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3.15묘지서 최초로 미술 전시 연 지역 작가들
국립3.15묘지 내 기념관서 창작품 전시
저마다 해석한 3.15의거 의미 담아내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국립 3.15민주묘지 내 3.15기념관은 3·15의거 발생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의거가 주는 교훈을 유품과 기록물 영상 자료 등을 통해 보여주는 민주주의 교육장이다.
지금 이 기념관에서 미술 작품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3.15의거 관련 자료와 기록들 사이사이에 작품들이 배치돼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의미 있는 장소에서 3.15의거 관련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지역 작가들의 의도와 국립묘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리려는 국립3.15민주묘지관리소의 적극적인 협업이 어우러진 독특한 시도다.


"다양한 세대 3.15묘지 찾길"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수환 작가는 "지역을 소재로 한 전시를 하자는 지역 작가들의 공감대가 있었고, 3.15의거를 미술 언어로 풀어내고자 했다"며 "3.15기념관 내 정보가 상세해서 작가들이 역사를 설명하거나 교훈을 줘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자유롭게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국립3.15민주묘지를 찾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겼다고 했다.

최 작가는 3.15의거의 역사적 사실과 작품 사이의 간극, 경계선을 조절하고자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했다. 그는 "무엇보다 국립3.15민주묘지관리소 측에서 전시 제안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기에 전시가 열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립3.15민주묘지관리소는 3.15의거를 다양한 세대에 널리 알리고자 이번 특별 전시를 지원하고 협력기관으로 참여했다. 공간을 내주는 것에 더해, 참여 작가들과 3.15의거 현장을 답사하고 마산 제일여자중학교 학생들과 작가들의 만남 자리도 마련했다.
이성철 국립3.15민주묘지 소장은 "국립묘지가 안장, 참배를 포함해 문화복합시설로 기능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2023년 6월 국립묘지 현충원에서 한복축제가 열리는 것을 보고 국립묘지도 시대 흐름에 맞게끔 시민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여겼다"며 "앞으로 미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시민 참여형 행사를 기획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저마다의 시선으로
정호 작가는 이번 전시에 가장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먼저 기념관 출입구 왼쪽을 막아 놓은 검은 벽은 정호 작가의 '빛의 총탄'이다. 건물 안쪽에서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벽에 난 구멍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3.15의거 당시 경찰이 쏜 총탄에 구멍이 난 무학초등학교 담벼락을 재현한 것인데 들어갈 때는 안 보이나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올 때 보이도록 설계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으로 보이는 조각 작품은 '어떤 청년'이다. 깎은 나무를 쌓아 올려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1960년 당시 학생들의 평균 신장인 160㎝로 높이를 맞췄다. 3.15의거 때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 옆으로 보이는 회화 작업 '쥐지도 펴지도 못하고'는 김 열사가 발견될 당시 손을 꽉 쥐고 있던 모습을 확대한 듯한 느낌이다.



이 외에도 최승철 작가는 작품 '밝고 부서지기 쉬운 말들'을 통해 3.15의거 당시 시민에게 전해졌을 충격을 의자 위에 떨어진 샹들리에와 파편들로 표현했다.
김성훈 작가는 투표함을 전시한 공간 벽면에 '잠긴 시간, 떠오른 이름'을 걸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추상적인 시각언어로 재해석한 것으로 캔버스 위 주름과 번지는 색채는 감춰진 진실이 드러남을 상징한다. 커튼이 걷히듯 기억의 틈새가 열리는 순간을 표현했다.
김나리 작가는 무학초등학교 담장을 재현한 전시물 아래에 돌들을 배치했다. 작품 '돌덩이'는 마산 앞바다로 향하는 길목, 도시 곳곳에서 주운 돌 위에 민주주의 의미를 되새길 글을 썼다. 돌은 의거 당시 시민들의 유일한 무기였을 것이다.
감성빈 작가는 '슬퍼하는 사람들' 조각 연작으로 전쟁과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들, 유가족의 슬픔을 형상화한 작업을 선보였다. 회화 작품인 '그날'은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 폭력으로 겪은 아픔을 보듬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노우에 리에 작가는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때 위기에 처했던 민주주의를 구한 국민의 신념을 떠올리며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천장에 걸려있는 '하얀 벽'은 수많은 시민이 쌓은 민주주의 힘과 연대를 상징한다.
이서후 작가는 중력을 버티며 사물의 형태를 유지하는 모서리의 개념을 사용했다. 작품 '모서리'는 3.15의거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모서리 같은 사건이었음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이성륙 작가는 기념관 중앙 로비에 벽을 설치하고 회화 작품 여러 점을 선보였다. 작품 '흐르는 사람'은 3.15의거 당시에 참여했던 다양한 나이, 직업을 가진 시민과 현재에도 불의에 저항하는 이들을 추상적 또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정희 작가의 '저스티스 이즈 인 빈'은 뱅크시의 '러브 인 더 빈'에 착안했다. 파쇄된 투표용지로 한 사람에게 주어졌던 투표권이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음을 표현해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을 함께 고민하게 했다.
고은 작가는 민주화 열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추모하는 공간에 '그 위에 서다' 참여형 미디어 작품을 설치했다. 키보드에 자기 이름을 쓰면 화면 속에 그림자 인물로 합류한다. 동시에 영수증 출력기에서 "공정 선거를 위한 또 하나의 마음"이라는 문구가 이름과 함께 나온다.









3.15의거 유가족회, 4.19혁명회 관계자들은 작가들이 하는 작품 설명을 꼼꼼하게 듣고, 질문하는 등 관람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시간이 멈춰있던 3.15기념관에 생기가 돋고, 문화·예술로 활성화되는 것에 환영했다.
오무선 3.15의거 희생자 유족회장은 "창작품을 보면 유족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듯, 그 시대에 살면서 직접 보고 표현한 것 같다"면서 "이 기념관에서 지역 젊은 작가들이 3.15의거를 주제 전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기쁘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김남영 4.19민주혁명회 경남지부장은 "3.15의거가 지역에서 시작해서 4.19혁명이 전국적으로 퍼졌기 때문에 3.15의거가 중요한 역사인데, 작가들이 3.15의거의 의미와 상징을 작품에 나타내줘서 흐뭇하다"라고 말했다.
주임환 3.15의거기념사업회 회장은 "역사적인 사실만 설치·전시하는 공간인데, 이곳에 문화와 예술을 담아 전시하면 시민과 관람객이 역사를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감동이 커질 것 같다"면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뜻이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