’ 따랐다는 자충수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 14일 오전 열린다. 박 전 장관 쪽은 계엄 상황에서의 ‘통상적 업무 지시’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영장을 청구한 내란 특검팀은 12·3 비상계엄 선포 한참 전부터 ‘윤석열식 계엄’의 위법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본다. ‘야당 척결을 위한 계엄’인 걸 알면서도 적극 가담했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에게 적용된 핵심 혐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 교정본부에 구치소 수용 공간 확보를 지시하고,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는 출국금지 업무 인원을 대기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이 맥락에서 정치인 등 주요 체포 대상자 출국금지 준비 지시(배상업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통화), 체포 대상자와 포고령 위반자를 수용할 공간 점검 및 확보 지시(신용해 교정본부장과 통화) 등이 연쇄적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앞서 특검팀은 압수수색을 통해 박 전 장관 지시 이후 작성됐다가 삭제된 문건을 복구했는데, 수도권 구치소에 계엄 관련자 3600명을 추가 수용 가능하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 쪽은 지시는 했지만 국회의원 등 정치인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계엄 선포에 수반되는 법무부 일반 업무이거나 사회 혼란에 대비하려는 조처였다는 것이다. 대통령 핵심 법무참모로 계엄 선포 요건과 해제 절차 등을 잘 아는 그가 ‘일단 계엄이 선포됐으니 그에 맞춰 일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전 박 전 장관의 계엄 관련 발언을 찾아보면 이런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지난해 9월 초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회의에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충암파 비상계엄 준비 의혹’을 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거짓 선동” “괴담”이라며 맹비난하고, 여기에 한덕수·박성재 등 국무위원이 맞장구치는 상황이 연일 계속됐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경북 구미갑)이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발언 등을 거론한 뒤, 박 전 장관에게 “헌법에 따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를 하면 당연히 대통령은 따라야 한다. 그러자 민주당은 체포·구금까지 주장한다. 국회의원을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박 전 장관은 “계엄 효력을 갖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기본권이 제한되는 비상계엄 상황에서도 국회의원을 임의로 체포·구금할 수 없으며,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면 계엄 효력은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이랬던 그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으려는 군경의 국회 봉쇄 작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나는 통상적 계엄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 공소장에도 당시 국회 예결위 답변 내용이 기재돼 있다. 서일준(경남 거제)·서범수(울산 울주)·김성원(경기 동두천양주연천을)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계엄 해제를 막으려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려 한다’는 민주당 의혹 제기에 대한 입장을 거듭 물었고, 한 전 총리는 “헌법에 따라 국회가 의결하면 즉각 해제하게 돼 있다. (체포·구금을 통한) 국회 기능 정지는 국민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국민 저항 때문에 정권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답변을 근거로 특검팀은 공소장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경우 국회 기능 정지 등 위헌적 조치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검팀 판단은 박 전 장관을 기소할 때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척결’ 윤석열 담화문 근거해 ‘통상 업무’

박 전 장관 쪽은 박안수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내용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주장한다. 포고령은 ‘국회와 정당 등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엄을 해제하는 유일한 길인 국회 의결을 원천봉쇄한 것인데, 박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직후 교정본부장 등과 통화할 때나 법무부 실·국장 회의 때는 이런 내용을 몰랐다는 것이다. 계엄 선포에 따른 통상적 업무 지시만 했기 때문에 자신을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의 연장선이다.

14일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는 이런 변론 전략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았다는 박 전 장관 주장은, 오로지 12·3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에 근거해 계엄 업무를 지시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윤 전 대통령은 전국에 생방송 된 담화문에서 민주당이 주도한 감사원장·장관·검사 탄핵, 검찰 예산 삭감 등을 거론한 뒤 “이는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 기도”라며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민주당 내란 획책→비상계엄 선포→민주당 척결’이라는 비상식적 3단 논법이다. 박 전 장관 주장대로라면 야당 정치인을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 목적에 따라 척결 업무(체포·구금) 준비를 지시한 것이 된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12·3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을 헌법과 계엄법이 아닌 음모와 망상에 근거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의 자백’으로 받아들였다. 윤 전 대통령은 뒤늦게 헌법재판소에서 ‘경고성 계엄’이었다고 발뺌하며 담화문의 늪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탄핵을 피할 수 없었다. 박 전 장관 역시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피하려다 더 큰 불법을 밟는 처지에 놓이게 된 셈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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