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의 첫 단추, '전구체'가 뭐길래

강민경 2025. 10. 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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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따라잡기]
양극재 원가 70% 차지하는 핵심 소재
배터리 성능·수명·가격 좌우…성장률 연 13%
새만금·광양·포항…K-전구체 내재화 시동

전기차를 움직이는 건 배터리입니다. 그 배터리의 심장은 '양극재'죠. 하지만 양극재의 성능을 결정짓는 근원적인 첫 단추는 바로 '전구체'입니다. 겉으로는 그저 회색 분말일 뿐이지만 이 가루 하나가 배터리의 수명·출력·충전 속도를 좌우합니다. "전구체가 곧 배터리의 성적표"라고 불리는 까닭입니다.

'배터리 반죽'서 국가 전략소재로

전구체는 양극재의 밑그림입니다. 금속 원료를 일정 비율로 섞어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는 단계죠. 이때 어떤 원소를 쓰느냐에 따라 배터리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대표적으로 삼원계(NCM·NCA)는 니켈(Ni)·코발트(Co)·망간(Mn) 또는 알루미늄(Al)을 조합해 만듭니다. 이 금속의 비율을 조정하면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이 달라지죠. 니켈이 많으면 주행거리가 길어지고, 코발트·망간을 늘리면 안전성이 올라갑니다.

이렇게 조율된 전구체에 리튬을 섞어 고온에서 굽는 과정을 '소성(燒成)'이라 합니다. 이때 전구체가 구조적으로 결합하면서 배터리의 실제 양극재가 탄생합니다. 쉽게 말해 전구체는 반죽, 양극재는 그 반죽을 구워낸 빵입니다.

반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 들어가는 전구체는 인산염과 철(Fe)을 기반으로 한 화합물입니다. 삼원계보다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열 안정성이 뛰어나죠. 보급형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주로 쓰입니다.

결국 전구체의 입자가 얼마나 균일하고, 금속 불순물이 얼마나 적은지가 양극재 품질을 좌우합니다. 조금이라도 편차가 생기면 충전 효율이 떨어지고 발열이 심해집니다. 그만큼 기술 장벽이 높은 영역입니다.

배터리 전체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것이 양극재입니다. 그런데 이 양극재를 만드는 데 드는 원가의 70%가 바로 전구체입니다. 즉, 전구체는 배터리 원가의 핵심 중의 핵심이자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소재라는 뜻입니다.

시장 성장 속도도 가파릅니다. 전기차와 반도체 수요 확대에 따라 글로벌 전구체 시장은 연평균 10~13% 성장할 전망입니다. 단순히 배터리 산업을 넘어 반도체·전자부품·촉매 등 다양한 산업의 기반 소재로 활용되면서 친환경·고효율 전구체 개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산 80%' 벽 무너지나 

이처럼 전구체는 기술 경쟁과 내재화 논의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값싼 수입 제품이 아닌 고순도·고수율의 '한국형 전구체'를 확보해야 배터리 산업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핵심 공정을 중국이 쥐고 있다는 점입니다. CNGR·GEM·브럼프(Brunp)·화유코발트 등 4대 전구체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합니다. 이들은 니켈·코발트 광산 확보부터 전구체·양극재 생산까지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구축했습니다.

값싼 전력, 정부 보조금, 광물 독점 덕에 중국산 전구체 가격은 한국보다 15~20% 저렴합니다. 한국의 전구체 자급률은 13% 수준에 그치죠. 결국 K-배터리가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췄다 해도 가장 앞단의 원료는 여전히 외부에 의존해온 셈입니다.

최근 이 흐름을 뒤흔든 건 미국입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대규모 감세법(OBBBA)이 시행되면서 중국산 배터리 소재에 대한 규제가 한층 강화됐습니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중국 등 우려국(FeoC)' 원산지를 배제해야 하고, 유럽연합(EU)도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해 유사한 조항을 적용했습니다.

이제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보다 '어디서 만들었느냐'가 중요해진겁니다. 배터리 소재의 원산지·추적성이 새 경쟁 기준이 된 셈이죠.

1조원 투자·12만톤 생산…K-전구체 혁명

이런 흐름 속에서 LS그룹과 엘앤에프의 합작사, LS-엘앤에프 배터리솔루션(LLBS)이 지난 2일 전북 군산 새만금 산업단지에 연 12만톤 규모 전구체 공장을 완공했습니다. 투자액만 1조원, 전기차 130만대 분량의 양극재를 만들 수 있는 규모입니다.

LS의 비철금속 제련사 LS MnM이 황산니켈을 공급하고, LLBS가 이를 전구체로 만든 뒤 엘앤에프로 넘기면, 엘앤에프는 이 전구체로 하이니켈 양극재를 생산해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에 납품합니다. '황산니켈→전구체→양극재'로 이어지는 국산 순환 밸류체인이 완성되는 셈입니다.

LLBS는 올해 시험 생산을 거쳐 △2026년 2만톤 △2027년 4만톤 △2029년 12만톤 등 양산체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LS MnM은 울산·새만금에 연 6만톤 규모의 황산니켈 생산 설비를 완공해 자체 공급 생태계를 완성할 예정입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새만금에 위치한 LS-엘앤에프 배터리솔루션 공장 준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사진=LS그룹 제공

국내 다른 기업들도 속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포스코퓨처엠은 전남 광양에 연산 4만5000톤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준공해 국산 전구체를 활용한 양극재를 이미 초도 출하했습니다. 또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충북 청주와 포항을 거점으로 리사이클링된 니켈·코발트를 재활용하는 '클로즈드 루프(Closed Loop)' 공정을 확대 중입니다.

전구체는 단순 분말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광물 확보, 공정 기술, 산업 안보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중국이 장악한 소재 체인을 벗어나려면 기술·비용·정책의 세 축이 동시에 돌아야 하죠.

배터리 산업의 1라운드가 '양극재 기술 경쟁'이었다면, 2라운드는 '공급망 독립'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전구체입니다. 새만금에서 점화된 K-전구체 불씨가 한국 배터리 산업의 독립선언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테크따라잡기]는 한 주간 산업계 뉴스 속에 숨어 있는 기술을 쉽게 풀어드리는 비즈워치 산업팀의 주말 뉴스 코너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빠르게 잡아 드리겠습니다. [편집자]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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