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랑 애니 홀이여 안녕…부디 편히 잠드시길

오동진 2025. 10. 1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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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가장 지적인 여배우를 대표했던 다이앤 키튼이 타계했다.

다이앤 키튼은 매우 아름답고 이지적이며, 날씬하고 섹시한 미녀인 터라 그녀의 주변엔 늘 야수 캐릭터가 있었는데 할리우드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달래고 어르면서 같이 살아가야 할 야수였다.

<레즈>는 결국 '혁명과 예술'을 논한 작품으로 다이앤 키튼은 그렇게 과거 들끓었던 혁명의 시대를 1980년대 보수주의자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가 만들어 가야 할 예술의 시대로 잇게 했다.

따라서 다이앤 키튼의 죽음은 할리우드가 이루어 낸 지성의 시대가 벼랑 끝에 서 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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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영화 '애니 홀'로 오스카상
다이안 키튼. /AP, 연합

할리우드에서 가장 지적인 여배우를 대표했던 다이앤 키튼이 타계했다. 1946년생. 79세. 다소 이른 나이이다. 아직 ‘갈 때’가 아니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얼마 전 사망한 로버트 레드포드보다 열 살이 아래다. 그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갔지만 살아생전에도 서로를 밀고, 밀어주며 할리우드를 지적인 영역으로 만드는 데 있어 일등 공신이 되길 앞다퉜던 배우들이다.

다이앤 키튼은 우디 앨런의 얼터 에고였다는 평을 들었고 그가 분명 멘토인 건 맞지만(<애니 홀, 1977> <맨하탄, 1979>) 분위기는 꼭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중 한 명의 관계와 같았다. 대중들(이라기보다 뉴요커임을 앞세우는 영화광들)은 우디 앨런의 현란한 수다를 다이앤 키튼이 같이 들어 주면 자신들 역시 참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다이앤 키튼은 매우 아름답고 이지적이며, 날씬하고 섹시한 미녀인 터라 그녀의 주변엔 늘 야수 캐릭터가 있었는데 할리우드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달래고 어르면서 같이 살아가야 할 야수였다. 키튼과 할리우드는 ‘미녀와 야수’의 관계였다.

다이앤 키튼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 것은 코폴라의 <대부1>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비운의 여인이었는데 대학 때 만나 사랑했던 남자 마이클(알 파치노)이 조직의 보스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헤어지는 여인 케이 역을 맡았다. 케이는 이후 <대부2>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결코 마이클을 떠나지는 못한다. <대부3>에서는 암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당뇨 합병증으로 쓰러진 옛 애인 침대 머리맡에서 그를 간호한다. 현재의 남편에게는 이해를 구하고 그녀는 마이클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앤소니(프랭크 담브로시오)를 성악가로 만들기 위해 마이클과 함께 시칠리아를 함께 찾는다. 이 <대부> 시리즈(1973~1991)로 키튼은 여인과 엄마, 현명한 아내, 성녀(聖女)의 이미지를 마치 둑처럼 쌓았다. 사람들이 다이앤 키튼 같은 여자, 엄마를 원하도록 만들었다.

키튼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진보주의자임을 일찍부터 보여 준 배우였다. 할리우드 좌파 부르주아 감독 겸 배우를 대표하는 인물은 워렌 비티이다. 그는 1981년 키튼을 데리고 <레즈>를 찍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빨갱이들’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미국 최초 격 공산주의자 존 리드의 일생을 그린 영화이다. 존 리드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취재한 기자이기도 한데(이 취재기는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란 책으로 남겼다.) 영화 <레즈>는 혁명가 존 리드(워렌 비티)와 극작가 유진 오닐(잭 니콜슨) 사이에서 방황하며 안타까운 삼각 사랑을 이어 가는 루이즈 역, 곧 다이앤 키튼의 서사가 매우 중요했던 작품이다. <레즈>는 결국 ‘혁명과 예술’을 논한 작품으로 다이앤 키튼은 그렇게 과거 들끓었던 혁명의 시대를 1980년대 보수주의자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가 만들어 가야 할 예술의 시대로 잇게 했다. 대하드라마였고 위대한 배우들의 영화였다. 다이앤 키튼은 늘 그렇게 시대의 한 축을 맡아 왔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이지적 눈빛의 다이앤 키튼 역시 육체적 욕망에 관한 영화를 몇 편 찍었으며 그것들은 ‘당당한’ 수작임에도 여태껏 ‘저주받은 걸작’으로 취급하곤 한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로 유명한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1977년 작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에서 다이앤 키튼은 그녀답지 않게 수위 높은 연기를 선보였다. ‘미스터 굿바’의 의미는 ‘강한 남성 성기’를 의미는 속어이다. <왓 위민 원트>를 만든 낸시 마이어스의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로맨틱 코미디 소품이지만 키튼은 이 영화에서도 아름다운 베드신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실제로 나이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키아누 리브스와 러브신을 펼친다. 다이앤 키튼은 60대 여성이 충분히 섹시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여배우였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수작의 영화를 남겼다. 말년에 모건 프리먼과 함께 찍은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2016)은 그녀가 늙고는 있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우리 곁에, 편안한 노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했다. 약간 눈가가 처지긴 했지만 늘 두꺼운 안경 렌즈 너머의 차분한 눈빛으로 삶과 세상이란 것이 결국 이성적으로 해석되고 통제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던 여성이었다. 따라서 다이앤 키튼의 죽음은 할리우드가 이루어 낸 지성의 시대가 벼랑 끝에 서 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일 수 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것은 그 때문이다. 애니 홀이여 부디 안녕히.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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