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관광지’ 남이섬 만든 그가 움직였다…10년 가꾼 제주돌밭도 입소문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5. 10. 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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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성공신화’ 강우현의 새 도전
제주서 ‘제2 남이섬’ 키우고
새 직함엔 ‘상상하는 기술자’
“다음 트렌드는 바이오 여행”
자연 축내지 않는 관광 꿈꿔
‘역발상’의 힘으로 남이섬 관광 성공 신화를 쓰고 제주에 10만㎡ 규모 업사이클링 공원 ‘탐나라공화국’을 연 강우현 전 대표. 최근엔 스스로를 ‘바느질리스트’라 칭하며 재봉틀로 그림 그리는 새로운 도전에 푹 빠졌다. 11월 서울 코엑스 전시도 준비 중이다. 한주형 기자
K열풍이 한국 관광 산업의 돌파구가 될까? 글쎄올시다. “발판은 될지언정 저절로 지속하는 관광지는 없다”는 조언에 뼈가 담겨 있다. 특별한 것 없던 남이섬 유원지를 지역 대표 관광지 ‘나미나라공화국’로 만든 강우현 전 대표(70)의 경험담이자 신념이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그는 “관광객 지갑을 여는 게 아니라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한다”며 “여행자가 직접 여행지를 가꾸고 사랑해야 지속 가능한 관광지가 된다”고 말했다. 남이섬은 2002년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명성을 얻었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유명해졌으니 이제 여기저기서 똑같은 길을 조성할 테고, 자칫 남이섬은 그들 중 하나로 전락할 거라고 봤어요. ‘겨울연가’ 관련 간판은 다 치우고 나무를 수백 그루 더 심었죠. 덕분에 지금은 남이섬만의 숲이 우거졌습니다.”

그는 ‘역발상의 디자이너’다. ‘팔리면 상품, 안 팔리면 작품’ ‘내버리면 청소, 써버리면 창조’ 등 말장난에 도를 트고 상상을 판다. 누군가는 그를 봉이 김선달, 또 누군가는 피터팬이라 불렀다.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디자이너 출신이 2001년 당시 60억원 부채를 떠앉은 남이섬에 대표로 취임했을 때, 이곳이 연 매출 290억원의 문화예술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리라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수재 민병도 선생(1916~2006)이 섬을 1965년에 인수한 이래, 상상을 현실로 만든 전문경영인은 강 전 대표가 처음이었다.

‘겨울연가 촬영’ 입간판 대신
나무 수백그루 심어 차별화
서울서 처치곤란 낙엽 조달
은행잎 카페트 만들어 대박
메타세쿼이아 숲과 은행나무잎 길 등 단풍 명소로 유명한 춘천 남이섬.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늦가을 남이섬을 물들이는 낙엽길도 그의 발상이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 중인 그는 수백톤의 은행나무잎이 처치 곤란이라는 얘기를 듣고 “남이섬에 버려달라”고 했다. 2006년부터 20년째 송파구는 소각 비용의 약 10%에 불과한 운반비로 낙엽을 처리하고, 남이섬은 은행잎 카펫을 관광 명물로 만들었다. “이런 게 지혜죠. 지금 가진 게 충분한 것 같아도 더 크게 주변을 봐야 해요. 지식은 AI가 대체해도, 지혜는 사람만이 발휘할 수 있어요.”

2014년 남이섬을 떠나 제주 한림읍 중산간의 10만㎡(약 3만 평) 돌밭에 가꾼 또 다른 생태공원 ‘탐나라공화국’에도 지혜가 가득하다. 버려진 자재를 재활용한 예술품, 빗물을 활용한 80여 개의 연못 등이 볼거리다. 전국에서 공수한 30만여 권의 헌책 도서관도 갖췄다. 아직 남이섬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천년의 유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 “10년 동안 투자만 했으니 자본 상태가 좋진 않아요. 주변에선 여행사를 끌어들여서라도 매출을 만들라고 하지만, 내겐 1000명이 아니라 1000명을 움직일 1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버텼어요. 곧 때가 올 겁니다.”

버려진 자재 재활용 예술품
빗물을 활용한 연못 80여개
헌책 수만권 도서관 지어서
공원 ‘탐나라공화국’ 조성
폐기될 헌책 수만 권과 빈 땅에서 나온 바위로 꾸민 제주시 한림읍 탐나라공화국 도서관 전경. 사진제공=탐나라공화국
그가 보는 미래 관광의 키워드는 ‘바이오 여행’이다. 여행자가 소비를 빌미로 관광지를 제 멋대로 축내는 게 아니라, 자연과 문화를 함께 가꾸게 만들자는 역발상이다. 이런 상호작용의 관점에선 주민과 손님, 공무원이 같은 목표로 지역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 그는 또 “관광 산업의 본질은 기분을 파는 것이고, AI가 등장하며 ‘단체 관광’이 아닌 맞춤형 ‘개별 여행’도 늘어날 것”이라며 “손님에겐 무한 친절을 베풀어도 부족하다”고 했다.

요즘도 일상의 절반은 탐나라공화국에서 보내지만, 경영 대표이사에선 지난해 스스로 내려왔다. 운영에 필요한 최소 인력만 남겨두고 이젠 젊은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줄 생각이다. 새 명함엔 직함 대신 ‘이매지니어’(상상하다 ‘Imagine’과 기술자 ‘Engineer’의 합성어)라 적었다. 그는 “예술만 해선 굶어 죽고, 기술만 해선 빌어먹는 세상 아니냐”며 웃었다. 9년 전 탐나라공화국에 미리 세운 비석엔 이런 묘비명을 새겼다. ‘상상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땅을 남긴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재봉틀로 그림 그리는 ‘소잉 아츠’(Sewing Arts)에 푹 빠졌다. 얇은 쇠 바늘을 붓 삼은 자칭 ‘바느질리스트’다. 내로라하는 경영자들이 직함을 내려놓고 공허에 빠지는 모습을 봐왔지만 “나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직접 해봤으니 지금도 표현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경력이나 연륜으로 남한테 일 시키는 건 그만두세요. 매일 아침 세숫물 버리고 다음 날 새 물을 떠 세수하듯이 살아보세요. 내가 일흔에도 여전히 꽤 참신한 비결입니다.”

‘역발상’의 힘으로 남이섬 관광 성공 신화를 쓰고 제주에 10만㎡ 규모 업사이클링 공원 ‘탐나라공화국’을 연 강우현 전 대표가 서울 남산한옥마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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