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츠키 “극단정치 넘어야 한국 민주주의 새 장 열려”

정은주 기자 2025. 10.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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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미래포럼ㅣ기조연설자 인터뷰
민주주의 미래를 말하다
① 스티븐 레비츠키 미 하버드대 교수
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정치학)가 지난 8월29일 미국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한겨레와 만나, 민주주의 붕괴와 회복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오는 23일 ‘민주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열릴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강연을 맡는다. 케임브리지/한해나 피디 haena@hani.co.kr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구해낸 주체는 거리의 시민들이었다.”

현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연구해온 세계적 석학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정치학)는 “한국은 미국과 달리 민주주의 위기에 훨씬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에 맞서 시민들이 즉각적으로 저항하고, 국회가 신속하게 탄핵 절차를 밟은 점이 한국 민주주의가 스스로 회복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였다는 게 그의 평가다.

“계엄 맞선 한국 시민들, 미국에 교훈”

레비츠키 교수는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정치학)와 함께 집필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24) 등 저서를 통해 경쟁적 권위주의의 위험을 지속해서 경고해온 대표적 민주주의 연구자다. 경쟁적 권위주의란 겉으로는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권력의 행사와 운영이 권위주의적으로 이뤄지는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이 체제에서는 선거, 언론, 사법부, 입법부 등 민주주의적 틀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이 국가 자원을 동원해 경쟁과 견제 기능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키며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오는 23일 열릴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레비츠키 교수를 지난 8월29일 미국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직접 만났다. 그는 “지난 12월과 1월, 한국 시민들이 보여준 집단적 행동은 역사적 순간”이었다며, 계엄령 선포를 막기 위한 신속하고 즉각적인 사회적 동원은 민주주의를 수호했고, 이는 미국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이 됐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레비츠키 교수와의 일문일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로 들어가려는 군 차량을 시민들이 막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소수라도 민주주의 원칙 지킨 게 중요

―한국이 계엄 사태 이후 미국과 비교해 민주주의를 더 잘 방어했다고 보는가?

“그렇다. 내가 한국 정치 전문가는 아니지만, 두가지 측면에서 미국보다 단호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민주주의를 공격한 인물을 권력에서 퇴출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한 점이다. 둘째는, 시민의 집단적 저항이 이루어진 점이다. 이는 2024년뿐 아니라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여당의 일부가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는 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당시 여당 일부가 탄핵에 동참한 것이 왜 중요한가?

“극심한 양극화와 당내 압박에도, 소수라도 민주주의 원칙을 지킨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은 그 사회의 회복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양극화에서 벗어나는 데 중요한 파트너가 된다. 탄핵에 찬성했던 보수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어느 한 진영에만 의존하거나 반대 진영을 적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체제는 큰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만 레비츠키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가 완전히 해소됐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 이유로는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와 ‘헌법적 하드볼’(constitutional hardball)이 이어지는 상황”을 그 근거로 짚었다. ‘헌법적 하드볼’이란 정치 세력이 소송, 탄핵 등 법적·제도적 수단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권력을 쥐려는 강경 대립 방식으로, 절차적으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거나 상대에게 정치적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12월4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뒤 각각 공식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 위부터).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진영의 폭력 포용…권위주의 세력 주류로

―한국에서는 임기가 끝난 뒤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와 재판이 반복된다. 이러한 관행을 어떻게 보는가?

“이상적으로는, 정권 교체가 이뤄졌을 때 각 정당 소속 정치인들이 자신이 기소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소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상황이 분명 존재한다. 즉, 정치인 X가 진짜 범죄 혹은 부패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정권을 잡은 정당 Y가 정치적 동기나 필요에 의해 경쟁자를 법적으로 압박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심각한 위험 요소이다.

물론 때로는 정치인들이 실제로 부패하거나 국가에 심각한 해를 끼친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협하는 행위가 명백하다면 반드시 사법적 절차를 거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 전 대통령처럼 민주주의 자체에 위협을 가한 인물에 대한 엄격한 법적 책임 추궁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소와 사법적 판단이 오직 법치주의와 민주적 절차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정치적 보복이나 경쟁 배제 수단으로 변질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 정당이 극단적으로 치우쳤을 때 다른 정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이미 극단화된 상대에 맞서 온건 정당까지 극단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썼다. 민주주의 규범을 끝까지 지키면서 승리해야만, 장기적으로 극단화된 정당도 다시 규범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전개됐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이 점점 더 극단화됐고, 민주당도 이제는 온건함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헌법적 하드볼’을 사용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8년 전 책을 쓸 당시에는 민주당이 신중함과 자제, 규범 준수를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권위주의적 위협이 그만큼 커져 민주당 역시 더 적극적이고 단호한 대응, 즉 필요하다면 헌법적 하드볼을 써야 한다고 판단하게 됐다. 이처럼, 시대적 조건과 상대의 태도에 따라 전략이 달라질 수 있는 복잡한 문제이다.”

