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숏폼 드라마의 충격: 10조원 시장의 명암

김태현 기자 2025. 10. 12.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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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당 1~2분짜리 영상 하나가 8일 만에 193억원을 벌어들이는 동안, 촬영장에서는 하루 20시간 근무가 일상이 됐다. 중국에서 시작돼 이제 영화 시장을 추월한 10조원 규모의 숏폼 드라마 제국, 그 눈부신 성공 뒤편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우먼센스] "최근 소셜미디어 광고에서 우연히 접한 중국 숏폼 드라마에 완전히 빠졌다. 멈출 수가 없더라. 놀라운 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30대 후반 주부 여 아무개 씨의 말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다 자극적인 숏폼 드라마에 멈춰 선 경험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편당 1~2분 남짓한 숏폼 드라마가 이제 연간 10조원 규모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하며 전세계 콘텐츠 산업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영화를 추월한 10조원의 충격

2024년 중국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는 504억 위안(약 10조 원)으로 추산돼 중국 영화 시장(470억 위안)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더 놀라운 것은 성장 속도다. 2023년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68% 성장했다. 2년 만에 4배 가까이 폭발한 것이다. 중국 미디어 분석기관 아이미디어리서치는 2027년에는 이 시장이 1000억 위안(약 19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편수로 보면 더욱 압도적이다. 2024년 1월부터 8월까지 중국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방영된 숏폼 드라마는 2만 2600편이라는 조사도 나온다. 같은 기간 극장 영화 516편, TV 시리즈 876편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르다.

6월 기준 중국 내 숏폼 드라마 이용자는 5억 7600만 명으로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52.4%를 차지한다. 중국인 절반 이상이 숏폼 드라마를 보고 있는 셈이다. 매일 약 6.2억 명의 사용자가 숏폼 드라마를 소비하며, 히트작의 누적 조회수는 500억 회를 넘어선다.

흥미로운 것은 사용자 구성이다. 숏폼 드라마 앱 사용자 중 52.5%가 40세 이상이다. 중국 국영 방송사 CCTV에 따르면 "특히 중장년 여성층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전체 시청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틱톡 모기업 바이트댄스의 무료 숏폼 앱 '홍궈쇼트플레이'는 출시 2년도 안 돼 월간 사용자 1억 2200만 명을 넘어섰다.

산업이 커지면서 인기 작가들의 몸값은 치솟았다. 처음 회당 100위안(약 1만 9000원) 정도로 시작한 몸값이 1~2분짜리 회당 10만 위안(약 1900만 원)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8일 만에 193억원 수익의 비밀

"따귀부터 때리고 시작한다"

지난해 최고 화제작 중 하나였던 <무쌍>은 공개 8일 만에 1억 위안(약 193억 원) 수익을 냈다. 17회부터 회당 약 300원 유료 결제로 전환한 후 총 94회까지 끌어갔다.

제작사들이 숏폼에 뛰어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투입 대비 회수가 빠르기 때문이다. 기획부터 공개까지 걸리는 시간은 3~4개월에 불과하다. 50편 시리즈 제작비는 5000 만원 수준까지 낮아진 경우도 있다. 세로 화면 특성상 출연진을 줄일 수 있고, 간결한 구도와 최소한의 액션 장면으로 인력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회당 광고로 시청하는 인원과 돈을 내고 보는 시청자를 합해 몇 만, 혹은 몇 십만 조회수 정도면 제작비가 회수된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경제성이 전세계 숏폼 드라마 사용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촬영장에서는 하루 10회분씩 촬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주일이면 80회 안팎 분량의 드라마 한 작품 촬영을 끝낸다. 편집까지 해도 한 달이면 제작 전 과정이 마무리된다. 기존 드라마가 평균 6개월, 100억 원 이상 드는 것과 대조적으로, 숏폼 드라마는 100부작 기준으로 2주 촬영에 2억 원에서 3억 원 수준이다.

숏폼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이정섭 전 KBS PD는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숏폼 드라마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전 PD는 "보통 드라마는 설정을 하고 빌드업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숏폼 드라마는 일단 따귀부터 때리고 시작한다"고 말했다. 1~2분짜리 에피소드는 초반 수십 초 안에 시청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바로 실패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설정은 극도로 자극적이다. 여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남자가 사실은 변장한 부자라든지, 입양한 딸이 공교롭게도 오래전 잃어버린 친딸이라는 식이다. 대표적 숏폼 드라마 플랫폼 릴숏의 <금지된 사랑>, <재벌 상속녀와 이혼하지 마세요> 같은 타이틀이 이를 보여준다. 한 중국 숏폼 플랫폼 대표는 공공연하게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목적은 오직 팔기 위해서다. 팔리지 않는 이야기는 쓰레기'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상품성이 절대적 기준임을 인정한 셈이다. 

