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대신 '질주'… 여행 新트렌드 '런 트립'이 뜬다
마라톤 대회 늘어도 티케팅 경쟁 치열
해외 마라톤 여행사·상품도 '우후죽순'
"마라톤은 축제… 특유의 맛이 있죠"

지방에 놀러 갈 때는 항상 러닝화를 챙겨 가요. 맨날 뛰는 곳만 뛰는 것보다, 새로운 길에서 뛰면 기분이 좋아요. 여행지에서 뛸 때 느껴지는 특유의 맛이 있거든요."
4년 차 러너 오태현(가명)씨
여행지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런트립(Run Trip)'이 인기를 끌고 있다. '러닝 인구 1,000만 시대', 어느 때보다 높은 인기를 보이는 달리기는 여행지에서도 이어진다. 조깅 장소는 단지 해변이나 공원에 그치지 않는다. 좋은 러닝 코스를 찾기 위해 전국 팔도를 누비는 것은 물론, 해외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삼는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여행지에서도 달리는 문화가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달리기, '대세 스포츠'로

달리기는 입문자 혼자서도, 맨몸으로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다. 최근 달리기 열풍은 2021, 2022년 코로나19가 큰 계기였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집합금지 조치로 대부분 스포츠시설이 폐쇄됐지만, 달리기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었다.
4년 차 러너 오태현(가명)씨도 코로나19 때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경우다. 오씨는 "사회인 야구를 10년 정도 했는데 더 이상 모일 수가 없게 돼, 친형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노력한 만큼 성과로 이어지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달리기는 실력이 느는 게 체감되니까 쉽게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조깅·달리기 경험률은 2021년 23%에서 2022년 27%, 2023년 32%로 증가세를 보였다. 등산(2023년 44%)을 제외한 모든 운동 종목 가운데 가장 높은 경험률이다. 스포츠 업계에서는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30 중심의 새로운 달리기 열풍

2000년대 초반에도 '달리기 열풍'이 있었다. 마라토너 황영조·이봉주의 연이은 세계 제패와 '웰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전국적인 '달리기 열풍'으로 이어졌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2002년 마라톤 동호회는 500개, 동호인은 100만 명에 육박했다. 일산, 분당, 평촌 등 수도권 신도시를 중심으로 조깅과 아마추어 마라톤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최근 달리기 열풍은 20여 년 전 그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당시엔 건강에 관심이 많은 30·40대가 주요 연령층이었던 반면, 지금은 20·3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 마라톤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2, 3년 전만 하더라도 신청자 연령이 꽤 높아서 1970년대생이 막내 취급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80·90년대생들이 주류를 이루고 2000년대생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상이 오고 나서 달리기를 한두 달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깐 '내가 엘리트 선수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록에 욕심이 많은 건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거든요. 그리고 런트립을 시작하게 됐죠."
2024년 11월 발간된 논문 '재미있고 즐거워야 달릴 수 있다: 런트립에 대한 근거이론적 접근'에 인용된 러닝 13년 차 A씨 인터뷰. 논문은 기록 경쟁보다 건강이나 경험의 가치를 높게 두는 러너들의 경향성이 런트립 인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주도하는 세대가 바뀌면서, 달리기 문화의 무게중심도 '기록'보다는 '경험'으로 옮겨지고 있다. 부상을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을 경쟁에 내던지기보다 달리기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러닝 크루'를 결성하기도 하고, 달리기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나 코스, 기록도 적극적으로 뽐낸다.
강성진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2000년대 초반 달리기 열풍 때는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고 서로 경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건강한 여가활동으로서 러닝을 즐기고자 하는 흐름이 있다"고 짚었다. "도전, 경험, 재미라는 경향성이 더해지면서 달리기뿐만 아니라, 관광까지 즐기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강 교수의 분석이다.
마라톤 참가하며 전국 순회… 런트립 인기

경험과 재미에 초점을 둔 러닝은 여행지에서도 달리는 '런트립' 로 이어지고 있다. 지방 도시를 찾아 그곳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하프, 10㎞, 5㎞ 등)에 출전하며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2박 3일 관광도 함께 즐기는 식이다.
마라톤 포털사이트 '마라톤 온라인'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개최됐거나 개최될 예정인 마라톤 대회는 무려 470개에 달한다. 지난해(394개)보다 19%, 2023년(354개)보다는 33%나 증가한 수치다. 티켓팅 경쟁도 치열하다. 인기가 많은 마라톤 대회의 경우, 몇 분 만에 접수가 끝나기도 한다. 지난 1일 참가자를 모집한 '양산전국하프마라톤 대회'는 총 8,000명(하프 3,000명, 10㎞ 3,500명, 5㎞ 1,500명)의 참가자 접수가 4~5시간 만에 마감된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휴가를 내고 해외 마라톤에 참가하는 이들도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여행 애플리케이션(앱) '스카이스캐너'가 올해 3월 21~28일 한국인 러너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는 '러닝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들 중 22%는 '해외로 런트립을 떠날 의향이 있다'고도 했다. 강성진 교수는 "과거에는 관광지를 위주로 도는 여행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의 여행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여행지에서도 찾아 즐기려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2, 3곳에 불과했던 마라톤 전문 여행사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또 하나투어 등 대형 여행사들 역시 해외 주요 마라톤 참가와 여행을 결합한 런트립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2005년부터 마라톤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에스앤비투어의 관계자는 "예전과 비교해 20~30% 가까이 수요가 늘었다"며 "과거에는 빨라야 8~10개월 전에 문의했는데, 지금은 올해 대회가 끝나기 전에도 내년 대회를 문의하거나 대기명단에 넣어 달라는 신청자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집 근처 동네에서도 할 수 있는 달리기를 굳이 해외까지 가서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최연소로 6대 마라톤을 완주한 '러닝전도사' 안정은 작가는 런트립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마라톤은 마을의 축제"라고 운을 뗐다. 이어 "2017년 캐나다 마라톤에 참가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응원을 하고, 꼬마들이 젤리와 망고 사탕을 건네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런트립은 낯선 곳을 여행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안 작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러너들에게 달리기는 숙제가 아니고 일상입니다. 여행지에 가서도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 된 거죠.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방 도시나 해외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주요 관광지를 찾아 명소나 맛집을 탐방하는 것처럼, 런트립도 여행 문화의 하나로 녹아들고 있다는 얘기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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