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가왕’ 조용필의 시간 [청계천 옆 사진관]


● 세상에 첫 등장 ─ 1972년, TV ‘영 사운드’


● 금지와 비상 ─ 1977~1980년, 침잠과 컴백
대마초 파동으로 멈춘 인기(1977)의 기사 사진은, 굳은 입술과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여줍니다. 그 멈춤은 곧 수련이었습니다. 1980년, ‘창밖의 여자’로의 컴백.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는 무대 사진 속 그는 한 옥타브 위에서 다시 내려와 관객의 심장에 닿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도시 변방의 그리움을 불렀다면, ‘창밖의 여자’는 시대의 상흔에 대한 위로였습니다.

● 밀리언셀러의 손 ─ 1981~1982년, ‘창밖의 여자’와 국제무대
제작 라인을 풀가동하게 만들었다는 앨범 백만 장의 신화를 다룬 기사 옆 사진에서 그의 손은 마이크를 감싸 쥔 채 위로 당깁니다. 소리를 ‘내뿜는’ 손이 아니라 ‘끌어올리는’ 손. 1982년 도쿄 무대 사진에서는 정갈한 수트, 단정한 미소, 그리고 판소리에서 길어 올린 변성의 궤적이 빛납니다. 국경을 넘은 건 멜로디보다 태도였습니다.

● 왕관을 거부한 가왕 ─ 1986년, ‘상 사양’ 선언
연말 시상식의 플래시가 그에게만 집중되자 그는 미소를 띠되, 상패를 한걸음 뒤로 밀어 둡니다. “후배들의 길을 위해.” 기록은 이 순간을 “식상함의 거부”로 남깁니다. 사진 속 거절의 제스처는 조용필식 영광의 사용법이었습니다. 무대를 위해, 노래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그는 더이상 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 서울, 북경, 모스크바 ─ 1988~1989년, 회색 도시에 새긴 노래
베이징 호텔 무대 사진 한 장은 공연장의 조도보다 관객의 눈동자를 더 밝게 담습니다. 같은 해 서울, 이듬해 모스크바·사할린 기사에는 ‘서울 서울 서울’과 ‘한오백년’이 공존합니다. 전인미답의 길을 그는 누구보다 먼저 지나갔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대도시 공연을 만들어냈습니다.
● 신바람 이후의 정조 ─ 1993년, ‘서울…’의 승리
올림픽의 낙엽이 굴러가던 시절, 우울을 노래한 발라드가 뒤늦게 도시의 주제가가 됩니다. 무대 뒤 스탠드에 잠시 기댄 채 먼 곳을 보는 표정의 사진. “신바람보다 항심.” 노랫말의 낮은 파동이 사진의 정적과 겹칩니다. 소란이 지나간 자리에서 남는 건 목소리의 내구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습니다. 음악과 집 밖에 모른다는 노력하는 가수의 간조로운 삶이 무대의 완성도를 높인것은 아닐까요.





● 분단의 섬을 노래로 건너다 ─ 2005년, 평양 공연
6·25 50주년 특별 콘서트, 그리고 평양 유경 체육관. 한반도기가 내려오는 장면에서 관객의 눈물과 기립이 사진의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꿈의 아리랑’의 합창은 플래시보다 밝았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무대 위 조용필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관객을 바라봅니다. 이때 사진은 기록을 넘어 사건이 됩니다. 같은 노래가 두 사회를 잇는 다리였다는 사실을, 사진이 증명합니다. 2011년에는 소록도를 찾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 “과거의 조용필은 잊어달라” ─ 2013년, ‘헬로’의 혁신





● 다시 현재형 ─ 2024~2025년, 20집과 고척돔
2024년 발매된 정규 20집 ‘그래도 돼’가 이번 고척돔 컨서트에서도 포함되었습니다. 시대를 버텨나가는 청춘에 대한 응원인것 같기도 하고, 세파를 뚫고 살아온 중장년에 대한 손짓 같기도 합니다. “이제는 믿어, 믿어봐.” 고척돔 콘서트에서 흰 정장과 검은 선글라스의 대비는 여전하되, 관객의 연령대가 넓어졌습니다. 할머니가 “용필 오빠”를 외치고, 20대가 눈물을 훔칩니다. 한 무대에 공유된 서로 다른 시간들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그만큼 조용필의 존재는 특별합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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