전세계로 확산되는 숏폼 제국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2024년 7월 말 기준 숏폼 드라마 앱의 전세계 누적 매출이 7억 달러(약 1조 25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올해 1분기에만 전세계 인앱 수익이 7억 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동기보다 4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2022년 8월 출시된 릴숏은 출시 이후 다운로드 5500만 건, 매출 1억 7000만 달러를 돌파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미국에서 틱톡을 제치고 다운로드 횟수 1위를 기록했다. 후발주자 숏맥스는 2023년 9월 출시 후 현재 240개국에 진출했으며, 미국 4위, 일본 2위, 동남아 1위라는 순위로 월간 활성 사용자 970만 명을 확보했다.

한국도 주요 타깃이다. 드라마박스는 지난 9월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을 미국에 이은 두 번째 콘텐츠 생산 기지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왕과 나>, <하이에나>를 연출한 이창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이상엽과 전사라가 주연을 맡은 <폭풍같은 결혼생활>을 제작했다.  <폭풍같은 결혼생활>은 공개 5일 만에 한국, 미국, 일본에서 동시에 천만 조회수를 돌파하며 3개국 동시 1위를 기록했다.

'폭풍같은 결혼생활'. 사진=드라마박스

한국 시장도 움직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볼 때 가장 선호하는 유형이 숏폼(41.8%)으로 OTT(39.4%)와 실시간 스트리밍(26.2%)보다 많았다. 지난해 폭스미디어가 국내 최초 플랫폼 <탑릴스>를 출시한 이후, 스푼랩스의 비글루, 왓챠의 숏차 등이 연이어 등장했다. 크래프톤은 비글루에 1200억원을 투자했다.

숏폼 제국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중독성 논란, 과도한 수익화 전략, 열악한 노동 환경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특히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중독 현상과 극단적인 제작 환경은 이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처음엔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보고 궁금해서 한 편만 보려고 했는데, 한 편이 1분 30초밖에 안 되다 보니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해지더라" 회사원 김 아무개 씨의 말이다. 하지만 곧 불만을 토로했다. "한 편이 너무 짧다. 겨우 2분도 안 되는 영상인데 광고는 1분 가까이 봐야 한다. 무료라고 해놓고 10편 정도 보면 결제하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정 아무개 씨는 방학 동안 숏폼 드라마, 유튜브 숏츠 등에 빠져 생활 패턴이 완전히 무너졌다. 밤 12시에 침대에 누워도 새벽 4~5시까지 숏폼 콘텐츠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최근 숏폼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져 병원까지 찾는 1020대가 늘고 있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숏폼에 중독되면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운동기능 저하 등 각종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하게는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고 경고한다.

규제의 칼날과 불확실한 미래

전문가들은 숏폼 중독이 마약 중독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고 경고한다. 짧은 시간에 강렬한 자극을 제공하는 콘텐츠가 뇌에 도파민을 분비시켜 기분을 좋게 만들고, 빠르게 새로운 자극을 제공함으로써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제작 현장이다. 지난해 9월 중국에서 28세 숏폼 드라마 감독이 장기간 연속 밤샘 작업으로 인한 과로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중국 당국은 공식 입장을 통해 해당 사건의 존재를 부인하며 가짜뉴스로 규정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얼마나 혹독한 환경이면 이런 얘기가 설득력 있게 퍼지겠는가?'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가성비', '제작비 인하'를 위해 숏폼 영화촬영기지에서는 일 20시간 근무가 보편화됐다고 한다. 촬영 스태프가 과로 쓰러지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숏폼 시장의 문제는 제작 현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콘텐츠의 질 저하와 표절 문제도 심각하다. 2024년 11월, 중국 국가광전총국은 '숏폼 드라마 관리 지침'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규제에 나섰다. 지나친 막장, 재벌 얘기, 고부갈등을 빼라는 압박이다. 중국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지고 논리에 맞지 않는 설정을 경쟁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며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표절 문제도 심각하다. 인기작이 나오면 유사한 서사와 캐릭터가 무분별하게 양산된다. 한 사용자는 "안 봐도 결말이 나온다. 이미 중국 숏폼 드라마에서 다 뽑아먹은 스토리 한글판으로 바꾼 거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카카오벤처스는 글로벌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를 13조 원으로 추산했다. 그중 한국은 6500억 원 수준이다. 숏폼 드라마는 이제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중독성 논란, 과도한 수익화 전략, 열악한 노동 환경, 저질 콘텐츠 양산이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짧지만 강렬한 이 새로운 콘텐츠 형식이 전세계 미디어 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지만, 그 이면의 그림자도 함께 커지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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