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자, 나도 중국이 싫다

한겨레 2025. 10. 1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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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삐딱
2024년 2월6일(현지시각)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의 마카티 중국영사관 앞에서 시민이 “중국은 필리핀 영해를 떠나라”라고 쓴 중국 국기 문양의 포스터를 들고 서 있다. AP 연합뉴스

나는 중국이 싫다. 난데없이 반중 선언이냐고? 아니다. 나는 미국도 싫다. 러시아도 싫다. 나는 대부분의 나라가 다 싫다. 이유는 붙이기 나름이다. 일단 인간이 문제다. 미국은 인간들이 시끄러워 싫다. 중국도 마찬가지 이유로 싫다. 프랑스는 인간들이 무례해서 싫다. 프랑스인은 무례함을 듣기 좋은 언어에 숨기고 사는 얌체들이다. 독일은 좀 좋아하는 나라라 싫은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나치라 싫다고 할 수는 없다. 의외로 독일인은 상냥하다. 원죄가 있는 나라 사람들은 어째 좀 상냥하다. 이유를 찾았다. 독일은 음식이 맛없어서 싫다. 당연히 영국도 싫다. 음식이 독일보다 맛없어서 싫다.

뭘 싫다고 하면 좋은 구석을 찾아보라고들 한다. 좋은 면만 보는 인생이 행복한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뭐든 싫은 게 먼저 보이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러니 이 칼럼 제목도 ‘김도훈의 삐딱’인 것이다. 나도 ‘김도훈의 상냥’ 같은 제목의 칼럼을 쓰고 싶다.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4회 정도 연재한 뒤 하차하고야 말 것이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채운 글을 누가 읽겠는가. 우리는 친구들과 누구 칭찬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잘 없다. 칭찬도 한다. 3분이면 끝이다. 대신 우리는 뒷담화를 한다. 30분은 할 수 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뒷담화도 점점 줄어든다. 젊을 때야 ‘그놈이 오년 전 벌인 짓거리’로 화를 낼 수 있다. 늙으니 ‘그놈이 십오년 전 벌인 짓거리’뿐이다. 십오년 전 일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기억이 감퇴하면 화도 줄어든다.

다들 싫어하는 나라가 있을 것이다. 요즘 세계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정도가 아닌가 싶다. 힘이 세다고 몽니를 부리는 나라들이다.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요즘 한국 매체는 혐중 시위를 꾸짖는다. 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없애자. 대부분의 기사는 윤리적인 꾸짖음으로 끝난다. 윤리적 꾸짖음만큼 효과가 별로 없는 결론도 없다. 한국은 인종차별이 미묘한 나라다. 다른 인종과 어울려 산 경험이 지나치게 적다. 다른 인종이 싫다기보다는 낯설다. 미국인이 ‘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말할 때와 한국인이 ‘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말할 때, 같은 문장의 의미는 달라진다. 혐중 시위에 맥락 없는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나라는 차별을 해도 참 맥락이 없다.

다들 혐중과 반중을 이야기한다. 요즘 정치계는 혐중 시위에 엮어 ‘반중 정서’를 꽤 걱정하는 눈치다. 극우, 아니다. 아직 서구의 극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근본이 보잘것없으니 그냥 보수라고 하자. 진보 정치인과 언론은 보수가 반중을 선동하는 탓에 한-중 관계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걱정이다. 걱정할 수 있다. 구분해야 할 것은 있다. 혐중 시위와 반중 정서의 주체다. 전자는 잘못된 정보로 가득한 정치 유튜브 중독자들이다. 후자는 그렇지는 않다. 2023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꼽은 건 중국이다. 34%다. 일본은 24%로 후퇴했다. 20대의 77%가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70대 이상은 36%에 불과하다. 중국에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세대는 20대다. 가장 낮은 세대는 40~50대다. 인정하자. 한국은, 한국의 미래 세대는 중국을 제일 싫어한다. 반일이 반중보다 익숙한 영포티와 영피프티는 근심하고 있을 것이다.

근심 같은 거 하지 말자. 이유는 그냥 간단하다. 모든 나라는 이웃 나라를 제일 싫어한다. 이웃은 당연히 친해야 한다는 건 역사와 지리 공부를 덜 한 사람들의 지나치게 상냥한 세계관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를 죽일 듯이 싫어한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앙숙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 기억 따위 잊은 척하지만 서로를 여전히 별꼴이라고 생각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주변 나라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일 싫어한다. 베트남은 중국을 싫어한다. 타이와 주변 국가들도 서로를 싫어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서로 미워하는 이유를 아르헨티나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냥 웃었다. 브라질 친구에게 물었더니 “남미의 모든 나라는 아르헨티나를 싫어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러시아와 독일이 국방비 증액하는 꼴을 지켜보는 폴란드 심경도 물어보고 싶다.

영국과 프랑스가 서유럽의 패권을 두고 벌인 백년전쟁(1337~1453년)의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모든 나라가 이웃 나라를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이웃이라서다. 어쩔 도리 없이 몇백년 붙어살다 보면 앙금이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탄을 퍼부어도 드라마 저작권 무시하고 카피하는 중국이 더 싫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드론 공격을 퍼부어도 김치를 자기들 음식이라고 하는 중국이 더 밉다. 먼 나라는 싫어할 이유가 별로 없다. 가까운 나라는 싫어할 이유가 계속 생긴다. 가까워서 얽힐 일도 많고 보이는 것도 많은 탓이다.

반일이 반중으로 이동한 이유도 단순하다. 일제강점기의 집단적 기억은 그걸 겪은 세대와 함께 서서히 증발하는 중이다. 요즘 세대에게 일본은 저렴해서 여행 가기 좋고 ‘귀멸의 칼날’ 같은 것도 잘 만들고, 하여간 그런 나라다. 경쟁자이자 미운 이웃의 지위는 중국이 차지했다. 반도체도 경쟁이다. 휴대폰도 경쟁이다. 전기자동차도 경쟁이다. 땅도 크고 인구도 많으니 신경도 더 쓰인다. 새로운 세대는 늙은 여러분, 아니, 나도 포함한 우리처럼 ‘삼국지’를 읽으며 크지도 않았다. ‘중국몽’이라는 단어의 호오를 세대별로 조사한다면 놀랄 만큼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오늘도 내 페이스북은 ‘중국 경제는 속으로 썩고 있으니 걱정 마라’는 주장과 ‘중국 경제는 한국을 압도하고 있으니 긴장하라’는 주장을 담은 장문의 글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싸우고 있다. 결국 일종의 반중 정서라는 점에서 사이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사촌이 땅은 무슨, 나보다 큰 티브이(TV)를 사도 배가 아픈 사람들이다. 적당히 반미도 하고 반일도 하고 반중도 하며 살면 된다. 근거 없는 혐중만 아니면 된다. 그러고 보니 이스라엘 국기 들고 서울 대림동에 혐중 시위 나간 사람들이 골목골목 풍기는 양꼬치와 마라탕 냄새를 애국심으로 참는 표정이 좀 궁금하긴 하다. 사진기자 여러분의 분발을 기대한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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