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기술패권 좌우…인재 모시기 총력전 나선 AI·반도체 기업들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현재 글로벌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소리 없는 인재 영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한창인 AI 분야는 특히 그렇다. 마크 저커버그가 이끄는 메타는 최근 스타트업 버셉트(Vercept)를 창업한 24세의 AI 연구자 맷 다이트케를 4년간 2억5000만 달러(약 3510억원)에 영입했다. 오픈AI는 핵심 연구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200만 달러(약 28억원)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했다. 인재 확보 경쟁의 치열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 '브레인'의 해외 유출 현상이 심화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인재 확보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기업들은 필사적이다. 기술패권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고연봉 등을 앞세운 글로벌 빅테크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각사각색(各社各色)의 인재 확보 및 유출 방지 전략을 들여다봤다.

삼성전자는 '헤드헌팅', SK하이닉스는 '육성'
한국 경제를 이끄는 반도체 기업들은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인재 헤드헌팅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초 임원 세미나에서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 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모셔와야 한다"고 주문함에 따라 삼성전자의 인재 영입 예산과 자율권이 대폭 커진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TSMC·인텔·애플 등 글로벌 기업 출신 임원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 올 1분기에도 애플 디렉터 출신인 최재인 부사장, 지멘스 출신 문성만 상무, 제너럴모터스(GM) 산하 크루즈 SW 엔지니어 출신 윤승국 상무, 퀄컴 시니어 디렉터 출신 박찬홍 부사장, 구글 시니어 스태프 SW 엔지니어 출신 조영상 상무 등이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SK하이닉스는 완성된 인재 영입보다 잠재 인재를 조기에 확보해 육성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025 테크 데이'를 열고 한양대·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포항공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주요 대학을 차례로 방문하며 기술 중심의 채용 및 인재 교류에 나섰다. 현직 임원들이 직접 대학 캠퍼스를 방문해 기술 발표, 질의응답, 1:1 직무 상담 등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회사와 기술 비전을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인재 육성은 사내 교육기관인 'SKHU'(SK Hynix University)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2017년 시작된 SKHU는 반도체 전문인력을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사내 교육·인재 육성 플랫폼이다. 반도체 역량을 외부 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내부 구성원을 중심으로 전문 인재 풀을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IT 기업들도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재 확보·양성에 나섰다. 우선 네이버는 AI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인재 확보에 나섰다. 그 중심에는 올해 6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벤처캐피털(VC) 네이버벤처스가 있다. 글로벌 AI 기술과 인재를 현지에서 적극 발굴해 네이버의 AI 전략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벤처스 설립은 올해 3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한 이해진 창업자의 AI 경쟁력 확보 승부수이기도 하다.
네이버 '투자', LG '성장 환경' 통해 인재 확보
특히 지금은 미국 내 인재를 채용할 '절호의 찬스'로 평가된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을 중심으로 대량의 감원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연구기관과 대학 지원을 중단하거나 대폭 삭감하고 있는 것도 미국 내 AI 인재 확보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카카오는 AI 인재 확보를 위해 채용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9월8~28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카카오·카카오게임즈·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뱅크·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페이테크 등 주요 계열사가 그룹 단위 신입 직원 공채에 나선 것이다. 공채는 테크·서비스·비즈니스·디자인·스태프 등 전 직군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전체 채용 규모는 세 자릿수다. 이번 공채의 목적은 AI 기술로 새 가치를 창출하는 데 익숙한 'AI 네이티브' 인재를 선발하는 데 있다. 카카오는 다양한 AI 기술을 접하고 활용하며 성장한 지금의 청년세대가 혁신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를 'AI 대중화' 원년으로 삼은 카카오는 AI 인재를 선점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LG그룹은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 성장 기회가 급여나 성과급 등 단순 보상보다 더 강한 인재 확보 및 이탈 방지 유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LG AI연구원이 2022년 개원한 LG AI대학원이 대표적이다. LG AI대학원은 학위 수준의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실제 현장 문제를 LG AI연구원의 전문가들과 함께 해결하는 데 중점을 뒀다.
LG AI대학원에서 졸업 논문까지 마친 임직원들은 LG그룹 내에서 인정되는 학위가 수여되며 AI 인재 목록에 등재돼 각 조직에서 AI 프로젝트를 이끌게 된다. LG AI연구원은 또 올해 LG AI대학원 공식 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비학위 교육과정을 한층 정교화하고 전문화하는 대대적인 개편 작업도 준비 중이다.
LG AI연구원은 또 LG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AI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LG AI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기초 지식부터 툴 사용법까지 AI 활용 역량을 높일 수 있는 AI 리터러시 교육부터 실제 산업 현장에서 AI 프로젝트를 이끌어가기 위한 해결 능력 강화 교육 등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글로벌 인재의 '블랙홀'이라고 불렸고 중국과 유럽, 캐나다 등은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첨단산업 분야 인재를 대거 유치하고 있다"며 "기술패권 확보의 핵심이 사람이라는 점에서 기업들에 역량 있는 인재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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