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꽂힌 IT 선봉장…"뉴욕·파리로 K한옥 수출할래요"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을 운영하다 놀랍게 아날로그 한옥에 미쳐버린 사나이가 있다. 급기야 3년6개월간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를 샅샅이 뒤져 영월 선돌 명승지 땅 16만명을 덜컥 사들였고, 한옥 대목장 25명을 섭외해 200여 평짜리 독채 한옥 세 채와 객실 14개를 품은 한옥호텔까지 지어 올렸다. 용지 전체가 완공되는 2028년이면 세계 최대 한옥 호텔이 탄생한다. 강원도 영월을 K한옥 메카로 만든 주인공이, 지역화폐로 유명한 코나아이의 조정일 회장이다. 지금은 더한옥헤리티지 대표 직함을 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여의도 본사 회장실에서 만난 조 회장. 그의 방에 들어서자 족히 3~4m는 되어봄 직한 소나무 테이블부터 눈에 박혔다.
"한옥을 제대로 알려면 재료가 되는 목재(나무)의 성질에 대한 이해가 필수거든요. 그래서 제가 직접 만들어봤습니다. 저기 보이는 제 책상까지. 수령 70~80년 정도 되는 원목입니다."
말도 안 된다. 지역화폐라는 첨단 IT 산업의 혈액을 다루는 기업 회장이, 하필 한옥에 꽂혔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한옥인지.
"우리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을 생각해보세요. IT인 디지털은 연결 역할에만 그칩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디지털 신호로 교환한 영상, 음원을 보고 듣지만, 결국 몸에 달린 눈과 귀로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디지털이 고도화되면 결국 아날로그와 합쳐집니다. 행복과 성취감을 느끼는 핵심 중추는 인간의 오감이 될 수밖에 없지요. 오감이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공간, 그게 한옥이었지요."
맞다. 이어령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적 사고다. 메인 오브제로 조 회장은 한옥을 찜한 셈이다.

그의 한옥 사랑 역사는 꽤 된다. 영월에 터를 잡는 데만 3년6개월이었지, 그가 한옥을 지은 건 무려 13년이다. 영월 더한옥헤리티지에는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초반에는 코나아이 직원들도, 심지어 자녀들까지 몰랐다. 주말마다 전국 한옥을 찾아 사라졌는데, 그게 한옥 프로젝트를 위한 것인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구석구석 한옥이란 한옥은 직접 다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록에 담았다. 마지막 터를 잡은 영월까지는 수천 번을 오갔을 정도. 그렇게 나온 게 강원도 영월 더한옥헤리지티 호텔이다. 조 회장이 설계까지 직접 해냈다.
"건축 모델링 프로그램 '스케치업'을 유튜브로 배워서 써먹었지요. 한옥은 설계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참고만 합니다. 철저히 임기응변식으로 진행되는 과정이지요. 저는 이곳에 K-DNA가 가득한 한옥을 짓고 싶었지요. 설계까지 직접 한 이유입니다."
물론 과정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도제식으로 한옥 특유의 공법들이 대목장 사이에 계승됐지만, 과학적이지 않은 게 가장 큰 단점. 외풍이 심하고 단열이 안 되는 점, 특히 목재 특성상 휘어진다는 문제점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답게, 그는 과학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 건축 과정에 반영해낸다.
그 결과물이 '건축상'이다. 가장 한국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배우 고소영·장동건 부부, 이영애 등 유명 숙박객이 오픈런하며 찾았던 이곳은 작년말 '베르사유 건축상' 호텔 부문 1위를 수상한다. 건축계 노벨상으로 꼽히는 이 상을 수상한 호텔은 국내에선 처음이다. 유네스코와 국제건축가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베르사유 건축상은 매년 세계 건축물을 대상으로 쇼핑몰·공항·스포츠 시설·호텔 등 8부문에서 시상한다. 국제인테리어디자인 협회(IIDA)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호텔 부문에서도 한옥 건축물 최초로 수상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2025년은 그의 한옥 사랑 프로젝트가 '퀀텀 점프'를 하는 해다. 9월에는 한옥 모티브의 호텔을 문개실 마을에 새롭게 오픈했다. 이름하여 '더한옥헤리티지 호텔'. 건축면적 1697㎡, 연면적만 1만1860㎡ 크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정전(1270㎡)보다 큰 매머드급 규모다. 장인 25명이 참여해 완성한 이 한옥 호텔은 84m 길이 회랑과 총 14개 객실, 200명 수용 연회장을 갖추고 있다. 확장 작업도 본격화한다. 2026년 1월엔 독채 2채(춘하정사, 추동정사), 같은 해 6월에는 라온재(한옥 수영장 및 문화 공간)를 차례로 선보이며, 전통을 미래로 잇는 '뉴 헤리티지(New Heritage)'의 여정을 지속한다는 구상이다.
아날로그의 극강인 한옥호텔의 가장 큰 특징은 놀랍게도 IT다. 더한옥헤리티지호텔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시스템이다. 외관은 모던한 한옥 스타일인데 온도, 조명 등 그 속에는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제어하는 시스템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야말로 '디지로그'다.
"사실 모든 산업의 핵심은 연결이거든요. 아무리 디지털이 고도화해도 결국 아날로그와 결합해야 인간의 감성을 터치하는 것처럼 말이죠. 결국 한옥도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하나의 공간 플랫폼이나 다름없거든요."
조 회장의 다음 연결 고리는 '글로벌'이다. 쉽게 말하자면 K한옥의 수출이다. 1차로 점찍은 곳은 가장 핫한 도시로 꼽히는 뉴욕과 파리다.
"1차적으로는 뉴욕에 K한옥호텔을 올리고 싶습니다. 다음 차례는 유럽이지요. 제가 선돌 명승지 땅에서 '이곳이다'고 느낀 것처럼 눈여겨본 장소도 있습니다. 허드슨강 자락이지요. 멀리 한옥호텔이 둥지를 트고 있고 반쯤 가린 차경을 통해 멋진 야경을 품습니다. 전 세계가 감동하지 않을까요."
아날로그의 정점 한옥에 미쳐버린 IT벤처 1세대 조 회장. 마지막으로 밸런스 퀴즈를 냈다. IT와 한옥뿐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0.1초 만에 답변이 날아들었다.
"(직원들이 보면 놀랄 텐데) 한옥이지요. 기업체 물려줘봐야, 3대나 갈까요. 한옥이라는 공간을 남기는 일은, 인간에게 '힐링'과 '행복'의 유산을 물려주는 길이거든요. 디지털은 기껏해야 코드나 남겠지만, 한옥은 공간과 터가 남지요. 그래서 호텔 이름에 '헤리티지'를 넣은 거지요."
'단호박'처럼 한옥을 찍었지만 기자는 안다. IT 1세대 기업을 키운 애정도 버무려져 있다는 걸. 디지털은 차갑다. 감성의 아날로그는 따스하다. 조정일의 한옥은 이 둘의 하이브리드다. 디지로그다. 온도로 치면 사람 체온 정도인 딱 36.5도 언저리다. 그래서일까. 그가 키운 IT기업에도, 강원도를 홀린 한옥호텔에서도,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난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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