레비츠키 교수는 “권위주의로 기울어진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진짜 독재자보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semi-loyal democrat)”라고도 지적한다. 이들은 외형상으론 평범한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으로 보이지만, 정작 자기 진영에 권위주의적 행동이나 폭력이 등장했을 때 단호히 배제하거나 공개적으로 경고하지 않고 포용하거나 동조함으로써, 권위주의 세력을 정상적인 주류 정치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런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역할이 있어야만 경쟁적 권위주의 체제가 실제로 굳어진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4월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탄핵 결정문에 들어간 상호 관용과 절제

반대로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필수적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상호 관용이란 정치적 경쟁자나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적이 아닌 정당한 경쟁자이자 민주주의의 일부로 존중하는 태도를 뜻한다. 자제란 각종 법적·제도적 권한을 행사할 때에도 민주주의의 지속성을 위해 신중하게 절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호 관용과 자제의 원칙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한 실천 규범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문에는 ‘상호 관용’과 ‘자제’라는 표현이 명시돼 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표현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인용했다고 밝혔다. 레비츠키 교수의 상호 관용과 자제의 원칙이 한국 헌정사의 중요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실제 기준으로 활용된 셈이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상호 관용과 자제는 직관에 반하는 개념이다. 18세기 후반 미국이 건국되었을 때, 건국자들은 상호 관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정부에 대한 반대를 반역으로 여겼다. 역사를 통틀어서 그리고 최근까지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범죄자이고 반역자라고 여겼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북한 문제든, 복지 문제든, 세금 문제든 각자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합법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원칙이다.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내 아이디어가 더 낫다고 확신한다 해도, 상대가 자신만의 견해를 밝히고, 권력을 위해 경쟁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진정으로 인정해야 한다.”

레비츠키 교수는 “극단적 양극화로 정파적 적대감이 격해진 사회에서는 패배의 공포, 즉 ‘지면 나라와 내가 모두 끝장난다’는 비이성적 위기의식이 정당을 점점 더 비타협적·비민주적으로 몰고 간다”고 말했다. 정당과 유권자 모두 지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게 되면, 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인 ‘패배 수용’의 규범까지 붕괴하면서 경쟁적 권위주의로의 이행이 현실화된다고 했다.

‘12·3 내란사태’를 일으킨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다음날인 12월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 모인 시민들이 윤 대통령 체포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트럼프의 불법’ 법적 책임 물었어야

―상호 관용과 자제를 우선해야 할 때와 권위주의적 경향을 억제해야 할 때의 경계는 어디인가?

“경계선을 객관적으로 식별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안에서 경쟁이 가능한 제도적 채널이 살아 있는 한, 권위주의적 경향을 억제하기보다 가능한 한 오래 자제와 관용의 규범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제의 규범은 드물고 구축하기도 어렵다. 일단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제도적 경쟁의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 한 최대한 오랜 기간 규범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조 바이든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의 복귀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다고 보는가? 그때로 돌아가 조언을 한다면?

“가장 강조하고 싶은 조언은 바로 한국에서 시행된 방식, 즉 신속하고 단호하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기소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를 기소하는 데 불편함과 주저함을 보였고, 결국 2년이나 지체했다. 그 결과 트럼프가 명백히 민주주의를 훼손한 중대한 범죄에 대해선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트럼프의 불법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판단한다.”

레비츠키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헝가리의 오르반, 터키의 에르도안 체제와 같은 ‘경쟁적 권위주의’로 전락했다고 진단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정부에 대한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반대 활동에도 명백한 대가가 따른다. 정부의 보복 위험 때문에 수십만 명의 미국 시민들이 반대 활동을 주저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이 경쟁적 권위주의로 넘어갔다는 명확한 증거다.”

―트럼프 이후에도 또 다른 트럼프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공화당 전체는 거의 예외 없이 극단주의적이고 노골적으로 반민주적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정치적 구호이자, 트럼프 전 대통령 및 그의 강성 지지자·선거운동 세력을 지칭하는 상징적 용어)에 장악되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트럼프가 2028년에 물러난다 해도, 그의 후계자 역시 상당히 극단적인 노선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모든 잠재적 후계자들도 극우적이고 비자유주의적이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최고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미미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점은 정치는 항상 변하고, 정치적 연합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여전히 백인 기독교인 중심 정당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실제로 더 다양해지고 있다. 다민족 공화당이 온건해지고 조금 덜 극단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시간이 걸리고 매우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현재보다 조금 덜 극단적이고 덜 권위주의적인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상상할 수 있는 방법들은 존재한다.”

지난 8월29일 미국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한겨레와 만난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정치학)의 모습. 케임브리지/한해나 피디 haena@hani.co.kr

“내편 아닌 상대 배제…결국 파국”

―상호 관용과 자제가 약화하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매우 비관적인 시나리오다. 상호 관용이 결여된 사회, 양극화가 정당들을 갈라놓고, 서로를 적대시하기 시작한 사회는 파국적 결말을 맞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1930년대 스페인이나 칠레, 미국 남북전쟁, 독일과 이탈리아 등은 내전이나 독재로까지 나아간 사례이다. 반대로 20세기 초 네덜란드는 정당이 위기를 인식하고, 일정한 보호 장치를 제공하는 ‘타협안’을 추진해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를 완화했다.

과거 100여 년 전에는 정치 지도자들이 막강한 권위를 누렸다. 그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합의한 내용은 추종자들 사이에서 반드시 지켜졌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시대를 맞은 현재, 권력 구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엘리트들은 더 이상 그런 협정을 관철시킬 힘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성급하게 결론내리기에는 이르다.”

케임브리지/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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