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이고 숨어 지내는 악랄한 흉악범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2025. 10. 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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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안 남기고 도주…행적도 전혀 파악 안 돼
세월 흐르면서 모습까지 변해 자칫 완전범죄로 덮일 수도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김영세, 박종윤, 성치영, 이준세, 최용배, 홍덕표, 황주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10년 넘게 도주 중인 살인 피의자들이다. 이들은 사람을 죽인 후 영화처럼 사라졌다. 얼굴과 인적 사항이 공개됐는데도 꼬리가 잡히지 않고 있다. 경찰청의 중요지명피의자 종합공개수배 명단에도 단골로 등장하지만 여전히 경찰을 비웃고 있다. 이들은 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Recraft 생성이미지

경찰 수사망 좁혀오자 잠적, 지금껏 은신중

특별한 직업이 없었던 김영세(당시 49세)는 뱃일을 떠났다가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1998년 7월19일 오후 김씨는 아들 용민군(12세)이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인근 백화점으로 향한다. 용민군은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데도 부자는 2km를 걸어 백화점에 도착했다. 김영세는 아들을 지하 1층 식품매장으로 데려가 음료수 코너에서 딸기맛 요구르트 3개를 사서 스낵 코너로 향한다.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아들에게 요구르트와 함께 먹도록 했다.

얼마 후 아들은 이상 증세를 보이며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5시간 후인 7월22일 오전 1시쯤 사망한다. 독이 든 것은 아이가 마신 요구르트 한 개뿐이었고, 그 요구르트 팩 어디에서도 바늘 자국 등 독극물이 주입된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해당 요구르트를 건넨 김영세를 강하게 의심했다. 김씨의 행적도 수상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중 "용민이가 여섯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김씨가 보험금을 수령한 뒤, 용민이의 다리를 고쳐주지 않고 그 돈을 도박판에서 전부 탕진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들이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데도 병원을 나오면서 "웃음을 보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영세는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넣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경찰이 다시 조사하기 위해 장례식이 끝나면 경찰서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으나 아들의 발인도 보지 않은 채 잠적했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하루를 앞둔 2013년 7월17일 김영세에게 살인 등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언제든지 잡으면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9월말 강원도 영월군 38번 국도변에서는 제초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때 무성한 풀숲 사이로 하얀 물체가 드러났다. 자세히 보니 두 구의 백골 시신이었다. 신원조회 결과 2년 전 서울에서 실종된 김아무개씨(남·49)와 오아무개씨(남·52)였다. 경찰은 2007년 12월11일 이후 백골이 발견된 지점 인근의 휴대전화 기지국 기록을 조회했다. 그 결과 그해 12월14일 시신이 묻힌 지점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서 두 명의 남성이 통화한 기록이 나왔다. 의료기기 판매원인 남궁아무개씨(당시 34세)와 무직인 박종윤(당시 49세)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유력한 피의자로 보고, 먼저 남궁씨의 주거지에서 그를 검거했다. 남궁씨는 "카드 도박으로 돈을 잃은 뒤 빚 독촉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질렀다"며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범행 당시 남궁씨는 2000여만원의 빚이 있었고, 박씨의 빚은 4억6000여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자 현금이 많다고 소문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범행에 나섰던 것이다. 

남궁씨와 박씨는 피해자들을 살해한 후 영월읍 국도변에 이불에 싸서 암매장하고, 서로 연락을 끊고 지냈다. 경찰은 행방이 묘연한 박씨를 공개수배하고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행적이 전무했다. 

2009년 4월20일 전북 정읍에서 사채업을 하던 이아무개씨(남·37)가 실종된다. 이씨는 친형이 운영하는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면서 화물차 기사들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주는 '쩐주' 역할을 했었다. 다음 날 오전 이씨의 친형이 사무실에 출근해 보니 바닥과 화장실 등에서 다량의 핏자국이 발견됐고, 동생과 연락이 두절되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다. 정황상 이씨는 사무실에서 살해된 후 시신은 다른 곳에 유기된 것으로 보였다.

며칠 후 이씨의 승용차는 번호판이 바뀐 채 정읍의 한 병원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지문감식 결과 이삿짐센터에서 화물차 기사로 일하던 성치영(당시 39세)의 지문이 검출됐다. 경찰은 성씨를 유력 피의자로 지목하고 그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성씨의 사건 당일 알리바이도 엇갈렸다. 평소 도박에 빠져있던 성씨는 빚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고, 법원에서 파산선고도 받았다.

그의 아내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밤 성씨는 머리카락과 바지가 흠뻑 젖어있었고, 옷은 온통 흙투성이인 채 엉망인 몰골로 귀가했다. 손등에는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성씨가 이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심리적으로 쫓기던 성씨는 현금을 챙긴 후 도주한다.

