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리라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서기 2025년, 크라잉넛이 대한민국에서 전업 인디밴드로 살아온 지 30주년 되는 해이다. 1995년에 우리는 홍대 작은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땐 초고속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고, 음악학교나 학원도 많지 않았다. 우리는 음악을 어깨너머로, 상상으로 배웠다. 메트로놈 연습법도 모르던 우리는 심장 박동을 메트로놈 삼아 합주하곤 했다. 우리의 연주가 하나의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것은 경이로운 놀이였다.
애송이 시절 음악학교나 학원을 다닌 적이 없었기에 선생님에게 혼날 일도,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다. 음악은 말 그대로 ‘소리 나는 즐거움’이었다. 잘한다, 못한다는 기준도 없었고 주눅 들 일도 없었다. 그게 음악을 놓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잘한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만의 표현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타자를 잘 친다고 해서 꼭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닐까?
처음 정규 앨범을 녹음하며 메트로놈을 접했는데, 우리는 첫 녹음을 끝내고 “메트로놈이 고장 난 것 같아요”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엄청난 패기였다. 우리의 리듬을 못 따라가는 메트로놈이 잘못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잠시 후 엔지니어님이 피식 웃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아, 우리가 잘못한 거구나!’
지금은 실력이 조금 늘어 메트로놈을 맞출 줄 알지만, 여전히 “그냥 우리 호흡대로 가자, 그게 더 드라마틱하다”라며 연주한다. 30년간 연주하며 느끼건대 박자가 좀 빨라져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 좋은 리듬은 메트로놈 박자에 딱딱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연주에 저절로 춤출 수 있게 하는 호흡 아닐까? 대화할 때도 바른말만 하는 것보다 서로의 감정을 보듬으며 맞장구쳐 주는 게 더 좋은 것처럼.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30년. 세월은 에프원 그랑프리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덧 2025년이다. 봄·가을엔 대학 축제 공연을 다니는데, 얼마 전 드럼 치는 상혁이의 딸 루나가 다니는 국민대에서도 공연했다. 크라잉넛 노래 ‘루나’의 주인공 루나가 이제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대학생이 되었고, 그 대학교 축제 무대에 아빠 밴드가 서게 된 것이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하고도 신나는 감정이 뒤섞여 우리와 관객 모두 함께 점프하며 떼창을 했다. 전업 인디뮤지션으로서 내 친구이자 동료가 일가를 이루어냈다는 것,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나도 8월 초부터 56일 동안 금주를 하며, 주어진 공연과 일들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소중한 30주년을 과거 환영 속에 파묻혀 설렁설렁 살고 싶진 않았다. 우리의 음악에 담긴 흥과 한을 표현하기 위해 매 공연에서 최선을 다해 오두방정을 떨었다. 일주일에 서너번 운동을 챙기고, 틈틈이 스트레칭을 했으며, 악기를 정비하고 소모된 부품은 업그레이드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보컬 레슨도 받는다. 3옥타브 장인처럼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오래도록 노래하고 싶어서다.
아무리 준비운동을 하고 몸을 풀어도, 무거운 베이스를 메고 점프를 하면 근육이 뭉친다. 근육이완제를 먹고 뻐근한 몸을 눕히며 생각한다. “아, 오늘도 충만하게 놀았다!” 마치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수도꼭지에서 수돗물을 맛있게 마신 뒤 쇠맛을 느끼며 흡족해하던 느낌이다.
올해도 많은 공연이 있었고, 크라잉넛은 30주년 프로젝트 준비로 촘촘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 차창 밖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손때 묻은 가죽처럼 낡고 빛나는 시간이 아닐까.”
크라잉넛이라는 바이닐(LP) 판의 앞면을 이제 뒤집을 때다. 다시 에이(A)면 처음으로 돌아가 같은 노래만 반복할 수는 없다. 판을 뒤집고 새로운 30년을 노래하고 싶다. 그런 의미를 담아 10월 말부터 홍대 앞 상상마당 갤러리와 라이브홀에서 여는 30주년 전시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1990년대 아날로그 시대 때 종이에 썼던 ‘밤이 깊었네’, ‘명동콜링’ 같은 곡들의 초고와 사용했던 악기, 의상, 사진, 잡지, 영상들까지 모두 모은 전시다. 김창완밴드, 김수철, 잔나비, 장기하 등 여러 동료 뮤지션들과 공연도 이어간다. 정성스럽게 손질했던 손때 묻은 시간들을 한자리에 펼쳐 보이는 왁자지껄한 자리가 될 것 같다.
추석 연휴에 부모님과 함께 조용필 선생님의 특집 콘서트 방송을 봤다. 시대를 초월한 감동이었다. 어린 시절 여행 갈 때 자동차 안에서 온 가족이 함께 들었던 조용필 선생님의 음악이 다시 울려 퍼지니 가슴이 저릿했다. 우리도 명절날 삼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밴드가 되는 날을 꿈꿔본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 대통령, 임은정에 “마약수사 외압 의혹 철저히 밝혀라”…백해룡 투입
- 캄보디아 취업사기 덫…“올해만 탈출 한국인 400여명”
- 집값 과열에 이번주 후속대책…마포·성동 등 규제확대 전망
- [단독] 현대건설, 경호처 지시로 ‘대통령실 파인그라스’ 하도급계약 신고 안 해
- 경주회담 코앞, 무역전쟁 불붙이는 미·중
- 오늘부터 이재명 정부 첫 국감…“조희대 나와라” “김현지 불러라”
- [단독] 주한미국대사관 45년간 ‘공짜’ 사용…용산 이전도 기약 없어
- 이스라엘 생존 인질 20명 한 번에 석방될 듯
- 주진우의 태세 전환…‘중국인 무비자’ 힘 싣더니 1년 새 “간첩 면허증”
- ‘과학쌤’의 인생 2막, 영화배우로 꽃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