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동자 박병준’ 10년 10개월 만의 복직…숨진 동료 약속 지켰다

안지산 기자 2025. 10. 12. 16:3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소송
2015년 마산센터서 해고되자 복직 투쟁
올 6월 10년 만에 대법원서 …10월 복직
“먼저 떠난 동지 보고 끝까지 가겠다 생각”
박 씨, 비정규직 차별 없는 세상 연대 의지
박병준(오른쪽) 씨가 2022년 5월 숨진 삼성전자서비스 해고 노동자 고 정우형 씨의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박병준 씨

"10년 10개월 만의 복직입니다. 함께 투쟁했지만 끝내 숨진 형님 의지대로 이렇게 원하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박병준(51) 삼성전자서비스 창원외근센터 노동자는 10년 10개월 만에 출근했다. 그는 10일 오후 퇴근 후 만난 자리에서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박 씨는 2004년 6월 삼성전자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비자 가정을 방문해 삼성전자 제품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수리하는 일을 했다. 원청은 파견법상 2년이 지나면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그러지 않았고 박 씨의 고용 불안은 수년째 이어졌다.

"원청은 우리들을 '삼성 가족'이라 말만 하면서 철저히 비정규직으로 대우했습니다. 우리는 전 직원 앞에서 실적으로 줄 서기를 해야 했고,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최고점을 받지 못하면 반성문까지 써야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3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박 씨도 가입했다. 그는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마산센터에 다니고 있었기에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마산분회 소속 조합원으로 활동했다.

그해 7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했다. 박 씨를 비롯해 전국에서 일하는 1335명이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노동자가 사업주로부터 법적 노동자 신분을 인정받고자 제기한 소송이었다.

소송 이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삶은 위태로워졌다. 박 씨는 삼성전자의 노조 와해 공작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마산센터에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벌고 있었죠. 그런데 노조활동 후 일감이 급격히 줄었고 급여는 이전과 비교해 30% 수준까지 감소했습니다. 생활조차 힘들어지더군요."

2015년 1월 박 씨가 몸담았던 삼성전자서비스 마산센터는 폐업했다. 노동자 60여 명은 거리로 내몰렸다. 박 씨는 조합원들과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집회에 나섰다. 두 달이 흐른 3월, 마산센터 조합원들은 복직했지만 박 씨는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강경한 노조활동 때문이었다.

박 씨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과 복직투쟁을 이어갔다. 그는 최저 시급을 받는 다른 일을 하면서 불안정한 생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이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며 사과했고, 직접고용에 나섰다. 소송에 참여한 많은 조합원이 직접고용되면서 소송을 취하했다.

박 씨를 비롯한 소수 인원은 직접고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들은 기준 시점 이전에 해고되거나 노조 와해로 어쩔 수 없이 퇴직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해고복직투쟁위원회를 조직해 복직투쟁을 이어갔다.

박 씨는 함께한 동지를 잃는 고통도 겪었다. 2022년 5월 12일 삼성전자서비스 해고노동자인 정우형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2015년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해고된 뒤 복직투쟁을 해오던 중 54년을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남은 몇몇도 모두 소를 취하했다. 박 씨는 홀로 끝을 보겠다고 다짐했다.

소송 과정은 지난했다. 2013년 시작한 소송에서 2017년 1월에서야 1심 판결이 났는데, 노동자 패소였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다시 5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웃을 수 있었다. 2022년 1월 항소심 재판부는 노동자 승소 판결을 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올해 6월 12일 대법원은 삼성전자 상고를 기각했다. 소송은 1335명으로 시작해 12년 후 박 씨 1명만 남은 채 최종 승소로 결론났다.

"대법원 판결 이후 우형이 형님 묘 앞에서 '형의 의지대로, 나의 뜻대로 끝까지 버텨 이렇게 원하는 승리를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승리를 맛보기까지 정당·시민사회단체·노동계·시민 등 많은 분이 도와주셨습니다."
이달 1일 창원시 성산구 삼성전자서비스 창원외근센터 앞에서 복직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병준(가운데) 씨가 발언하고 있다. /박병준 씨
박병준 씨는 10년 10개월 만인 이달 출근했다. 박(오른쪽 넷째) 씨가 복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병준 씨

박 씨는 마침내 복직했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 창원외근센터에서 현장 복귀를 앞두고 교육받고 있다.

"10여 년 전 비정규직 때 차별 대우를 받았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이제는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면서 소비자들에게 더욱 질 좋은 서비스로 보답해 드리려 합니다."

박 씨가 싸워온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크나큰 변곡점으로 남았다. 그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불법파견 근절을 위해 앞으로도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직도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파견 관련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꺾이지 않는 의지로 끝까지 싸워 반드시 승리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차별 없는 세상이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게 우형이 형이 바랐던 세상이고, 제가 10년 10개월 동안 싸웠던 이유기도 하니까요."

/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