성씨가 잠적한 지 5년 후인 2014년 7월 이삿짐센터 사무실에서 약 3km 떨어진 공사장 폐정화조에서 백골화된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다. 몸에는 10여 군데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성씨의 소재 파악에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2006년 5월8일 범행 추정시간에 사건 현장인 아파트로 들어오는 홍덕표의 모습과 그의 얼굴 사진 ⓒ경찰청 제공

살인 후 "안 잡힐 자신이 있다" 말 남기고 도주

2010년 1월30일 오후 대구 달서구 성당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아무개씨(여·42)의 시신이 발견된다. 이씨의 아들(13)이 피투성이로 숨져있는 엄마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CCTV 등을 통해 이씨의 남편 이준세(당시 49세)를 살인 피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나섰다. 

이준세는 별거 중인 아내 이씨가 잘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방에 있던 가위로 온몸을 마구 찔러 살해한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이후 곧바로 잠적한 이준세는 자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2004년 6월25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의 한 마을에서 40대 주부가 피살된다. 머리에는 둔기에 맞은 상처가 있었고, 주변에서는 다량의 혈흔이 검출됐다. 경찰은 피해자가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고 용의자를 찾아나섰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을 조사하다 수상한 인물을 파악한다. 유일하게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된 마을 주민 최용배(당시 45세)였다. 최씨는 평소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는 등 피해자와도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두 사람이 돈거래를 한 정황이 포착됐다. 최씨가 피해자에게 연대보증을 섰는데 그 후 은행으로부터 변제 독촉을 받으면서 갈등이 있었다. 경찰은 최씨가 이에 앙심을 품고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그의 행방은 지금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2006년 5월8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의 한 아파트 13층에서 주부 최아무개씨(여·38)가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당시 최씨는 온몸이 흉기에 찔린 상태에서 목에는 목욕용 타월이 감겨있었다. 경찰은 최씨 집에 보관 중이던 금품이나 지갑 속 현금, 신용카드가 그대로 있는 데다 안방 바닥에 마시던 커피가 흘려져 있는 점 등으로 미뤄 강도범이 아닌 면식범 소행을 의심했다. 

최씨가 평소와 다름없이 남편을 출근시킨 뒤 집 안에서 누군가와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웃 주민들의 증언도 확보했다. 경찰이 아파트에 설치된 CCTV를 분석했더니 범행 추정 시간에 아파트로 들어오는 수상한 남성이 있었다. 그가 입은 옷은 범행 현장에 있던 피묻은 점퍼와 동일했다. 경찰은 옷에 묻은 DNA 검사를 통해 홍덕표(당시 47세)를 유력한 살인 피의자로 특정했다. 

그는 최씨가 이 아파트에 이사올 때 이삿짐을 옮겨준 일용직 노동자였다. 홍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카지노를 드나들며 거액의 빚을 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홍씨를 공개수배하며 검거에 나섰지만 생사는 물론 소재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 

2008년 8월17일 오후 8시19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 앞 도로에서 김아무개씨(여·34)가 살해된다. 김씨를 죽인 것은 전남편인 황주연(당시 34세)이었다.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둘러 이혼한 황씨는 이후 김씨를 미행하는 등 병적으로 집착했다.

범행 당일 황씨는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김씨를 불러냈다. 그가 남자친구(당시 33세)와 함께 나오자 흉기를 휘둘러 김씨를 사망케 하고 남성에겐 중상을 입혔다. 범행 이후 황씨는 흉기를 현장에 버리고 어린 딸을 차에 남겨둔 채 도주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황씨를 유력한 피의자로 특정하고 공개수배했다. 하지만 황씨는 "나는 안 잡힐 자신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도주한 후 지금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 

살인을 저지르고 장기 도주 중인 피의자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영세, 최용배, 황주연, 성치영, 박종윤, 이준세) ⓒ경찰청 제공

오히려 도심 한가운데서 숨어 지낼 수도

범죄 전문가들은 장기 도주 중인 살인 피의자들이 국내 은신처에서 신분을 숨긴 채 숨어 지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형수술을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거나, 머리를 기르거나 가발을 쓰고, 안경을 쓰거나 벗는 등 최대한 자신의 원래 모습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산골이나 외진 곳에 은신해 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도심에서 숨어 지낼 수도 있다. 2003년 충북 제천에서 독신 여성을 토막 살해한 신명호는 이후 15년간 도주 행각을 벌였다. 이런 그가 2018년 6월22일 강원도 속초의 한 원룸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가 머물던 원룸 안에서는 약봉지가 나왔고, 경찰은 신씨가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외딴 은신처에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도심 한가운데에서 버젓이 숨어 지냈던 것이다.

살인 피의자들이 탈주범 신창원처럼 불특정 여성과 동거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력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들의 도피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범행 당시 모습과 실제 모습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를수록 검거 확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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