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 군사훈련’ 중단? 국방 근간 흔드는 자해 행위 [쓴소리 곧은 소리]
정동영 장관의 “훈련 중단”은 감언이설…훈련은 적이 사라졌을 때만 중단돼야
(시사저널=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특임교수)
영국의 몽고메리, 독일의 롬멜과 함께 '기갑전의 3대 명장'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패튼 장군은 평생 자신을 한니발(카르타고 시대의 장군)의 환생이라 확신했다. 또한 군신(軍神)인 '마르스'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준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는 '마르스'의 보호에 안주하지 않았다. 일례로, 1947년 자신의 회고록 《내가 알고 있는 전쟁》에서 패튼은 훈련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훈련 중 땀 한 방울, 전투 때 피 한 갤런"
"훈련에서의 땀 한 방울이 전장에서의 피 한 갤런을 아낀다(A pint of sweat will save a gallon of blood)."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국가의 생존이다. 군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적(敵)'이다. "적이 없는 군대"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냉전이 끝날 무렵,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를 앞세운 고르바초프의 더블 펀치에 이어, 그의 외교 자문 아르바토프는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서방국들에 충격을 주었다. "이제 우리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 한다. 당신들로부터 '적(enemy)'이라는 단어를 빼앗을 것이다."
아르바토프의 예언은 미국의 재앙으로 나타났다. 수십 년에 걸쳐 소련은 미국이 봉쇄·격파·붕괴의 대상으로 삼던 '주적'이었다. 냉전 시기에 미국 군대는 소련이라는 명확한 적을 중심으로 조직, 예산, 교리, 전력 구조를 설계해 왔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이러한 전제가 사라졌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더 이상 "누구를 억제"해야 하는지, "어떤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당시 합참의장이던 콜린 파월은 "우리의 적들이 사라지고 있다(We are running out of enemy)"는 말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자 미군은 전대미문의 혼란에 빠졌다. 주적 개념의 상실은 존재론적 위기를 초래했다.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2001년의 9·11 테러는 미군에 '위기로 가장된 축복'이었다. 군대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없는 적이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상 명령이다. 실제로 미 국방부는 '불량국가(rogue states)'라는 개념을 만들어 이라크·이란·북한을 새로운 적으로 설정하고, 9·11 테러를 계기로 '글로벌 테러전쟁(Global War on Terror)'으로 전쟁을 확장했다.
군대는 "적의 실체"에 맞서기 전에, "적의 개념"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누구와 싸우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지난 20년 이상 '대테러 전쟁'에 정신이 팔린 미국은 '강대국 전쟁'을 잊어버렸다. 미국이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IS), 탈레반 같은 상대들과 대반란전(COIN)을 치르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조용히 힘을 키웠다. 이들에게 '대테러 전쟁'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뒤엎을 수 있는 세기적(100년 만의) 기회가 되었다. 그 결과로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중국을 '사실상의 주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고는 이제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 간판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바꿨다. 미국이 수세적으로 '방어(defense)'만 하던 시대를 끝낸 것이다.
지난달 말에는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위치한 해병대 기지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800여 명의 장성·제독을 집합시켜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일장 훈시를 늘어놓았다. 핵심은 훈련의 중요성을 지상 과제로 삼으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훈련과 정비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다음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훈련 부족으로 인해 단 1명의 전사라도 잃는다면 그건 지휘관의 책임"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접경지역의 군사훈련 중단"을 언급해 논란을 불렀다. 놀라운 일이다. 소위 시민단체라는 곳에서도 "실사격 훈련과 연합군사연습 중단으로 평화의 길을 열자"고 주장했다. 이들에 의하면 '훈련 중단이 평화 정착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가장 심각하게 뒤흔드는 장본인은 북한의 김정은이다. 그는 추석 연휴 기간인 10월4일 평온을 누리고 있는 우리 국민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안보 환경이 어느 방향으로 접근해 가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한국 영토가 결코 안전한 곳으로 될 수 있겠는가…스스로 판단해 보라."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김정은은 평양의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5' 행사에서 "특수자산을 중요 표적에 할당"했음을 언급했다. 사실상 한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암시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실은 "대화와 협력의 길에 동참하라"는 건조한 메시지로 대응했다.
문제의 본질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의 안보 인식에 있다.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 눈앞에 있는데도 훈련을 멈추자는 발언이 나오는 현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안보의 최대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군대가 훈련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는 딱 하나, 대적해야 할 적이 사라졌을 때뿐이다. 훈련 중단은 군대 존재 이유의 종말을 의미한다.
장비는 수단일 뿐, 전쟁 주체는 사람
이재명 대통령은 국군의 날 연설에서 "드론·AI·첨단 기술 중심의 자주국방"을 강조했다. 그러나 첨단 무기·장비 자체는 전쟁의 수단이나 도구일 뿐 주체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증거다. 인구·경제력·국토 면적·국방비·무기 등 모든 면에서 러시아보다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버텨온 이유는 무기·장비가 아닌 사람 덕분이다.
아드리안 카라트니츠키는 2024년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Battleground Ukraine)》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과거 우크라이나의 분열과 부패, 제도적 약점을 지적하면서도 러시아 침공 이후 국민적 단합, 시민사회의 역할, 국가 정체성의 제고 등이 어떻게 불가능해 보였던 저항을 가능케 했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했다.
절대적으로 열세인 물질적 국력을 상쇄한 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의 비물질적 정신력이다. 군대의 훈련은 단순한 전투기술의 반복 숙달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력과 정신력, 그리고 조직의 결속력을 다지는 과정이다. 훈련이 멈추는 순간, 군대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국가의 생존 기반도 함께 무너진다.
이제는 한때 '반미'의 상징처럼 인식되던 '자주국방'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일국이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자위'는 천부적 권리인 동시에 의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랫 동안 동맹에 국방의 주된 책임을 아웃소싱했다. 지금은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도 '전쟁 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유일한 선택은 전쟁에서 피를 아낄 수 있는 땀을 흘리는 길뿐이다. 더 이상 '훈련 중단' 같은 감언이설로 국방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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