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울산여지도] 만파식적의 결기가 몸서리 치는 바다
문무대왕 호국혼과 신문왕의 효
부채처럼 펼쳐진 주상절리 해안

해파랑길 울산구간을 마무리하고 경주로 넘어 왔다. 정자항에서 신명 넘어 양남 나아해변까지 울산여지도 바닷길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결국 후렴구를 채우게 됐다. 문무대왕의 수중릉과 감포바다를 빼고 울산의 바닷길을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울산과 경주 감포는 지난 2,000년 동안 한동네였다. 이 바다는 물질로 이어간 해녀들의 성지이자 귀신고래의 안식처였다. 봄이면 해녀들이 건져올린 바다가 미끌한 미역내를 풍기고 가을에는 전복에 문어와 고동까지 깊은 맛 나는 바다가 한상인 동네다.
그 질펀한 바닷길의 푸른 전설을 뒤로하고 북으로 향하면 끝없이 이어지는 주상절리와 딴판인 세상을 마주한다. 경주 나아해변 ~ (월성원전 버스구간)~봉길해수욕장~나정고운모래해변~감포항까지 해파랑길 11코스는 19.9㎞의 제법 긴 구간이다. 문무왕의 호국혼이 동해바다에 퍼렇게 서린 바닷길이다. 이 구간부터는 대중교통 이용이 애매해 고심 끝에 당분간은 출발지점까지 차량으로 이동을 하고 도착지점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의 한가운데, 바다는 음산했다. 여전히 낮기온은 27도를 넘어 살짝 덥다는 느낌이지만 간간히 비바람이 뿌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월성원전 구간이 버틴 이번 코스는 부득이하게 차를 이용해야 했다. 나아 해변을 나서 봉길까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원전을 우회하면 봉길 해변이다. 여기서 감은사를 돌아 이견대로 나오는 코스다.
감은사로 가는 봉길 해변에는 삼각편대의 비밀의 상징이 있다. 감은사와 이견대, 그리고 수중왕릉이다. 문무대왕과 아들 신문왕의 2대에 걸친 호국혼이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전설과 신화로 뒤섞여 있다. 이 바다 위에는 1,000년전 삼한일통과 왜구척결의 결기가 만파식적의 피리소리로 흘러 물결로 출렁거린다.
봉길에서 이견대 가는길에 감은사를 거친다. 해파랑길 11코스의 중심에 위치한 이 장소는 신라의 호국정신과 왕실의 영적인 계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인문학적 유산이다. 이 세가지 유적은 단순한 건축물이나 장소를 넘어 당시 신라인의 염원과 국난 극복 의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역시 수중왕릉이다. 문무대왕의 수중왕릉은 사실여부를 떠나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려는 문무의 결연한 의지를 잘 보여주는 유산이다. 이미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룬 시기에 신라왕실은 왜 왜의 침략을 걱정했을까. 이 지점에서는 당시 왜와 통일신라, 그리고 당나라간의 국제 정세를 살필 필요가 있다. 실제로 신라와 비슷하게 왜의 경우도 신라의 공격에 대비해 해안가에 대규모 축성작업을 한 사실이 밝혀진 만큼 쌍방이 침략의 위협을 느꼈던 예민한 시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중왕릉과 감은사, 그리고 이견대가 특별한 이유는 왕릉 하나의 상징성이 아니라 감은사와 이견대라는 입체적인 스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은사지는 본래 문무대왕이 불사를 시작했지만 완성을 못하고 아들 신문왕이 완성한 사찰이다. 감은사가 세워질 당시에는 절 앞까지 바다로 돼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용이 된 문무대왕이 감은사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는 전설과 통하는 부분이다. 복원한 감은사지의 탑신은 수중왕릉이 있는 동해를 향해 우뚝 솟아 대왕의 호국정신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발짝 떨어진 이견대는 절묘하다. 신문왕이 아비의 호국정신을 잇기 위해 의례를 행한 역사적 공간이다. 무엇보다 이견대는 신문왕이 신라의 3대 보물 중 하나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은 곳이기에 이 피리를 불어 모든 어려움을 가라앉게 했다는 전설이 여기서 유래했다.
전설같은 신화를 뒤로하고 묵직한 바다빛을 따라 올라가면 나정 해변과 만난다. 나정은 동해안에서는 드물게 고운 모래해변으로 유명하다. 지난 2021년 겨울 오토캠핑장이 조성되기 전까지 나정은 해수욕장에 그늘막이 자리해 여름마다 잠시 쉬어간 기억이 있었는데 말끔하게 달라진 모습이 완전히 다른 곳에 온 느낌이다.
무엇보다 나정으로 이동하는 동안 해안 둔덕에 조성된 관광단지에 이국적인 리조트며 풀빌라 등이 새롭게 들어서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됐다는 뉴스를 실감했다. 이 일대는 주말이면 방이 없을 정도로 인기라니 격세지감이다. 해안이 원형을 잃어가는 모습과 새로운 시설물이 문득, 절경의 일부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낯설지만 그리 눈에 거슬리지 않아 신기했다. 어쩌면 설계의 펜대를 잡은 이들도 천연 해안의 영감을 받아 조화로운 건축물로 풍경에 덧칠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상상해 봤다.
가을장마가 길게 드러누은 바다. 안개와 먹구름이 뒤섞여 해안선의 끝자락이 먹먹하다. 여름 한철 나정은 모래빛에 물빛까지 10리 해안길이 강렬한 햇살에 바다가 모래를 말려 해변에 울려놓는다고 했는데 그 실체를 보지 못해 아쉽다.
이쯤에서 해파랑길 전체구간을 펼쳐 본다. 50코스 가운데 이제 겨우 11코스다. 이번에 걷는 구간이 감포 깍지길이다. '깍지'는 짐작하는대로 손가락을 엇갈리게 맞잡은 형태를 말한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바다가 그렇게 어울리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 구간에는 동해안에서는 드물게 해안굴 형태가 몇몇 나타난다.
그 중 하나가 용굴이다. 굴곡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조화지만 오래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동해의 용이 마을을 지키고 풍어의 기원을 담아 만선을 채워 준다고 믿었다. 뜬금없이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입간판이 불쑥 솟아 있다. 조미미의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다리를 지나면, 라면 중에 라면, 바다가 육지라면을 만난다. 그 라면, 나도 한그릇 후루룩 면치기로 넘기고 싶다.
조미미 이야기를 잠시 듣다 돌아서면 감포 바다다. 일제가 적산가옥 여럿을 남길 정도로 한 때 동해안 바다를 주름잡던 포구다. 등대 속의 탑이 우주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오래된 미래다. 해파랑길 11코스는 바다와 바람과 모래가 뒤섞인 지루할 틈이 없는 해안길이다. 160번 경주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울산으로 향했다. 이제 해파랑길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접는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