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부메랑이 될 ‘혐중 음모론’

허시언 기자 2025. 10. 1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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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이상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무비자로 최장 15일 동안 대한민국 전역을 여행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모습. 연합뉴스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이 일시 허용됐습니다. 정부와 관광·유통업계는 침체한 지역 경제에 온기가 돌 것이라 기대하며 두 팔 벌려 환영했는데요. 그러나 온라인을 중심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이 우리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하며 각종 음모론과 혐오 발언이 난무했습니다. 정부는 지금의 혐오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관광객 감소는 물론, 나아가 국가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우려합니다.

지난달 29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중국인 관광객 대상 무비자 입국이 한시적으로 시행됐습니다. 국내외 전담 여행사가 모집한 3인 이상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무비자로 최장 15일 동안 한국 관광을 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이는 중국이 지난해 11월 한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데 따른 상호주의적 조처입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460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603만 명)의 약 3분의 2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정부는 이번 조처를 통해 약 100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추가 방한할 것으로 기대했죠.

그러나 이런 정부의 기대와 별개로 ‘혐중 정서’가 깔린 무비자 정책 반대 여론이 번졌습니다. SNS에서 ‘무비자로 입국한 중국인이 남녀노소 상관없이 납치해서 장기 매매를 한다’ ‘중국인 3000만 명이 무분별하게 들어온다’는 등 근거 없는 낭설이 난무했고요. 지난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가 발생하자 ‘전산 시스템 마비로 중국인 고위험군 입국자를 가려내지 못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죠.

국정자원 화재에 무비자 정책을 엮은 음모론은 일파만파 퍼져나갔습니다. 전산 시스템 마비로 한때 전자여행허가(K-ETA) 사이트에서 체류지 주소 입력이 안 되자 ‘중국인 범죄자가 입국하거나 불법 체류 목적의 입국자가 발생한다’는 소문도 빠르게 돌았습니다. 전자입국신고 사이트도 화재 영향을 받으면서 ‘입국자들이 한국 내 체류지를 적지 않아 사후 관리가 어렵게 됐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습니다.

정치권도 가세했는데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법무부가 출입국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며 무비자 입국 정책을 강행한다고 밝혔지만, 뒤로는 전자입국 시스템 오류로 입국자 주소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긴급 공지를 올렸다”며 “주소 입력이 누락되면 범죄, 불법 체류, 감염병 확산 등 유사시 신속 대응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에 법무부가 일일이 해명하고 나섰습니다. 먼저 중국은 전자여행허가제 대상 국가가 아니고요. 또 이번 무비자 입국은 법무부의 사전 점검을 받고 입국하는 형태여서 전자입국신고 사이트에 따로 체류지를 입력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사전 점검 과정에서 불법 체류 전력자는 무비자 입국 대상에서 제외하고, 별도 ‘출입국관리정보시스템’으로 고위험군을 선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관광객 이탈로 발생하는 불법 체류자를 막기 위해 여행사에도 각종 책임을 부과한다고 했죠.

감염병 확산 우려도 반대 논리로 활용됐습니다. 지난 8월 국회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치쿤구니야열 감염 모기가 국내로 유입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무비자 입국 제도를 즉각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치쿤구니야열은 감염된 모기에게 물려 발생하는 제3급 법정 감염병으로, 최근 중국 광둥성 지역에서 대규모로 유행한 만큼 관광객을 통한 유입 가능성이 있다는 게 청원의 요지였죠. 이 청원은 한 달간 5만8735명의 동의를 받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논의될 예정입니다.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무비자 입국 제도를 “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규모 입국으로 전염병 및 감염병 확산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며 “손 소독 등 개인위생에 주의하고 발열이나 호흡기에 이상 증상이 발생하면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을 빠르게 방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요.

그러나 질병관리청은 2013년부터 지난 7월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치쿤구니야열 해외 유입 71건 가운데 중국발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가장 많이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죠. 질병관리청 측은 “중국에서 유행한 것은 맞지만 특정 국가 때문에 치쿤구니야열이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치쿤구니야열은 불치병도 아니고, 예방 수칙만 잘 지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특별히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한시적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지며 명동 상권이 들썩인다”며 “고마워하고 환영해도 부족할 판에 여기에 대고 혐오·증오 발언을 하거나 욕설을 하고, 행패를 부려서야 되겠느냐”고 꼬집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관광객이 한 번 오면 수백만 원씩 쓰고 간다. 1000만 명이 더 들어오면 이는 엄청난 수출 효과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그런데 어느 나라 국민이 자기들을 이유 없이 비방하는 나라에 가서 관광하고 물건을 사고 싶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는 해외 관광객 안전을 위협하는 선동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인종 차별적 혐오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라”고 지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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