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이 촉각의 환상을 부르다 [김용우의 미술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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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이젠 지나가는 모양이다.
조금씩 가을 느낌이 난다.
초가을 아침 베르트 모리조(1841~1895년)의 작품 '여름날'을 보고 있다.
가을 초입에 만나는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 '여름날'은 그녀의 개성적인 표현 역량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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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의 미술思 30편
베르트 모리조 여름날
성글고 강한 붓질 활용해
가족 사랑 생생하게 표현
![베르트 모리조, 여름날, 1879, 캔버스에 유화, 45.7×75.2㎝, 내셔널 갤러리, 런던. [그림 | 위키미디어]](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2/thescoop1/20251012120927949otwo.jpg)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이젠 지나가는 모양이다. 조금씩 가을 느낌이 난다. 초가을 아침 베르트 모리조(1841~1895년)의 작품 '여름날'을 보고 있다. 한가한 호수에 뱃놀이하는 여성들이 있다. 바람에 살랑이는 은파銀波는 물장구치는 오리 두어 마리와 더불어 시원함을 전한다. 시각적 청량감은 어떻게 바람을 일으키는 걸까.
오늘 아침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에서는 시각이 촉각의 환상을 부른다. 그는 인상주의 여성 화가다. 1874년 심사위원도 낙선자도 없었던 첫번째 인상파 전시회 후 줄곧 인상파그룹의 모든 전시회에 참여했다. 프랑스의 관전官展인 살롱전엔 스물세살에 입선했고, 8번의 수상 실적을 갖고 있다. 1895년 54세의 나이에 딸 줄리 마네(Julie Manet)를 간호하다 얻은 폐렴으로 사망하기까지 작품도 800점이나 남겼을 만큼 중요한 화가다.
여성 화가가 주목받기 힘든 시기에 끝없이 노력하고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긴 베르트 모리조. 그녀의 작품엔 항상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다. 에두아르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 등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경각심을 이야기했다면, 베르트 모리조는 성글고 강한 붓질로 생생한 가족의 사랑을 표현했다.
그녀의 대표작 '요람'은 친정 언니와 조카를 그려 모성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화가의 어머니와 자매'는 가족을 주제로 일상의 소중함을 여성의 시각으로 표현했다.
가을 초입에 만나는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 '여름날'은 그녀의 개성적인 표현 역량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단숨에 그려낸 듯한 힘차고 자유분방한 붓 터치는 에두아르 마네의 붓 터치를 닮았고, 밝은 색상은 클로드 모네와 르누아르를 보는 듯하다. 순간의 모습을 느낌으로 담아내는 그림, 전형적인 인상주의 화풍이다.
그녀는 1874년 33살에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와 결혼해 마네의 제수씨가 된다.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마네는 모리조의 초상화를 10점 넘게 그렸다. 모리조의 작품에도 에두아르 마네가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서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가족이 됐을 듯하다.
그녀의 활기찬 붓 터치는 여성스러움을 힘찬 아름다움으로 표현한다. 그것이 베르트 모리조 그림의 매력이다. 마지막 가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시원한 붓 터치의 아름다움을 한점 더 보자.
![베르트 모리조 독서. [그림 | 위키미디어]](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2/thescoop1/20251012120929302oatm.jpg)
베르트 모리조의 두번째 그림 '독서'는 오늘 아침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갑자기 엔도르핀이 분수처럼 솟아나는 기분이랄까. 이것이 쿨하다는 기분이구나 싶다. 싱그러운 열대식물의 큰 잎사귀가 시원하게 드리워진 창가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한 숙녀, 모리조의 딸 줄리 마네를 보고 있다. 그녀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른다. 오래 보고 있으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한다. 이렇게 아름답게 시원할 수가 있을까.
그림은 모리조의 힘찬 아름다운 터치로 청량감을 더한다. 거친 듯 힘차게 그려나간 그림은 방금 붓을 내려놓은 듯 소나무 테레빈유 냄새가 나고, 꾸미지 않아도 풍겨 나오는 지적知的 향기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다.
매끈하게 처리되지 않은 붓 자국과 거칠게 끊어친 터치에서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무심한 듯 듬성듬성 그어놓은 흰색은 그림에 싱그러운 젊음을 덧칠해 넣었다. 시원한 유리창 너머에 있는 바깥 풍경의 정서와 따뜻한 실내의 지적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초가을의 그림 '독서'를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가을의 초입에 만나는 행복이다.
편안한 안락감을 주는 그림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으로 행복한 가을을 맞는다. 오늘 아침엔 커피보다 따뜻한 녹차의 은은한 향이 좋겠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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